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탄핵 정국, 'O2O 파워' 빛났다

사실 전달 힘쓴 언론, 여론 집결시킨 인터넷

인터넷입력 :2016/12/13 15:04

서울 2016년 겨울은 뜨거웠다. 소박하게 타올랐던 촛불은 순식간에 횃불이 됐다.

스마트 한국을 상징하는 스마트폰과 모바일 파워로 무장한 똑똑한 시민들은 광화문을 민주주의의 플랫폼으로 만들어냈다. 결국 불가능해보였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압도적인 찬성으로 국회에서 통과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최순실 스캔들'로 시작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것은 한겨레신문과 TV조선 같은 전통 매체였다. 여기에 JTBC가 최순실 씨 태블릿을 입수하면서 달아오른 '박근혜 퇴진'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매체에 따라 온도차는 극명했지만 모처럼 정파를 초월한 취재 경쟁이 계속 되면서 한국 언론에 르네상스가 찾아왔다는 찬사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매 주말 광화문을 뒤흔든 피플 파워는 몇몇 매체의 특종 보도만으론 다 설명되지 않는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 파워는 흩어졌던 민심을 하나로 이어주는 거멀못 역할을 했다. 특히 IT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플랫폼과 통신의 힘이 결합되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가결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첨단 IT 기기로 무장한 똑똑한 시민들이 만들어낸 이번 성과는 진정한 의미의 'O2O 혁명'이라고 해도 크게 그르지 않아 보인다.

■제 역할 찾은 언론, 최순실·박근혜 정국 주도

촛불집회(사진=뉴스1)

지난 10월24일 오후 8시.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은 조금은 충격적인 소식을 전해줬다. 최순실 씨가 각종 대통령 연설을 수정한 정황이 포착됐다는 소식이었다.

종편 채널인 JTBC는 최순실 씨가 사용하던 태블릿PC를 분석한 결과 최 씨의 국정개입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보도는 이후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 최순실 게이트가 박근혜 게이트로 확대되는 순간이었다.

JTBC 보도의 파장은 컸다. 방송이 나간 직후 인터넷 신문과 커뮤니티, SNS 등에는 충격에 빠진 시민들이 올린 글들로 넘쳐났다.

전통 매체가 던진 불씨는 인터넷과 모바일 공간을 통해 확산되면서 분노 여론이 전국을 휩쓸었다. 여론에 밀린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날 긴급 대국민담화 자리를 마련했다. 박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일부 연설문과 홍보물 표현 등에서 도움 받은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인터넷에선 '대국민 담와' 등 각종 비판적인 패러디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이후 주요 언론들은 계속된 특종을 경쟁적으로 터뜨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 병원에서 ‘시크릿 가든’ 드라마 여주인공 ‘길라임’이란 가명을 사용했다는 보도부터, 줄기세포주사를 투여했다는 의혹까지 연이어 제기됐다.

신문과 종편 채널, 인터넷 매체들의 취재 경쟁은 계속됐지만 지상파들은 여전히 몸을 사리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소통에 익숙한 '똑똑한 시민'들의 압박이 강하게 작용했다. 시민들은 매주말 계속된 촛불 집회 뿐 아니라 인터넷, 소셜 미디어 공간 등을 통해 외면하는 지상파들을 강하게 압박했다.

결국 지상파 중에선 SBS가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통해 취재 경쟁에 뛰어들었다. 마지막까지 침묵하던 KBS와 MBC도 비난 여론이 들끓자 뒤늦게 관련 보도를 내놓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그리고 ‘문고리 3인방’과의 관계,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부패와 비리에 대한 보도를 시작한 것이다.

MBC 8시 뉴스 캡처

한번 가속도가 붙은 보도 경쟁은 무서운 기세로 확산됐다. 특히 전통 매체와 인터넷, 모바일 플랫폼이 절묘하게 결합되면서 'O2O파워'로 결실을 맺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최순실, 정유라, 장시호, 김종 전 문화부 차관, 고영태, 차은택 등이 얽힌 복잡한 연결고리가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덩달아 검찰도 수사에 속도를 냈고, 촛불집회를 통한 주권자의 힘도 커질 수 있었다.

언론이 제 역할을 찾으면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세상에 알려지고,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전국민에게 전달된 것이다.

서울대학교 이준웅 교수는 최근 한국기자협회 토론회에서 “언론이 침체를 겪는 상황에서도 최순실 정국을 만들고 이끌었다”고 긍정적으로 말한 뒤 “언론이 이번 사태를 주도할 수 있었던 것은 정상관행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당파성을 넘어 사실 확인으로 권력비판에 나선 것은 역사적 전진”이라고 평가했다.

■여론의 힘 결집시킨 열린 인터넷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들이 여론을 결집 시키는 데 힘을 발휘했다.

분노한 시민들이 든 촛불은 강했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첫 등장한 촛불은 2008년 광우병 집회 때도 뜨겁게 타올랐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는 그 때와 또 달랐다. IT 강국으로서 가진 인터넷과 통신의 힘이 큰 역할을 했다.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블로그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이 결과 올 한해 국내 트위터를 가장 뜨겁게 달군 키워드에 ‘최순실 게이트’가 선정되기도 했다.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한 실시간 중계도 여론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촛불집회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는 시민들은 실시간 중계로 함께 했다. 실시간 중계 영상을 보면서 '좋아요'를 누르거나, 각종 댓글을 통해 더불어 함께 하는 시민의 힘을 보여줬다.

2008년 광우병 집회 때도 인터넷 파워는 강했다. 하지만 당시엔 소셜 미디어는 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개인들의 실시간 생중계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서울 2016년 겨울'은 달랐다. 대규모 촛불집회 장면은 행동하는 시민들이 올린 스마트폰 생중계를 통해 전국으로 퍼져갔다. 이런 상황은 대규모 집회가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보이지 않는 역할도 했다.

검색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 다음 실시간 검색 순위의 경우 1위부터 10위까지가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한 검색어들이 도배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무리 관심이 뜨거운 주제라 해도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통째로 도배한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다. 이로 인해 더 많은 누리꾼들이 최순실 국정농단의 실체를 알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얻었다.

기성 언론권에 대한 불신으로 유행처럼 번진 팟캐스트의 역할도 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는 꼼수다’를 통해 익숙한 팟캐스트는 청취자들의 신뢰도를 얻으면서 기성 언론에 대한 감시자 기능까지 담당했다. 스마트폰과 이어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쉬운 접근성이 강점으로 작용했다.

팟캐스트는 기존 언론의 감시자 역할을 하면서, 젊은 층과의 소통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 대안매체였던 팟캐스트, 피플파워의 원천이 되다

팟캐스트는 최근까지만 해도 철저한 대안 매체였다. '나는 꼼수다' 같은 몇몇 인기 프로그램이 있긴 했지만, 청취 연령층은 제한적이었다. 2011년만 하더라도 팟캐스트는 30대 청취율이 거의 20%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20대, 40대, 50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서울 2016년 겨울의 풍경은 달랐다. 10대, 20대 청취율이 크게 증가하면서 많은 청년들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이 과정에서 정유라 입시 특혜 등이 공개되면서 10대들까지 팟캐스트에도 관심을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고3 수험생들과 젊은 학생층을 광화문 집회 현장으로 집결시키는 데는 팟캐스트가 적잖은 기여를 한 셈이다.

인터넷과 통신의 힘이 통쾌하게 발휘된 건 커뮤니티 ‘주식갤러리’(주갤러)의 청문회 실시간 제보 건이다.

한 주갤러가 지난 7일 최순실 국조특위 2차 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을 통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위증을 밝혀낸 이 사건은 ‘모르쇠’로 일관하던 청문회 증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뜨거운 분노에 단비 역할을 했다.

이어 주갤러 등 네티즌 수사대들이 나서 청문회에 참석하지 않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찾기 위한 포위망을 좁혀 나가는가 하면, 정봉주 전 의원은 우병우 전 수석을 찾기 위한 현상금 마련을 위해 펀딩 계좌를 개설하고 이 같은 사실을 SNS를 통해 공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트위터코리아 2016년 톱 키워드.

이 밖에 유튜브와 SNS 등에서는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정리와 인물 관계도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영상물이 제작, 배포돼 눈길을 끌었다.

또한 청와대가 비아그라와 각종 의약품들을 구매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해당 의약품의 효능과 목적 등에 대한 전문가 분석과 의혹들이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번지기도 했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집회 주최 측과 경찰 측이 추산해 발표하는 광화문 집회 참석 인원수가 크게 다르자 IT 기술로 이를 풀어내려는 시도도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한 국내 스타트업은 스마트폰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등 무선 신호를 기반으로 집회 참가자수를 측정한 뒤, 그 결과를 공개해 집회참가자수 집계의 객관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이코퍼레이션은 촛불집회 참가자 수 측정뿐 아니라,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시간대별로 광화문 일대 지역의 집회 참가자 분포도를 작성했다.

당시 이 같은 실험과 조사가 가능했던 이유는 회사 측이 스타트업 관계자와 IT전문 언론 담당자들이 모인 카톡 그룹 채팅방에서 아이디어를 제시하면서다. 한 차례 실험에 수백만원에 달하는 비용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에 스타트업 입장에선 실험 성공 여부뿐 아니라, 이에 대한 결과가 언론을 통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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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IT전문지들이 동참의 뜻을 표했고, IT 기술을 통한 집회 인원 추산과 분석 기법, 그리고 결과 값이 공개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경찰 추산과 집회 측 추산 인원이 크게 달랐던 궁금증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계기가 됐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최성진 사무국장은 “여론 형성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들이 있어 예전보다 국민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기 훨씬 용이해진 것이 사실”이라면서 “조직되지 않은 일반 국민들이 광장에 모이고,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어색하지 않게 100만, 200만이 모여 하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힘이 바로 인터넷을 통해 가능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