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PC시장, 겉보기만큼 나쁘진 않다

환율 요인-교체주기 감안 땐 '회복 기미' 보여

컴퓨팅입력 :2016/01/14 11:11    수정: 2016/01/14 13:12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 기자 페이지 구독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지난 해 세계 PC시장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출하량이 10% 가까이 줄어들면서 2008년 수준으로 후퇴했다.

드러난 수치만 보면 ‘최악’이다. 하지만 조금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생각만큼 나쁘진 않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곳이 미국 디지털 문화 전문 매체인 와이어드다.

와이어드는 13일(현지 시각) PC 시장이 전문가들이 생각하는 만큼 나쁘지는 않다고 주장했다. 산업 분류나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하면 ‘양호한 상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수준도 아니란 얘기다.

지난 해 PC 출하량이 크게 줄어든 가운데 애플만 나홀로 강세를 유지했다. 사진은 맥북 (사진 = 씨넷)

■ IDC, 하이브리드 포함 땐 7.5% 감소

일단 드러난 수치부터 살펴보자. IDC는 작년 세계PC 판매대수가 2억7천620만대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전년에 비해 10.4% 감소한 수준.

더 충격적인 건 2억9천960만대를 기록했던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출하량 3억대에 이르지 못했다. 8년 전 수준으로 회귀한 셈이다.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도 비슷한 결과를 내놨다. 가트너는 작년 PC 출하대수가 2억8천870만대로 집계했다.

전년에 비해 8% 줄어든 수치. 가트너 역시 작년 PC 시장 규모가 3억 대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최악’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와이어드는 ‘드러난 숫자’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봤다.

가트너와 달리 IDC는 서피스 같은 하이브리드 제품을 PC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사진은 MS 서피스북 (사진=씨넷)

일단 집계방식 문제다. 현재 가트너는 마이크로소프트(MS) 서피스 같은 하이브리드 제품까지 PC 범주에 넣고 있다. 하지만 IDC는 하이브리드는 집계하지 않는다.

두 회사의 수치에 차이가 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실제로 IDC 조사 수치를 가트너 방식으로 적용할 경우 PC 출하량 감소율은 7.5%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 달러 강세로 미국 외 지역 PC값 상승 악재

와이어드는 주요 PC업체 중 유일하게 성장세를 보인 애플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해 애플은 PC 출하량이 5.8%(가트너)와 6.2%(IDC) 상승한 것으로 추산됐다. 여기에 레노버 역시 미국 내 출하량이 14.5%나 증가하면서 힘을 냈다.

물론 레노버의 성공은 ‘투 인 원’ 전략이 주효한 덕분이다. 하지만 애플은 다르게 봐야 한다. 여전히 혁신적인 PC 제품에 대한 수요는 적지 않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해 PC 시장엔 맥북에 필적할 혁신 제품이 꽤 등장했다. 이를테면 델의 XPS13 같은 제품도 혁신성 면에선 애플에 뒤지지 않는다.

와이어드는 이 같은 상화을 전해주면서 “이들이 (애플에 필적할) 마케팅 능력만 보여준다면” 꽤 인기를 누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델의 XPS13 울트라북. (사진=씨넷)

미국과 나머지 지역의 PC 시장 상황이 확연히 달랐던 점도 꼼꼼하게 살펴볼 부분이다. IDC와 가트너는 지난 해 미국 PC 시장이 각각 2.6%와 2.7% 감소한 것으로 집계했다. 마이너스 성장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몰락이라고 할만한 수준도 아니다.

반면 유럽, 중국 등 나머지 주요 시장들은 최악의 상황을 면치 못했다.

특히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가 굉장히 낮은 수준이었던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와이어드가 지적했다. 그러다보니 유럽에선 PC 가격이 꽤 상승했다. 당연히 구매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일본, 중국, 라틴아메리카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브라질에선 자국 통화 평가절하로 PC 가격이 엄청나게 뛰었다.

와이어드는 마지막으로 지난 해 여름 출시된 윈도10도 나쁜 쪽으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 해 윈도10을 출시하면서 기존 제품 이용자들은 무료 업그레이드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 해 PC 교체 수요에 나쁜 영향을 미쳤던 윈도10이 올해는 어떤 역할을 할까 (사진=씨넷)

그런데 이게 오히려 PC 구매엔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게 와이어드 분석이다. 윈도7의 한계를 상당 부분 해결해주면서 PC 교체를 고려하던 소비자들이 구매 시기를 뒤로 미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요인들이 올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달러 강세 요인은 세계 경제와 관련된 부분이라 당장 뭐라고 전망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몇몇 요인들은 올해엔 오히려 긍정적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와이어드가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 올하반기 기업용 PC 교체 수요 몰릴 듯

그 중 주목할 만한 부분은 기업용 PC 수요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기업들은 새로운 운영체제(OS)가 등장한 이후 곧바로 PC를 교체하진 않는다. 통상적으로 12개월에서 18개월 정도 추이를 지켜본 뒤 안전성과 호환성 문제가 해결됐다는 판단이 들 때 업그레이드를 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 수요가 올 하반기에 본격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IDC의 로렌 로버드 부사장은 와이어드와 인터뷰에서 “올 하반기엔 PC 교체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기업용 PC 수요 뿐 아니라 업그레이드를 미뤘던 일반 사용자도 주머니를 열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런 요인들이 올해 PC 시장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게 IDC의 분석이다.

출시에 앞서 카운트다운 중인 오큘러스 리프트.

가상현실 기기인 오큘러스 리프트 출시 역시 PC 시장엔 나쁘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여기에다 대형 폰의 등장으로 태블릿 수요가 줄고 있는 점 역시 오히려 PC엔 부정적이진 않다.

물론 상황은 녹록하지는 않다. 여전히 PC의 앞길엔 험난한 자갈밭이 기다리고 있다. 개인용 기기 시장에선 여전히 모바일 기기에 밀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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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역시 침체 국면을 벗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PC 같은 고가 제품 구입을 선뜻 결정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도 PC 시장은 소폭 상승 혹은 소폭 하락하는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전성기가 끝난 건 분명하단 얘기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수치처럼 ‘몰락을 향해 가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 내몰린 것은 아니란 게 와이어드의 결론이다.

김익현 미디어연구소장sini@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