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4대 이동통신사들의 보조금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 정비를 앞둔 국내 이동통신 시장에 여러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장 활성화 차원에서 단말기 지원금 상한(현행 33만원)을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미국 사례에서 보듯 보조금이 더 이상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높아질 전망이다. 보조금 경쟁에서 요금제 경쟁으로 시장이 움직여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것으로 기대된다.
실제로 정부도 6월로 시행 할 예정인 단통법 개선방안에서 지원금 상한 대신, 요금제에 따른 지원이 골고루 이뤄질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12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미국 4대 통신사 중 하나인 스프린트와 AT&T가 ‘2년 약정 보조금’ 제도를 폐지했다. 이로써 2013년 3월과 지난해 8월 각각 보조금 지원을 중단한 T모바일과, 버라이즌에 이어 미국 이통4사 모두 보조금을 없앴다.
이 같은 결정은 시장이 포화되면서 신규 가입자 유치를 위한 투자비용이 더 이상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말기 역시 성능이 상향평준화 돼 더 이상 혁신적인 모델이 나오기 힘들고 단말기 교체 수요가 예전만 못해서다.
국내 시장 역시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기기 성능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고, 이미 대다수 국민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어 보조금 지원으로 신규 가입자를 유치할 필요성이 적어졌다.
결국 미국처럼 보조금을 없애거나 혜택을 줄이는 대신, 요금제에 따른 혜택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질 전망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4년 10월부터 시행된 단통법으로 정부가 휴대폰 보조금을 최대 33만원으로 규제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지원금을 받지 않은 단말기로 서비스에 가입하거나 개통 된지 2년이 지난 단말기 사용자, 2년 약정 이후 해당 단말기를 계속 사용하는 이용자에게 20% 요금할인을 제공하고 있다.
단통법은 소비자들의 통신비 부담을 낮추고, 보조금 과열 경쟁으로 소비자들이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시행됐다.
하지만 문제는 단통법 시행으로 고객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가계 통신비 부담이 크게 줄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오히려 보조금 상한선이 정해져 있어 더 큰 폭의 할인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불만도 제기된다. 보조금 상한선을 높여 고객들이 단말기 구입 시 할인 혜택을 더 크게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럼에도 정부와 전문가들은 보조금 상향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4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단말기 지원금 상한액을 30만원에서 33만원으로 올렸지만 실제 대다수 단말기에 지급된 지원금은 이보다 낮았다. 즉 상향선이 낮아서 지원금이 적게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이통사들이 지원금을 높게 책정하지 않는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다.
국내 이통사 시장 점유율은 SKT(5): KT(3): LG유플러스(2)로 고착화 돼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스마트폰 1대씩은 보유한 포화된 시장이다. 이통사들이 굳이 예전처럼 보조금을 태워 고객을 유치할 필요가 줄었다는 뜻이다. 보조금을 태워 가입자를 유치해도 결국 경쟁사에 또 다시 빼앗기고 마는 머니 게임이자 제로섬 게임이다.
특히 5G 시대를 앞두고 망고도화에 막대한 투자비를 쏟아 부어야 하는 상황에서 이통사들이 보조금에 태울 수 있는 비용의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구나 망 교체 주기가 점차 단축돼 투자 대비 비용을 회수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통사들은 예전처럼 출혈경쟁에 쉽사리 뛰어들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올 6월이면 나올 단통법 제도 개선방안이 단말기 지원금 상한 인상에 큰 힘이 실리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미국 이통사 역시 보조금을 모두 폐지했고, 현행 상한선인 33만원의 보조금이 지급되는 경우도 드물어 보다 현실적인 정비안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기획재정부가 검토 대상으로 밝힌 개선방안은 ▲이통사 현상경품 지급 허용 ▲신용카드사 연계 단말기 할인 활성화 ▲20% 요금할인제 안내 의무화 등이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은 작년 말 한 라디오방송에서 “단말기 지원금 상한액을 수정하면 오히려 더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며 “지원금 상한액이 다시 높아지면 고가 요금제와 불필요한 부가서비스 강제 등 때문에 가계통신비가 더 증가되는 역효과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 “지원금을 올리기보다 고가요금제 뿐만 아니라 중저가 요금제에도 더 많은 지원금이 제공될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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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는 “미국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 포화된 시장에서 보조금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면서 “이통사들로부터 단말기 가격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통사들이 차별화된 요금제로 서로 경쟁하고 이를 통한 혜택이 소비자들에게 주어지는 근본적인 유통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중저가폰 시장이 커짐에 따라 국내 제조사들도 달라진 시장 환경을 제대로 파악해 거품이 잔뜩 낀 출고가를 낮추고 중저가폰 개발과 시장 개척에 적극 주력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정부도 이번 개선방안을 통해 소비자들이 당장 체감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들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