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자동차 전장부품 시장 조기 진입을 위해 가속페달을 밟았다.
삼성전자는 신성장 분야 중 하나인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과 자체 오디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미국 전장전문기업 하만(Harman)을 인수한다고 14일 밝혔다.
인수 가격은 주당 112달러, 인수 총액은 80억달러(한화 약 9조3천840억원)며, 국내 기업의 해외기업 M&A 사상 가장 큰 규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약 2년여간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 확대를 위한 시동을 걸었지만, 관련 사업을 어떻게 이끌겠다는 포부를 뚜렷하게 밝히진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하만 인수를 선언하면서 커넥티드카 또는 스마트카 시장으로 향하는 삼성전자의 전략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이같은 움직임이 최첨단의 자율주행차 개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 자동차 전장사업 시작 이끈 BMW 7시리즈 ‘터치 커맨드’
삼성전자 자동차 전장사업은 지난 2015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5'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졌다.
엘마 프리켄슈타인 BMW 전기/전자 및 드라이빙 경험 담당 상임부사장은 지난해 1월 5일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의 CES 2015 기조연설 도중 등장해 터치커맨드(Touch Command) 시스템 운영 계획을 세계 최초로 밝혔다.
그는 “삼성전자 태블릿으로 BMW 차량의 시트 높낮이와 기울기, 에어컨 온도, 라디오 실행 등을 원격 조종할 수 있다”며 “안전하고 스마트한 운전을 위한 창의적인 사물인터넷(IoT) 서비스를 선보이기 위해 삼성전자와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BMW와 삼성전자의 합작품인 ‘터치 커맨드’ 시스템은 지난해 10월부터 국내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당시 BMW 코리아는 터치 커맨드 시스템이 탑재된 신형 7시리즈를 내놓으며 프리미엄 세단의 첨단화를 선언했다.
'BMW 그룹 2인자‘ 이안 로버슨 BMW 그룹 마케팅 총괄 사장은 “뉴 7시리즈 내 태블릿 PC뿐만 아니라 통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도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차발표회 기조연설에서도 여러 번 삼성전자를 언급하며 향후 두 회사간 긴밀한 협력을 약속했다.
■‘BYD 지분투자’ 전기차 시장에도 손 뻗어
삼성전자는 BMW 신형 7시리즈 국내 출시 이후, 약 10개월간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지 못했다.
지난 2월엔 삼성전자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16에서 ‘커넥티드 오토’ 협력 체계를 구축한다는 발표를 내놨지만 단순한 자동차 협력 체계로 알려져 내외신 언론들의 큰 주목을 얻지 못했다. 일부 자동차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이 정체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이같은 예상을 뒤엎고 지난 7월 세계 1위 전기차 메이커인 중국 비야디(比亞迪, BYD)에 30억위안(약 5천억원) 규모의 지분투자를 결정했다.
우리나라에서 정식 판매되지 않고 있는 BYD는 테슬라 등을 위협할 수 있는 전기차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 국내 전기차 전문 통계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글로벌 순수 전기차 출하량 상위 10개 모델 중 4개 모델이 중국산 차량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BYD의 e6가 7천759대 출하돼 전체 4위에 올랐다.
같은 BYD 소속인 전기차 모델 'Tang'의 경우 올해 1분기 글로벌 순수 전기차 및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차량 통합 판매량에서 전체 4위인 9천221대를 기록했다. 삼성전자가 커지는 BYD 차량의 입지를 활용해 향후 전기차 시장에서도 두각을 보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만 인수로 새 도약 준비
삼성전자의 자동차 전장사업 확장은 지난 9월말 발생한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으로 한 때 위기설이 나돌았다.
블룸버그와 씨넷은 지난 10월 13일 보도에서 이탈리아 자동차 전장부품 업체 마그네티 마렐리를 인수하려던 삼성전자의 시도에 차질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마그네티 마렐리는 FCA(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 그룹 소속 회사로 지난 8월부터 삼성전자에 인수될 가능성이 높은 회사로 알려졌다. 당시 삼성전자의 인수 움직임이 알려진 후 FCA 그룹 주가는 지난 8월 4일 뉴욕 증시에서 전 거래일보다 무려 10% 이상 상승하기도 했다.
하지만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사태가 터진 이후 삼성전자의 마그네티 마렐리 인수협상은 지지부진해졌다. 갤럭시노트7 사태로 삼성전자의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 확대가 주춤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같은 우려를 하만 인수로 뒤집었다. 하만 인수를 통해 연평균 9%의 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커넥티드카용 전장시장에서 글로벌 선두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하만이 보유한 전장사업 노하우와 방대한 고객 네트워크에 삼성의 IT와 모바일 기술, 부품사업 역량을 결합해 커넥티드카 분야의 새로운 플랫폼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삼성, 스마트카도 직접 만들까
앞으로 삼성전자의 자동차 전장부품 사업의 확장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BMW 뿐만 아니라 폭스바겐 그룹 소속 세아트, 다임러 그룹 등 전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와의 협업에도 적극 나섰다.
삼성전자는 지난 9월 열린 독일 베를린 IFA 2016에서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를 활용한 ‘디지털 카 키’ 협업을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이같은 사업 흐름을 봤을 때, 삼성전자가 스마트카를 직접 만들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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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정구민 교수는 “자율주행차나 전기차는 완성차 업체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등 IT 업체의 기술력도 요구되는 집합체나 다름없다”며 “삼성전자는 이같은 자동차와 IT 산업 흐름을 놓치지 않을 것으로 보여진다”고 밝혔다.
앞으로 삼성전자가 직접 자동차를 만들지에 대한 여부는 이재용 부회장 등 최고 경영진의 판단에 달렸다는 게 그의 예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