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 '리콜' 무조건 돌 던질까 두렵다

[데스크칼럼] '러브콜' 인식 전환 필요한 때

카테크입력 :2017/04/18 08:36    수정: 2017/04/18 08:45

정기수 기자

자동차는 3만여개에 달하는 부품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 예측을 넘어서는 다양한 환경 속에서 움직이는 제품의 특성 탓에 아무리 완벽을 기해도 실제로 운행될 때는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후 서비스를 통해 결함을 보완하는 게 바로 '리콜(recall)'이다. 즉, 리콜이라는 게 자동차업계에서는 흔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인 셈이다.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는 지난해 말 기준 약 2천200만대에 달한다. 1가구당 평균 1대 이상의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차량 증가와 더불어 전장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자동차에는 수많은 첨단 전자장치가 추가되면서 마치 펌웨어처럼 컴퓨터로 뒤덮이고 있다.

과거와 달리 생산량이 급증한 데다, 만드는 방식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수많은 기능이 더해지면서 결함의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더 많은 거리를 달린, 더 오래된 연식의 차량들이 리콜 없이 도로를 더 잘 달린다.

그랜저 HG(사진=현대차)

소비자들은 갈수록 빈도 수가 많아지는 리콜에 대해 "이 차는 왜 이렇게 결함이 많아?"라고 불만을 제기한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사실 리콜이라는 것은 소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최선책이다. 비용 측면에서도 큰 부담을 무릅써야 한다.

최근 현대·기아차는 국내에서 5개 구형 차종 17만1천348대에 장착된 세타2 엔진에 대한 자발적 리콜을 실시키로 했다. 리콜은 다음달 22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결함이 발견된 차량에 대해서만 엔진을 교환하는 방식이긴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최대 수천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투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눈에 띄는 점은 구형 그랜저가 포함된 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번 리콜 사유인 엔진 결함은 설계 오류가 아닌, 경기 화성공장 청정도의 문제다. 국내 리콜 5개 차종 중 화성공장에서 만든 엔진을 탑재한 모델은 쏘나타, K5, K7, 스포티지 뿐이다. 그랜저에는 울산공장에서 만든 엔진이 들어간다.

현대차가 결함 가능성이 없는 그랜저를 리콜 대상에 포함시킨 이유는 뭘까. 동일한 세타2 엔진이 들어가는 모델에 대한 고객들의 우려를 사전에 불식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말 세타2 엔진 장착 차량에 대해 보증기간을 기존 5년· 10만km에서 10년·19만km로 연장하면서도 동일하게 그랜저를 포함시킨 바 있다"면서 "이번 리콜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 되는 것은 현대·기아차가 국내 소비자들의 안전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선제 조치에 나섰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은폐하거나 혹은 너무 잦은, 또 같은 결함이 반복되는 리콜은 분명히 문제다. 하지만 양심적으로 리콜에 나서는 기업이 도매급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는 일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한 때 닛산과 어깨를 견줄 만큼 사세를 키웠던 미쓰비시자동차는 2000년 63만대의 차량을 리콜 당한 뒤 사건 은폐에만 여념이 없었다. 결국 2002년과 2004년에도 조직적으로 리콜을 덮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2015년 말부터 전세계 시장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확산된 '디젤 게이트' 파문에 휩싸인 폭스바겐그룹은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알고도 계속 은폐한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리콜을 실시하는 차량은 무조건 나쁘다는 예민한 반응 역시 지양돼야 할 점 가운데 하나다. 리콜이 발표되면 사안을 따지지 않고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리콜 차량마다 결함 정도의 경중이 다르게 마련인데도, 이를 근거 없는 논리로 비약시켜 모델 전체는 물론 브랜드 전체의 이미지까지 싸잡아 깍아내리기 일쑤다.

이럴수록 자동차업체는 리콜하는 차량이 하자가 있는 제품으로 인식돼 매출에 악영향을 미칠까봐 꺼리게 된다. 리콜이라고 하면 무조건 차량을 교환해 주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는 사람도 상당수에 달한다.

미국의 경우 자동차업체들이 아무 거리낌없이 리콜을 통보한다. 사전에 제조사가 직접 결함 정보를 정부에 보고토록 하며,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최대 80만달러의 과징금을 부과한다. 선진국일수록 자발적 리콜이 강제 리콜보다 많은 이유 중 하나다. 미국에서는 연간 5천만대 이상이 리콜이 실시된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일상의 캠페인 정도로 여기며 과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설계나 제작시 예상치 못했던 결함이 소비자에게 인도된 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차원에서, 생산한 차량에서의 결함을 인정하고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리콜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정부와 제조사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자발적 리콜을 보다 많이 유도할 수 있도록 법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 유관부처에서는 리콜에 늑장대응 하는 기업에게는 손실이 더 발생하도록 규정도 손봐야 한다. 물론 자동차업체 역시 사전 품질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리콜에 나서야 한다. 다만 자발적이고 투명한 리콜이 확산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도 선제적으로 요구된다.

관련기사

리콜에 적극적인 기업이 양심적인 업체고, 리콜은 안전을 위한 '러브콜(love call)'이다. 아직은 낯선 '리콜=러브콜'이라는 이 등식이 당연스럽게 여겨져야 기업과 소비자간 신뢰가 쌓이고 쌓여 모두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발전적 리콜의 자양분이 된다.

결함에 대한 리콜은 마케팅의 논리보다는 소비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놓은 정직한 처사다. 분명한 것은 결함을 발견하고도 리콜하지 않는 게 문제다. 우리가 돌을 던져야 하는 것은 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