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 그랜저' 1% 모자란 준대형 끝판왕

[시승기] 확 바뀐 외모+안락한 승차감 '명성'

카테크입력 :2016/11/28 08:53    수정: 2016/11/29 14:21

정기수 기자

(강원 홍천=정기수기자)현대자동차가 '신형 그랜저'로 국내 준대형 세단시장에서 재도약을 노린다. 현대차는 5년 만에 야심차게 선보인 6세대 풀체인지(완전변경) 모델 신형 그랜저의 성능에 공격적인 가격 정책을 앞세워 5세대까지 구축했던 과거의 아성을 재현한다는 복안이다.

그랜저는 이달 22일 출시 이전까지 사전계약 3주 만에 2만7천491대의 계약고를 올렸다.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초반 흥행에 오히려 출고난을 걱정할 정도다. 신차 효과가 본격화되는 내년에는 국내 시장에서의 신형 그랜저를 연간 10만대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월별로는 약 8천300여대 수준이다. 국내 준대형세단 시장 전체 규모가 월 1만여대인 점을 감안하면 8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겠다는 얘기다.

이전 모델과 달리 30~40대 젊은 고객들의 신규 수요가 대폭 늘어난 점도 현대차가 목표 달성에 자신감을 내비치는 이유다.

현대차 류창승 국내마케팅실장(이사)은 "신형 그랜저의 계약 현황을 분석한 결과 30~40대 고객 비중이 기존 5세대 그랜저(HG)보다 약 7%P 증가한 48%로 나타났다"면서 "특히, 신규 유입 고객 가운데 30~40대 비중이 60%를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말했다.

신형 그랜저 주행(사진=현대차)

이전 세대가 다소 보수적인 취향에 고객에 편향돼 있었다면, 신형 그랜저는 내·외관 디자인의 큰 폭의 변경과 준자율주행 기능 등 젊은 고객들이 선호하는 첨단 안전·편의사양을 대거 적용해 30~40대 패밀리 세단 수요까지 타깃 고객층을 넓혔다.

신형 그랜저의 경쟁 상대로는 형제 계열사인 기아자동차 K7과 한국GM 임팔라, 르노삼성자동차 SM7 등이 꼽힌다. 현대차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4천만원대 수입 중·대형차량도 정조준 했다. 닛산 알티마와 맥시마, 토요타 캠리와 아발론, 혼다 어코드, 포드 포커스 등 가장 경쟁이 치열한 수입차 시장의 수요까지 내심 잠식한다는 속내다.

신형 그랜저의 시승은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 호텔에서 강원도 홍천 샤인데일CC를 왕복하는 72.5km 구간에서 이뤄졌다. 시승차는 가솔린 3.0 익스클루시브 스페셜 풀옵션 모델이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길고 넓은 차체다. 기존 모델보다 전장은 10mm, 전폭은 5mm 늘렸다. 전면부에는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시그니처 '캐스캐이딩 그릴'과 볼륨감 있는 후드, 주·야간 모두 점등되는 가로 라인의 'LED 주간주행등'이 적용돼 역동성과 함께 6세대 만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이전 모델보다 낮게 배치된 그릴과 헤드램프는 안정감을 더한다. 'H' 로고가 박혀있는 엠블럼 크기도 커졌다. 엠블럼 안에는 전방 감지 및 조향 제어 등을 위한 센서가 내장돼 있다.

두 개의 독창적인 캐릭터 라인이 배치된 측면부는 앞쪽 오버행은 길게 빼고 뒤는 짧게 만들었다. C필러가 한껏 밀어붙여져 날렵한 각도로 누운 라인은 곧바로 뛰쳐나갈 듯한 스포티한 비례감을 준다. 전고가 이전 모델과 동일한데도 전체적으로 낮게 깔린듯한 느낌을 주는 이유다. 후면부는 기존 모델의 헤리티지를 물려받은 곡선의 리어램프로 기함(旗艦)'에 걸맞는 외관을 마무리했다. 범퍼 일체형 듀얼 머플러도 멋스럽다.

신형 그랜저 실내(사진=지디넷코리아)

운전석에 앉자 나파 가죽 시트의 온 몸을 감싸는 듯한 착좌감이 일품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온도를 낮춰주는 '스마트 열선 시트'와 2개까지 설정한 자세를 기억해 변경해 주는 '운전석 자세 메모리 시스템'은 주행 중 편의성이 높다. 수평형 레이아웃을 적용한 실내는 개방감이 높다. 새로 적용된 돌출형 내비게이션으로 크래쉬패드 상단부가 내려와 시야가 더 넓어졌다. 깔끔하게 정돈된 각종 버튼들은 한 눈에 들어와 조작하기 용이하다.

다만 전체적으로 심플한 디자인된 인테리어 컨셉트에 아날로그 시계는 다소 겉돈다는 느낌이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듯 하다. 뒷좌석 플라스틱으로 마무리된 도어트림도 차급에 어울리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다.

기자는 호텔로 돌아오는 편도 약 36km 구간을 운전했다. 샤인데일CC로 가는 동안에는 동승자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조수석과 뒷좌석을 옮겨가며 승차했다. 뒷좌석 공간은 넓고 안락하다. 신형 그랜저는 실내 공간을 좌우하는 척도가 되는 휠베이스(축거)가 2천845mm다. K7(2천855mm)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임팔라(2천835mm), SM7(2천810mm)보다는 길다.

쇼퍼 드리븐을 마음껏 즐긴 뒤 운전대를 잡았다. 시동 버튼을 누르자 소리도, 떨림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실내가 고요했다. 가속페달을 밟자 차가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출발한다. 약 16km의 모곡로를 빠져나오는 동안 외부 소음은 거의 유입되지 않는다. 앞유리 및 앞좌석 도어에 이중접합 유리를 적용하고 차체 흡차음재 확대, 도어 하단부 3중 실링 적용 등을 통해 N.V.H(소음 및 진동) 성능을 대폭 강화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서울춘천고속도로에 진입, 스포츠모드로 변경하고 가속 페달에 힘을 주며 시속 180km까지 내달렸다. 전륜구동 차량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탁월한 주행 안정성과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발휘한다. 회전 구간에서도 후미가 신속하게 반응하며 잘 따라온다. 부드러움만 강조됐던 5세대와 달리 서스펜션도 상대적으로 단단하게 세팅된 편이다.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울컥거림도 없고 와인딩 구간에서도 몸을 잘 잡아준다. 고속으로 접어들수록 묵직해지는 스티어링휠은 우수한 직진 성능을 보인다.

신형 그랜저 가솔린 3.0 엔진룸(사진=지디넷코리아)

시승 모델에는 3.0리터 람다II 개선형 가솔린 직분사(GDi) 엔진이 탑재됐다. 최고출력 266마력, 최대 토크 31.4㎏·m의 성능을 발휘한다. 기존 5세대 모델(270마력, 31.6㎏·m)보다 출력은 4마력, 최대토크는 0.2㎏·m가 낮아졌지만 크게 체감하긴 힘들다. 8단 자동변속기와의 조합도 만족스러운 편이다. 일상 주행에서 거슬릴 만큼 반응이 굼뜨진 않다.

다만 이 차는 급격하게 치고 나가는 가속보다는, 악셀을 밟은 발에 전달되는 힘의 강도가 더해질수록 꾸준하고 안정감 있게 밀고 나가는 운동성능을 만끽하는 게 더 어울릴 듯 싶다. 도심의 저속주행에서는 1천500rpm 근처에서, 시속 120km 주행시 2천500rpm 부근에서 엔진 회전 반응이 이뤄진다. 기존보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를 소폭 하향해 실사용 영역에서의 운전성과 동력성능을 높였다고 현대차 관계자는 귀띔했다.

새로 적용된 스마트 주행 모드도 편의성이 높다. 운전자의 성향을 파악해 컴포트와 스포츠 모드를 오가며 엔진과 변속기를 최적화된 상태로 맞춰준다. 고속 주행을 하면 클러스터에 표시된 그래프가 적색으로, 서행을 하면 녹색으로 표시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주로 도심을 오가는 일상 주행에 적합할듯 싶다.

정숙성은 고속 주행에서도 마찬가지다. 풍절음과 노면 마찰음 등 주행 소음을 느끼기 힘들다. 오히려 엔진음이 더 도드라질 정도다. 동승자와 대화를 나누는 데도 문제가 없다. 귀도 즐겁다. 이 차에는 JBL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이 적용됐다. 마치 콘서트홀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음질을 제공한다.

신형 그랜저에는 준자율주행 수준의 운전자 보조기능인 지능형 안전기술 브랜드 '현대 스마트 센스'도 최초로 탑재됐다. 전방 레이더와 카메라를 이용해 선행 차량과 차선을 감지, 악셀과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도 알아서 차량과의 간격을 조절하며 차선 중앙을 달릴 수 있도록 해 준다. 완만한 곡선도로에서도 차선을 이탈하지 않고 잘 따라간다. 특히 이날 시속 20km 내리막 구간에서 동승한 운전자가 잠시 한 눈을 팔아 미처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고 전방 차량과 추돌할 뻔했지만,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이 작동되면서 경보 후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 내년에는 제네시스 브랜드에 적용된 고속도로주행지원시스템(HDA)도 추가될 예정이다.

신형 그랜저 가솔린 3.0 익스클루시브 스페셜 풀옵션 모델(사진=지디넷코리아)

이날 시승을 마치고 계기판을 확인해 보니 리터당 8.8㎞/ℓ의 연비를 나타냈다. 19인치 타이어를 장착한 이 차의 복합 연비는 9.9㎞/ℓ다. 다소 거칠게 차를 몰아붙이며 급가속과 급정차를 거듭한 점을 감안하면 납득할 만한 차이다. 고속도로에서 크루즈 컨트롤을 사용해 100km/h로 정속 주행할 때는 15~18km/ℓ 사이의 연비가 찍히기도 했다.

신형 그랜저의 판매 가격은 트림별로 3천55만~3천870만원이다. 옵션 등을 감안하지 않은 2.4 가솔린 엔트리 모델의 기본 가격(3천55만원)은 K7 2.4 가솔린(3천90만원), 임팔라 2.5 가솔린(3천587만원), SM7 2.5 가솔린(3천430만원) 등 경쟁모델보다 저렴하게 책정됐다.

이날 시승한 차량은 가격이 4천505만원에 달하는 최고가 그랜저다. 가솔린 3.0 익스클루시브 스페셜(3천870만원)에 현대 스마트 센스, 19인치 휠, 헤드업 디스플레이, 파노라마 선루프 등 모든 옵션이 적용된 최상위 트림이다. 혼다 어코드 3.5(4천260만원), 한국GM 임팔라 3.6(4천536만원) 등에 관심이 있다면 고민이 될 법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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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차를 시승하면 이전 모델이나 경쟁 차종과 비교해 특출난 면이 있으면 빠지는 면도 있다. 부분적으로 뜯어보면 아쉬움은 남지만 신형 그랜저는 딱히 흠잡을 만한 부분은 없다. '그랜저'라는 명성에 걸맞게 차량을 구매하는 기준인 디자인, 성능, 안전, 공간, 편의, 연비, 가격 등을 두루 갖췄다.

비슷한 가격대와 성능을 지닌 국산·수입 경쟁 차종들이 즐비하지만, 프리미엄급 패밀리 세단의 구매를 고려하는 아빠들의 또 하나의 선택지로는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