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전장(電裝)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차세대 스마트카의 종착역으로 주목받고 있는 '자율주행자동차' 시장의 경쟁 구도가 급속도로 재편될 전망이다.
현재 글로벌 완성차업계와 IT(정보통신)업계간 상호협력 관계에서 향후 업체간 경쟁이 심화되고 이해득실에 따른 '합종연횡'이 잇따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자율주행차는 카메라 등 주행환경 인식장치와 자동항법장치를 바탕으로 조향과 변속, 가속, 제동을 스스로 제어해 목적지까지 주행할 수 있는 차량이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완성차업체는 물론 구글·애플 등 IT 기업들도 자율주행차 기술력 확보에 전사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국내에서 펼쳐질 이종(異種) 업체간 경쟁에 눈길이 쏠린다. 자율주행차 시장의 왕좌 자리를 놓고 완성차업계의 수장인 현대자동차와 핵심 부품 기술력을 갖고 있는 삼성·LG전자의 치열한 수읽기가 불가피하다.
현대차는 선택지 중 우선 독자노선으로 가닥을 잡았다. 자율주행차의 두뇌에 해당하는 핵심부품인 반도체 칩을 직접 개발한다.
2012년 설립한 반도체 설계 전문 계열사 현대오트론이 반도체를 설계한다. 그룹 차원에서 올해부터 2018년까지 스마트카, IT기술 개발에 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중 상당액은 자율주행용 반도체 칩 개발에 집중 투여될 예정이다.
다만 생산은 자체 공장이 아닌 파운드리(위탁생산) 방식을 택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기아차에 탑재되는 차량용 반도체는 현대오트론에서 설계돼 외부에 생산을 맡긴 뒤, 이를 현대모비스가 모듈화 해 공급한다. 자율주행용 반도체 역시 이같은 방식이 유력하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자동차 전장부품의 첨단화로 수천개에 달하는 반도체가 필요해지면서 전용 반도체의 자체 개발 기술 확보가 시급하다"며 "개발 진행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수년 내 자율주행차 반도체 칩과 센서의 자체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 중 전자부품의 비중은 20~40% 정도다. 고가의 플래그십 차종일 수록 이 비중은 더 높아진다. 최근 선보인 제네시스 EQ900에는 완전 자율주행 전 단계인 부분 자율주행 기술인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HDA)'이 탑재됐다. HDA에는 차량 및 차선을 인식하는 카메라, 충돌 위험을 감지하는 레이더, 종합적인 주행 상황을 데이터로 분석해 핸들과 가속·감속페달을 작동하는 전자제어장치(ECU) 등이 적용됐다.
이를 통해 주행 시 전방 차량과의 간격을 감지해 거리를 자동으로 유지하고 자동으로 차선을 유지해 주며 과속 위험 구간을 인지해 차량 속도를 스스로 낮춘다. EQ900에 들어간 전자부품은 약 4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의 자율주행차 반도체 칩 자체 개발은 속속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달 22일 서울 도심의 실제 도로에서는 자율주행 선행 기술인 혼잡구간주행지원시스템(TJA)을 선보였다. 이는 EQ900에 적용된 HDA보다 한 단계 진보한 기술로, 다양한 센서 정보를 융합하고 판단 및 제어 기술을 향상해 혼잡구간에서도 스스로 차선 변경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자율주행차의 반도체 등 핵심기술을 향후 경쟁 관계에 놓일 지 모르는 기업과 협업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관련 기술확보에 총력을 기울여 자체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독자기술 개발의 성공 여부와 기술 만족도, 수익성 등 여러 가지를 따져본 뒤 다른 업체와 공동 기술 개발에 나설 가능성도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내다봤다.
현대·기아차는 특허 공유단체 가입을 통해 자율주행 등과 관련한 특허 활용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지난 10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서 리눅스 기반오픈소스 특허 공유단체 'OIN(Open Invention Network)'에 가입했다. 이 단체에는 구글, IBM, 소니 등 글로벌 IT업체들이 회원사로 있다. 회사 측은 공유된 특허 기술을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비롯해, 차량간 통신 등 미래 자동차에 대한 기술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래차 시장을 새로운 먹거리로 삼고 지난 9일 조직개편을 통해 전장사업팀을 새로 출범시켰다. 주력사업인 스마트폰시장에 한계를 느끼고 글로벌 기업들이 앞다퉈 나서고 있는 미래차시장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우선 친환경·자율주행차 관련 부품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는 영역 확대도 점쳐지지만 완성차시장 진출에 대해 회사 측은 일축한 상태다. 15년 전의 실패가 아직은 부담스럽다는 분석도 나온다.
B2B(기업간 거래) 사업이라는 특성상 앞서 시장에 뛰어들며 이미 여러 완성차업체들과 실적을 쌓은 LG전자에 당장은 밀릴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술력을 갖춘 만큼, 장기적으로는 시장 판도가 뒤집힐 가능성도 적지 않다.
자율주행차 기술이 발달할수록 차량 데이터 저장은 물론, 정보분석을 바탕으로 한 차량제어 기술의 적용은 확대된다. 이에 따른 반도체의 중요성은 점차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아우디에 첨단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키로 하는 등 전장사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최대 강점인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활용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분야에서의 활약은 이미 예고된 일이다.
올 10월 출시된 BMW 신형 7시리즈에는 삼성전자 태블릿 PC를 활용한 터치 커맨드 시스템이 탑재됐다. 태블릿으로 주행을 제외한 차량의 좌석 조절과 냉·난방 컴포트 기능, 라디오 및 동영상 등 다양한 기능을 실행할 수 있다. 앞서 지난 3월에는 폭스바겐 그룹 계열 세아트와 함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구축 협약을 체결하며, 스마트폰 연동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미러링크'의 입지 강화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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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완성차업체와 각별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다양한 형태의 협업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린다. 삼성전자는 그간 BMW와 CES 전시회 등에서 함께 첨단 융합IT 기술을 선보여왔다. 지난 2000년 삼성자동차를 넘기며 인연을 맺어온 르노그룹과의 관계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