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6일로 예정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는 9명의 대기업 총수들이 증인으로 서게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측근의 국정 농단으로 촉발돼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추진 후폭풍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의혹인 정경유착의 연결고리 여부를 속속들이 파헤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그동안 '호통국감'의 선례를 보면 이번 조사가 단순한 '총수 망신주기'의 정치적 쇼(show)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광장을 밝힌 230만개가 넘는 촛불이 반증하듯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만큼, 정치권도 여느 때와 달리 날 선 비판을 통해 의혹을 규명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이번 청문회가 생중계 된다는 점에서 과거처럼 국회의원들이 진실 규명이라는 논점과는 벗어난, 호통과 윽박을 통한 망신 주기를 통해 경쟁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데만 주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총수들을 불러다 놓고 진실 찾기는 뒷전인 채 논의가 자칫 '산'으로 갈까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번 청문회에 출석하는 그룹 총수들은 한결같이 국가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인이다. 이들 그룹이 차지하는 국내 고용과 생산, 수출의 막대한 비중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요 외신들은 이번 총수들의 청문회 출석을 놓고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 기업들의 브랜드 신뢰도에 큰 손상을 입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정치인들이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포함해 재벌 총수들을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토록 하는 안에 합의한 것은 경제 심리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국내 경제계를 대표하는 그룹 총수들이 청문회 현장에 불려나가 공개적인 망신을 당할 경우 대외 신인도 하락은 물론, 반(反)기업 정서 확산에 따른 경제활동 위축이 우려된다. 이들과 인연을 맺고 있는 해외 사업 파트너들과 지속적인 신뢰 관계를 담보하기 어렵다. 해외 정·관계 인사들과 글로벌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주도권을 점하기 힘들다.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 도날드 트럼프가 이름을 올리면서 급변하고 있는 글로벌 경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도, 국내 경제가 침체 일로를 달리고 있는 시점에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이나 미래 먹거리 발굴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게이트를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는 '좌고우면(左顧右眄)'이다.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하다'라는 의미다. 어떤 일에 앞뒤를 재고 결단하길 망설이는 태도를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국민들의 분노를 대변해야 하는 정치권과 한 점 남김없이 의혹을 파헤쳐야 하는 사정당국이 마땅히 지양해야 할 태도다.
반면 청문회에 출석하는 총수들을 대하는 정치권에게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심사숙고(深思熟考)해 견강부회(牽强附會)를 경계하고 진실의 본질에 효과적으로 다가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번 청문회에서 여야가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 하는 이유다. 질문과 진행 방식은 진실 규명에 맞춰 최대한 실효성 있게 치러야 한다.
이번 청문회에 출석하는 총수 중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고령자다. 1938년생으로 우리 나이로 올해 79세며, 내년이면 팔순을 맞는다. 역대 기업총수 증인 가운데 최고령 기록을 세우게 됐다. 손경식 CJ그룹 회장(1939년생, 78세), 구본무 LG그룹 회장(1945년생, 72세) 등도 70세가 넘는 고령이다. 그외 허창수 전경련 회장(1948년생, 69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1949년생, 68세),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1952년생, 65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1955년생, 62세), 최태원 SK그룹 회장(1960년생, 57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1968년생, 49세) 등 증인으로 채택된 재계 총수들의 평균 나이는 66.4세다.
재계에서는 고령의 총수들이 장시간 청문회 자리를 지킬 수 있을 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몽구 회장은 2009년 초 심장질환으로 직접 심장을 열어 수술하는 개심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이후 매년 정밀 심장 검진을 받고 있으며 고혈압 치료도 병행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청문회 당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국회 인근에 전문 의료진과 구급차를 대기시키고 여의도 주변 대형병원과 연락체계를 갖추는 등 긴급이송 체계를 마련한 상태다. 손경식 회장 역시 지난 7월 폐암 수술을 받은 뒤 치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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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청문회는 종료 시간을 따로 정해놓지 않았다. 총수들은 단 몇 분간의 답변을 위해 이날 하루종일 증인석에 앉아 있어야 하는 셈이다. 사태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박 대통령과 독대한 그룹 총수들의 출석을 통한 조사는 불가피하다. 다만 고령의 총수들이 긴장한 채로 장시간 대기하며 체력적 부담을 안은 상태에서 얼마나 명쾌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지는 다소 의문이다. 정몽구 회장은 평상시에도 행동이 다소 느리고 말투가 어눌해 호사가들의 입에 심심치 않게 오른다.
재계 관계자는 "자칫 청문회 흐름이 의원들 막말과 호통, 망신 주기로 일관될 경우 고령의 총수들이 느낄 정신적 부담도 상당할 것"이라면서 "정치권의 배려와 운영의 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