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사실상 법 시행의 마지막 관문인 헌법재판소의 문턱을 넘자, 국내 대기업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기색이다.
국내 10대 그룹 한 관계자는 "사내 법무팀은 물론 대형 로펌 등에 자문을 구해 메뉴얼 구축을 논의하고 있지만, 상정할 수 있는 예외 상황이 너무 많아 마땅한 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우선 삼성·현대자동차·SK·LG 등 4대 그룹의 경우 임원들이 법 시행일인 오는 9월 28일 이후의 골프 약속은 모두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의 경우 공무원, 기자 등을 상대로 골프 접대를 관행적으로 해왔으나 김영란법에서는 골프 접대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지한 탓이다.
김영란법에는 공직자와 교사, 언론인, 공공기관 종사자 등이 직무와 관련 있는 사람에게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을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시행령을 통해 3만원이 넘는 음식 대접이나 5만원 이상의 선물, 10만원이 넘는 경조사비도 받으면 처벌받도록 했다.
신제품 출시 때마다 언론사를 대상으로 진행해 온 체험 행사나 전시회 초청 등 기업들의 마케팅 활동도 대폭 손질이 불가피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발간한 김영란법 해설집에 따르면 '직무 관련 공식적 행사에서 통상적·일률적으로 제공하는 교통·숙박·음식물 등의 금품'을 예외로 규정하고 있지만, 이 조항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통상적·일률적'에 해당하는 범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어 합법과 위법의 경계를 판단할 만한 기준이 불투명하다.
당장 법 시행일 이후 신차 출시를 앞둔 자동차업계는 고민에 빠졌다. 완성차업체들은 신차 출시와 시승 행사를 위해 미디어 등을 대상으로 장소 섭외와 차량을 준비한다. 행사가 서울 외 지역에서 열릴 경우에는 교통편과 식사 등을 제공하고 관련 기념품도 제공해 왔다.
A사 관계자는 "현행처럼 행사를 진행해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 지 명확하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며 "일단 경비를 법에 저촉되지 않는 수준으로 줄이고 기념품 등도 제공하지 않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라고 털어놨다.
B사 관계자는 "법 시행 이후 예정돼 있는 신차 출시나 시승행사 진행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면서도 "법 시행일이 가까워지면 구체적인 지침이 나오지 않겠느냐. 그 때 가서야 제대로 된 대응책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전자업계는 매체 대상 초청행사가 내년 1월에나 마련돼 있어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매년 1월과 9월 각각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와 국제가전전시회(iFA)에 참가를 원하는 언론사를 대상으로 현지 교통편과 숙박을 지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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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회사들 역시 법을 철저히 준수한다는 게 기본 원칙만 세워둔 채 세부 대책은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각 기업마다 법 시행 초반에는 무리하게 행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일단 첫 케이스로 적발돼 두고 두고 위법 행위가 적발될 때마다 사례로 회자되는 '낙인'이 찍히는 일은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