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광' 고(故) 앤디 그로브...그는 어떻게 전설이 됐나

D램 포기-펜티엄 리콜 등 '타협하지 않는 CEO'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6/03/22 16:11    수정: 2016/03/22 16:41

실리콘밸리의 전설, 인텔의 전설적인 CEO, PC 산업의 개척자...

21일(현지시간) 향년 79세로 타계한 앤디 그로브 前 인텔 CEO를 두고 외신들이 일컫는 수식어들이다. 그만큼 고인이 글로벌 IT 업계에 미친 영향이 지배적이란 평가다.

특히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는 그의 책 제목은 경영자들에게 경전과 같은 문구로 전해지고 있다. 앤디 그로브는 비단 IT 업계에만 머물지 않는 인물이다.

본명 '안드라스 그로프'는 인텔의 사실상 창립 멤버다. 또 지금의 인텔을 만든 직원이었고 최고 경영자였다. 인텔을 글로벌 IT 기업 반열에 올려놓은 사업적인 전환도 그의 몫이었다.

때문에 앤디 그로브를 향한 애도와 찬사에는 과함이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가 스타트업의 성지로 불렸던 것도 그를 포함한 인텔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세 과학자가 시작한 인텔은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로 컸을 뿐 아니라 경제불황 당시 미국 경제의 버팀목 역할까지 맡았다.

인텔의 공동 창업자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가 인텔을 만들었다면, 1호 직원 격인 앤디 그로브는 인텔을 오늘날 세계 굴지의 기업으로 만든 인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앤디 그로브는 1979년 인텔 사장에 올랐다. 이후 2005년 회장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25년 동안 IT 산업의 중심에서 인텔을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회사로 이끌었다. 브라이언 크르자니크까지 여섯명의 CEO를 거쳤지만 경영 수완은 앤디 그로브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인텔 내부에서 앤디 그로브를 추앙하는 대표적인 이유중에 하나가, D램 사업을 전격적으로 포기한 일화가 꼽힌다.

인텔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회사다. 하지만 경쟁에 따른 수익 심화가 회사에 유리하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1985년부터 2년간 7곳의 공장을 폐쇄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이같은 결단으로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유닛(MPU)에 집중한다.

지금의 사업 구조를 보면 당연한 결정이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쉽지 않은 큰 결단이었다. 과감한 D램 사업 포기는 인텔을 현재 CPU 시장의 절대 강자로 올려놓는 초석이 됐다.

펜티엄 CPU를 내놓고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던 인텔이 나눗셈 연산에 오답을 내놓는 이른바 ‘펜티엄 버그’를 겪는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가 될 수 있는 순간을 딛고 선 이도 앤디 그로브다.

당시 오류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펜티엄 버그를 은폐하려 했다는 이유로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어떤 관용도 통하지 않던 당시, 앤디 그로브는 전량 리콜 결정을 내린다. 얼마나 엄청난 교환 비용이 들지 가늠도 안되던 때지만, 위기를 극복한 대표적인 경영 사례로 손꼽히는 대목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앤디 그로브는 1997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꼽은 올해의 인물 자리에 오른다. 당시 트랜지스터 발명 50주기가 되던 해다.

국내 IT 업계와도 연이 깊다. 앤디 그로브가 제정한 세계 반도체 분야 최고상이 국내 기업인에 주어진 것이다. ‘황의 법칙’의 주인공인 황창규 KT 회장이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문을 총괄하면서 2006년 앤디 그로브 상을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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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이 앤디 그로브에게 칩셋 공급사를 자청했다 한마디로 거절당한 일화도 유명한 이야기다.

미국의 IT 대기자 마이클 말론은 그의 저서 ‘인텔, 끝나지 않은 도전과 혁신(원제 The Intel Trinity)’에서 “인텔이 앤디 그로브가 CEO로 재직하는 동안 반도체 산업계를 지배한 것은 그가 경쟁에서 승리하려고 타협하지 않는 자세를 잠시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