윤종록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원장은 이달초 러시아에서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에서 디지털 경제를 주제로 강연했다. ‘러시아판 다보스 포럼’이라 불리는 이 행사에 그는 한국사람으로는 유일하게 초청 받았다. 미래부 차관 시절 윤 원장은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SOS)’라는 슬로건을 만드는 등 소프트웨어(SW)를 유난히 강조했다.
SPIEF 이야기를 듣기 위해 23일 NIPA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SPIEF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4차산업혁명과 SW로 옮겨갔다. 윤 원장은 4차산업혁명에 대해 “1~3차 산업혁명과는 차원이 다르다. 패러다임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것은 4차산업혁명 뿐”이라며 “우리나라가 4차산업혁명 강국이 되려면 소프트파워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 상트페테르부르크국제경제포럼(SPIEF)이 생소하다. 무슨 행사이며 어떻게 참석하게 됐나
"세계은행(월드뱅크)을 통해 참석하게 됐다. 내가 세계은행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러시아가 SPIEF 행사를 하면서 월드뱅크에 강사 추천을 요청했고, 월드뱅크가 나를 포함해 27명을 추천했다. 이중 나를 포함해 5명이 강사로 선정됐다.
막상 현장에 가니 다보스포럼 보다 규모가 몇 배 크더라. 공항 근처에 자리 잡은 거대한 행사장이 압권이었다. 500미터(m)쯤 돼 보이는 회랑을 따라 전시장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1천100여명의 스피커와 패널들이 115개 세션에 참석, 1만여 청중과 소통하고 교류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행사에 한국사람이 거의 없어 깜짝 놀랐다. 울리나라 언론에도 거의 소개 되지 않았다."
-어떤 내용을 발표했나.
"디지털 이코노미(디지털 경제)에 관한 두번의 세션에 참석했다. 한번은 아침을 겸한 라운드 테이블, 또 한번은 6명이 주제 발표를 하는 자리였다. 우리나라의 디지털 경제와 4차산업혁명 대응 등을 이야기 했다.
러시아는 중후장대 산업이 발전한 나라다. 그런데 자원 값이 떨어졌다. 또 중후중대 산업은 노동력이 많이 들기 때문에 매력을 잃고 있다. 러시아의 고민이다. 이를 타개할 키워드로 러시아가 디지털 경제를 꺼내 든 것이다. 경쟁력을 잃고 있는 러시아 중후장대산업에 우리 ICT 기술을 접목, 러시아 산업을 다시 활성화하는데 우리나라가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청중들 반응은 어땠나.
"러시아 전통산업에 비타민 역할을 하는 정보통신(ICT)을 접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세기에는 러시아가 미국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무기로 경쟁했다. 21세기에는 다른 ‘ICBM’으로 싸워야 한다고 했다. 디지털경제는 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이라 불리는 ICBM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4차산업혁명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1~3차산업혁명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원료를 만들어 제품을 만드는 경제다. 증기, 전기, 컴퓨터가 동력이었고, 원료를 조금 넣어 생산을 많이 하는 구조다. 러시아에 딱 맞는 산업이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은 다르다. 손으로 잡히는 자원을 투입하는 경제가 아니다. 머리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상상력을 넣어 혁신이 나오게 하는 경제다."
■ "4차산업혁명, 머릿 속 상상력 끄집어내 혁신하는 것"
-4차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4차와 혁명이 과장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4차산업혁명을 어떻게 정의하나. 또 어떤 특징이 있다고 보는지.
"용어에 대해 너무 왈가불가 할 것 없다. 오늘도 4차산업혁명에 대한 컬럼이 신문에 7~8개나 실렸더라. 다 맞는 이야기다. 내가 생각하는 4차산업혁명은 이렇다. 머릿속 상상력을 끄집어 내 도전을 통해 혁신을 이뤄내는 것이다. 나는 이를 ‘ICI’라 부른다. 이매지네이션(I)과 챌린지(C), 이노베이션(I)을 뜻한다.
4차산업혁명의 철학이 ICI 인 것이다. 구글을 보자. 요엘 마르크라는 마흔살 넘은 이스라엘의 한 아줌마가 검색이란 생각을 제시, 오늘날의 구글이 됐다. 마르크는 원래 이스라엘 성경 색인학자였다. 그런데 이스라엘 구글에 들어가 검색이란 아이디어를 제시, 6개월만에 검색이 만들어졌다. 아줌마의 간단한 상상력이 오늘날의 구글이라는 거대한 혁신기업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네이버도 마찬가지다. 한 팀장이 지식인이란 아이디어를 제시, 오늘날의 네이버가 만들어졌다. 이처럼 상상력을 혁신으로 이끄는게 바로 소프트파워다. 소프트파워 중 제일 중요한 게 소프트웨어(SW)다.
- 소프트파워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1~3차 산업혁명은 원료를 만들기 때문에 증기나 전기, 컴퓨터 같은 물리적 힘이 필요했다. 4차 산업혁명은 무슨 힘이 필요할까. 바로 소프트파워다. 이 부분은 러시아 발표때도 굉장히 호응을 받았다. 소프트파워는 5가지가 필요한데 이중 가장 중요한게 SW다. SW 외에 규제 완화와 창의적 교육, 리스크를 떠 안는 금융시스템, 청년 창업가 정신 등이 필요하다. 소프트파워는 자동차 속도와 같다."
-자동차 속도와 같다는 말은 무엇인가.
"자동차가 제 속도를 내려면 첫째, 엔진이 튼튼해야 한다. 이는 연구개발(R&D)이 튼튼해야 하는 것과 같다. 둘째, 엔진은 또 너무 무거우면 안된다. 이는 규제를 말한다. 규제가 너무 얽혀 있으면 안된다. 셋째, 자동차가 제 속도를 내려면 타이어가 빵빵해야 한다. 이는 창의적 교육을 의미한다. 넷째, 자동차 길 상태도 좋아야 한다. 기업가 정신이 있어야 된다. 다섯째, 신호체계가 물흐르듯이 연결돼 있어야 한다. 이는 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을 말한다. 중요한 건 이들 다섯 가지가 고루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도 취약하면 안된다. 이들 5가지는 덧셈이 아니다. 곱셈이다. 어느 하나가 제로(0)면 전체가 제로가 돼 버린다."
-우리나라 소프트파워는 어떤가
"1~3차산업혁명과 달리 4차산업혁명은 상상을 혁신으로 만드는 경제다. 이는 디지털 토양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디지털 토양이 세계서 가장 우수하다. 이번 러시아 행사때 여러 사람이 발표 파일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전송이 되지 않았다. 인터넷망이 느리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에 와서 보내줬다. 우리나라는 4차산업혁명을 하기엔 가장 좋은 필요조건을 갖춘 나라다. 문제는 충분 조건이다."
■ "4차산업혁명, 충분조건은 교육…다름 인정하는 문화 필요"
- 충분 조건은 무엇인가.
"교육과 사회 시스템이다. 우선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실수 안하는, 문제 푸는 교육으로는 안된다.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와 교육이 필요하다. 세계 73억 인구 중 얼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다. 뭘 의미할까. 73억명의 개성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얼굴 같은 사람이 하나도 없듯이 인간의, 개인의 탤런트가 다 다르게 만들어졌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다 똑 같은 사람으로 봤다. 앞으로의 교육은 달라야 한다.
나만의, 유니크한 면을 개발해야 한다. 헤테로지니어스(heterogeneous)한 교육이 중요하다. 문화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은 군대식 문화다. 삼성, LG도 마찬가지다. 이런 문화는 상상력(이매지네이션)과 안맞는다. 이매지네이션이 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바꿔야 한다. 쉬운 말 같지만 대단히 어렵다. 문화 전체가, 의식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기업가 정신 함향을 위해 ‘당돌함’ ‘뻔뻔함’으로 번역되는 이스라엘의 ‘후츠파 정신’을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도전 정신이 충만한 ‘후츠파’에는 7가지 정신이 있는데 이중 최소 4가지 정도를 갖춰야 혁신이 일어난다.(윤 원장은 2013년 ‘후츠파로 일어서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근면, 자조, 협동이 슬로건이었다. 근육을 움직이고, 열심히하면 됐다. 망치로 두들겨 만드니까 가능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아니다. 상상력과 도전, 혁신이라는 ICI 가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4차산업혁명은 이전 1~3차 산업혁명보다 더 중요하다. 1~3차산업혁명은 진화(임푸르먼트)였다. 4차산업혁명은 차원이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의 변화다. 1~3차산업혁명보다 변화가 더 크고 어마어마하다."
- 4차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면서 피터 틸을 거론하는 이유는
"피터 틸은 미국 모바일 결제 서비스 원조인 ‘페이팔’을 창업한 9명중 한명이다. 이들 9명 창업자중 에는 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쟁쟁한 인물이 포함돼 있다. 틸은 트럼프 대통령의 ICT 정책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X,Y축이 들어간 그래프 하나로 4차산업혁명과 비견되는 혁신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Y축은 0을 1로 만드는 축이다. 기존 1~3차산업혁명처럼 누가 1을 만들면 즉시 카피해 2,3,4를 만드는 구조다.
이는 우리나라도 잘하는 거다. 틸은 이런 경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했다. Y축으로 가라고 했다. Y축은 0을 1로 만드는 경제다. 머리속에 갇혀 있는 좋은 상상력은 0이다. 이를 끄집어내 혁신으로 만드는 것이 1이다. 이런 경제가 필요하다. 간단한 아이디어나 상상력을 1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부지런한 손발과 근육이 아니라 머리를 사용하는 창의성이 중요한 것이다. 뭐든지 간단하지만 상상력을 끄집어내 도전(챌린지)을 통해 혁신을 만들어 내는 것이 4차산업혁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소프트파워가 필요하고, 소프트파워 중 SW가 제일 중요하다.
■ "SW 파워가 강한 대만민국이 중요"
-우리나라는 SW가 아직 갈길이 멀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성공한 산업경제를 이뤘다. 그런데 산업경제 대부분이 하드파워였다. 지난 50년간 하드파워에 익숙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소프트웨어를 소홀히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고 느끼지만 워낙 하드파워가 강한 나라다보니 소프트파워 적응력이 늦어졌다."
- 미래부 차관 시절 SW를 많이 강조했는데
"미래부 차관이 돼 첫번째 실국장 회의에서 한 말이 있다. 남이 만들어 놓은 게임에 중독돼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빨리 SW를 가르쳐 게임을 만드는데 중독되도록 하자고 했다. 당시만해도 미래부가 처음 생겨 실국장들 조차 무얼 해야 할 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다.
차관때 늘 대한민국 SW파워가 이러면 안된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가 눈에 안보이다 보니 돈을 지불하는 것에 인색하다. 그러다보니 SW 파워가 약한 나라가 됐다. 인프라는 빵빵한데 이를 활용한 가치 창조가 약한 나라가 됐다. SW파워가 강한 대한민국이 슬로건이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삼성과 네이버의 SW방과 후 학교와 SW중심대학을 만드는데도 기여했다. SW가 내년부터 의무화 되지만 교육부만 믿고 있다가는 SW확산이 더딜 것 같아 두 제도를 시행케 했다."
-우리나라가 4차산업혁명과 SW파워 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SW파워가 강한 대한민국’이라는 키워드가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야 한다. 감사원과 기재부는 공공 SW사업에 영향력이 크다. 그런데 두 부처는 SW와 SW파워를 잘 모른다. 미래부 차관 시절 SOS, ‘소프트웨어 중심 사회’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아쉽게 아직 점수가 50점밖에 안되는 것 같다. SW는 눈에 안 보인다는 이유로, 또 SW가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SW 문제를 인식하는 그룹에서만 큰일 났다고 한다. 이 그룹이 아닌 대다수는 이해도, 체감도 못하고 있다.
해답은 ‘SW파워가 강한 대한민국’이라는 개념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야 한다. 대기업 역할도 중요하다. 대기업이 오픈 이노베이션으로 가야 한다. 미국 예를 들겠다.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시 실업률이 10%였는데 퇴임할 때 4%대로 떨어졌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나. 세계에서 상상하는 사람을 불러 모아 혁신이 일어나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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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기업 CEO를 백악관에 초청해 한 말이 “젊은이들의 상상력을 후하게 쳐주라”는 것이었다. 미국 기업은 인수합병(M&A)으로 오바마에 화답했다. 실리콘밸리 100개 기업중 46개는 미국이 만든 게 아니다. 세계 상상력이 미국으로 몰려들었고, 돈과 기술이 있는 미국 기업이 이를 받아 들여 혁신에 성공했다.
우리는 굿 이매지네이션(좋은 상상력)이 없으니 그레이트 이노베이션(위대한 혁신)도 없다. 상상력을 혁신으로 만드는게 소프트파워고, ICI다. 이전 산업화 시대엔 근면 자조 협동이 강조됐다. 4차산업혁명시대엔 상상, 도전, 혁신이라는 ICI가 이를 대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