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차기 대통령은 과연 'IT산업의 적'일까? 소셜 미디어를 비롯한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지금 시점에서 이런 질문에 답을 하긴 쉽지 않다. 정치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 대통령이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생각처럼 많지 않기 때문이다. 거대 기업들의 합병 승인 여부에 대통령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순 없다.
하지만 대통령 고유의 막강한 권한을 토대로 정책의 큰 물줄기를 바꿔놓는 건 생각보다 수월하다. 이런 관점에서 IT정책과 관련해 가장 많은 관심을 모으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연방통신위원회(FCC)다.
오바마 행정부의 인터넷, 통신 관련 정책이 2013년을 기점으로 탄력을 받을 때도 FCC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오바마가 톰 휠러를 FCC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이 계기가 됐다.
톰 휠러 FCC 위원장은 오바마 행정부의 숙원사업이던 망중립성 원칙을 확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인터넷 서비스사업자(ISP)까지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2로 재분류하는 강수를 밀어부쳤다. 이 정책 덕분에 유선 뿐 아니라 무선 ISP까지 ‘커먼 캐리어’ 의무를 부과할 수 있었다.
오바마의 뒤를 잇게 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의 IT 정책 향방과 관련해 관심을 끄는 대목 중 하나도 바로 FCC다. 트럼프가 톰 휠러 후임으로 누구를 지명하느냐에 따라 통신, 방송 정책의 향배를 짐작해 볼 수 있게 된다.
■ 케이블업계 불만 1호 '셋톱박스 개방' 어떻게 될까
잘 아는 것처럼 FCC는 5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들은 대통령이 지명한 뒤 상원 인준을 받게 돼 있다. 오바마 행정부 땐 민주당이 3명을 지명했지만 이젠 공화당이 다수를 점하게 됐다. 각종 정책의 기조를 바꿀 수 있게 됐단 의미다.
톰 휠러 FCC 위원장은 제나초우스키의 뒤를 이어 지난 2013년 말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명한 것은 5월이었지만 10월말에 상원 인준을 받고 11월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따라서 5년 임기를 꽉 채울 경우 2018년 11월까지는 자리를 지킬 수 있다. 하지만 FCC 위원장은 대통령이 다른 정당 출신으로 바뀔 경우엔 물러나는 게 통상적인 관행이다. 차기 대통령이 후임자를 지명해 버릴 경우 사실상 권한을 행사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도널드 트럼프가 차기 FCC 위원장에 누구를 지명할 지는 관측된 바 없다. 그럴 경우엔 공화당 출신 중 가장 오래 FCC에 재임한 아짓 파이 위원이 임시 위원장 역할을 맡게 된다고 IT 전문 매체 아스테크니카가 전했다.
공화당 입장에서 FCC 정책 중 가장 눈엣 가시는 역시 망중립성 원칙이다. 톰 휠러 위원장이 워낙 강력한 망중립성 원칙을 만들어놓으면서 공화당 지지 기반인 통신사업자들의 불만을 잔뜩 고조시켜놨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은 ‘셋톱박스 개방’ 정책이다. FCC는 올들어 유료방송사업자들이 채널 및 프로그램 편성 정보를 외부 셋톱박스 제조업체 및 인터넷기반 방송 플랫폼에도 제공하도록 강제하는 규칙제정공고(NPRM)를 승인했다.
이 규칙이 실행될 경우 구글이나 애플, 넷플릭스, 훌루 등 모든 사업자들이 셋톱박스를 제작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컴캐스트 같은 유료방송사업자들은 서드파티 셋톱박스를 통해 고객들에게 방송 제공하는 것을 거부할 수 없다.
FCC에 따르면 미국 유료방송가입자들은 셋톱박스 렌탈 비용으로 연 평균 231달러를 지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쟁을 활성화해 셋톱박스 가격을 낮추고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생각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케이블 및 방송사업자들은 FCC의 셋톱박스 개방 정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 동안 트럼프는 오바마 행정부의 인터넷 우대 정책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따라서 톰 휠러 FCC 위원장이 셋톱박스 개방 정책을 확정하기 위해선 시간이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물론 공화당 쪽 위원들은 현 체제 하에서 셋톱박스 정책을 통과시키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으로 예상된다.
■ AT&T-타임워너 합병, FCC 심사 방향도 관심
더 큰 관심은 트럼프 행정부가 자리를 잡은 다음이다. 트럼프가 차기 FCC 위원장 지명권을 행사하고 숫적 우세를 확보한 이후엔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들에 손을 볼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 임기 내내 공화당 의원들은 FCC의 망중립성 정책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해왔다. 이제 공화당이 상하원 뿐 아니라 FCC까지 손에 넣게 됐기 때문에 후속 조치가 뒤따를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건 오바마가 FCC를 통해 자신의 신념이던 ‘망중립성’ 쪽에 무게를 실었던 것과 같은 차원이라고 보면 된다.
셋톱박스 정책의 운명도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다. 이 정책도 굳이 따지자면 ‘친인터넷, 반통신-방송’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FCC가 결정해야 할 또 다른 중요 의제는 AT&T와 타임워너 간의 합병이다. 미국에선 통상적으로 거대 합병이 성사될 경우 법무부와 FCC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법무부는 반독점법 위반 여부에 대해 집중 심사하는 반면 FCC는 거대 기업 간 합병이 소비자들의 이익에 해를 끼치지는 않을 지를 평가한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법무부보다는 FCC 심사가 더 까다로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유세 기간 동안 AT&T와 타임워너 합병을 강하게 비판했다. 두 회사 합병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순 없지만 FCC를 통해 간접 압박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위원장을 지명하는 방식으로 합병을 무산시킬 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기 초반에는 트럼프 의도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톰 휠러 위원장이 물러나지 않고 그대로 버틸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IT 전문 매체 아스테크니카가 잘 분석했다.
■ 톰 휠러, FCC 위원장 물러난 뒤에도 위원직 고수할 수도
현재 FCC 위원 5명 중 민주당 지명을 받은 사람은 톰 휠러 위원장을 포함해 3명이다. 위원들의 임기는 5년이며, 정책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매년 한 명씩 임기가 종료되도록 돼 있다.
현재 임원 중 민주당 출신인 제시카 로젠워슬 위원이 올 연말 임기 종료로 떠날 예정이다. 아스테크니카에 따르면 로젠워슬 위원 임기는 지난 2015년 5월 종료됐다.
하지만 임기 종료된 FCC 위원은 당해 의회 회기와 이듬 해 의회 회기까지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돼 있다. 로젠위슬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상원에서 재임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올 연말 물러날 예정이다.
톰 휠러 위원장의 거취도 관심사다. 2013년 임명된 톰 휠러는 2018년 10월까지 임기가 보장돼 있다. 하지만 트럼프 취임과 동시에 위원장 권한을 내려놓을 것이 확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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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 이후 거취다. FCC 위원장에서 물러나더라도 위원 자리는 그대로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스테크니카는 톰 휠러가 트럼프 취임 이후에도 위원 자리를 그대로 유지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전망했다.
그래야만 트럼프 지명을 받은 FCC 차기 위원장이 임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2대 2로 숫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