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CJ 합병 2라운드, 시장획정이 관건

"공정위 기준, 이중적이면서도 대세 거슬러"

방송/통신입력 :2016/07/06 14:10    수정: 2016/07/06 14:16

공정거래위원회가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인수합병(M&A)에 대해 1차적으로 불허 판단을 내렸지만 그게 최종적인 것은 아니고 한 두 차례의 고비가 더 남아 있어 1차 판단의 번복 가능성이 얼마나 될 지에 대해 관심이 커지고 있다.

또 그 고비에서 벌어질 논쟁의 최대 관건은 '경쟁제한성을 판단하기 위한 시장 획정의 문제'다.

이를 두고 공정위의 최근 기준과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 및 방송통신위원회가 오랜 토론 끝에 합의한 전반적인 정책 기조가 충돌하고 있다.

"공정위 시장획정에 오류 있다"

인수합병으로 인한 경쟁제한성의 발생 유무 및 강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당 시장에 대한 정의 즉 ‘시장 획정’을 해야 한다.

공정위의 경우 이번 합병에서 '케이블TV 사업자의 지역권역'을 기준으로 했다.

미래부 및 방통위 등 주무부처와 이 합병에 반대했던 경쟁업체 두세 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는 이 기준이 오류라고 지적하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부는 과거 케이블TV가 처음 출범 했을 당시 유료방송 시장 활성화를 위해 사업자별로 특정 지역에서 독점적인 사업권을 부여했다. 케이블TV사업자(SO)는 전국 78개 권역으로 나눠져 있다. 하지만 전국 유료방송 사업자인 IPTV사업자가 2008년 등장하면서 권역별로 시장을 획정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한 권역에서 SO, IPTV, 위성방송까지 최소 3개 형태의 사업자가 경쟁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철 고려대학교 교수는 “IPTV사업자, OTT사업자, 각종 동영상 서비스 업체들이 다 전국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권역별로 시장을 획정한다는 건 정말 오래된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미래부가 유료방송정책을 세울 때는 물론 통합방송법에서도 시장점유율 등을 전국기준으로 따지고 있다”며 “공정위의 이번 결정은 정부 정책이나 현행법을 다 무시하고 이해못할 오래된 방식으로 시장을 정의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현재 정부는 전국단위를 기준으로 점유율을 제한하는 합산규제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공정위 오락가락-이중잣대도 문제"

이번 결정은 또 케이블TV와 IPTV에 이중잣대를 들이댄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전국 유료방송 가입자 1위 업체인 KT의 점유율을 권역별로 따졌을 때 상당히 많은 권역에서 시장 지배적 위치에 있다.

방통위 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KT계열이 가입자 점유율 1위인 권역은 9곳이다. 이는 2013년보다 4개 증가한 것으로 권역 점유율 1위를 뺏어오는 속도가 빠르다.

최성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IPTV서비스가 대도시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IPTV 사업자들의 점유율을 권역별로 따졌을 때 50%넘는 경우가 상당할텐데 이런 경우에는 시장 지배적 사업자가 아니라고 봐야하느냐”고 반문하며 "공정위의 시장획정이 불합리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케이블TV업계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한 케이블TV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결정은 지난해 유료방송 점유율을 합산규제(전국 가입자 점유율 33% 제한)로 일원화한 정부의 유료방송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권역별 점유율을 따질 경우 전국서비스 제공하는 대형 IPTV사업자 보다 중소 케이블업계를 더 규제하는 모순이 생긴다”고 말했다.

논리적으로 볼 때 전국단위의 대기업 독과점은 그대로 놔두거나 보호하면서 지역단위 소규모 독과점(그러면서도 크게 이익을 내고 있지 못하는) 기업만 가혹한 규제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비판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공정위가 유료방송 시장 획정에 대해 오락가락 입장을 바꿔 시장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케이블TV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공정위는 이미 두 개 권역을 하나로 합치는 M&A에 대해서도 조건부 승인해준 바 있고 지난해 합산규제 때는 SO권역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내놨다"며 "이제와서 권역별 지배력 논리를 들이대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권역별 1위 사업자 표시

방송시장 골든타임 놓칠까 우려

공정위가 권역별 지배력을 근거로 이번 M&A에 대해 불허 결정을 내리자, 이번 정권 내에선 통신사업자와 케이블TV사업자간 M&A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케이블TV 업체들은 태생적으로, 권역별로 독점 사업권을 가지고 있는 상황인데, 권역별 점유율로 시장 지배적 지위를 판단한다면 앞으로 어떤 M&A도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케이블TV 사업권역 78개 중 1위 사업자가 이미 시장 과반을 차지하는 43개다.

IPTV를 보유한 이동통신사업자가 어떤 케이블TV 사업자를 인수한다 해도 권역별 시장 지배력 규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케이블TV 업계의 경우 가입자 및 매출 감소, 투자 정체 등 3중고를 겪고 있어 M&A를 통한 탈출전략 모색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데 있다. IPTV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이대로 두면 케이블TV는 모두 고사하고 말 것이란 위기의식이 높다.

기술의 발전으로 삐삐가 사양산업이 되고 그게 모두 이동통신 서비스로 흡수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 사례와 비슷한 처지가 된 것이다.

따라서 시장 내에서 M&A를 통한 자연스런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이다.

방송통신 기술의 급격한 융합환경에서 이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시장의 구조조정이 지연되면 정부가 정책으로라도 유인을 해야 할 판이다. 안 그러면 조선업과 해운업에서 보듯 부실 기업만 더 늘어날 수 있다.

공정위 판단을 업계가 비판한 것은 되레 정부가 엉뚱한 판단으로 그 길목을 막아버렸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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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진 교수는 “살 수 있는 기업이 외국 자본 밖에 남지 않으면 과연 방송산업을 외국 기업에 노출하는 것이 괜찮은지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철 교수는 “공정위 불허 결정이 확정된다면 적어도 이번 정권에선 통신-방송간 M&A가 이뤄지기 어려울텐데 앞으로 2년간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국가의 방송경쟁력 차원에서 과연 바람직한지 의문”이라며 “공정위가 최종 판단에서 현명한 결정을 해주길 바랄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