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에 대한 여론과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으로 국민들의 눈과 입을 막기 위한 규제정책들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10일 방송통신심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사이버상에서 명예훼손 의심 글을 제3자 요청이나 정부기관 직권으로 삭제할 수 있도록 하면서, 대통령이나 정치인 등에 대한 비판글들이 일방적으로 삭제되거나 수정되는 일이 빈번해질 전망이다.
인터넷상에서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 권력에 대한 비판 가능이 심각하게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광범위하게 제기되고 있다.
방심위는 10일 전체회의를 열고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 규정' 개정안을 심의 의결하고 오는 16일 공표, 시행된다고 밝혔다.
방심위의 개정안 처리로, 앞으로는 인터넷상에서 명예훼손이 의심되거나 확실한 글을 제3자가 신고해 삭제하거나 차단시킬 수 있게 된다. 또 필요에 따라서는 방심위 직권으로 심의가 가능하다.
기존에는 당사자나 대리인이 삭제, 차단 조치를 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제3자도 문제라고 판단되는 글을 삭제하거나 차단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권력을 쥔 대통령이나 정치인, 재력가 등을 지지하는 특정 단체들이 해당 개정안을 악용,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방심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기관이나 인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악용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일반인들의 명예훼손 의심 글까지 방심위가 모두 접수 받아 일일이 조치를 취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하겠냐는 의문도 제기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방심위가 당초 개정안 처리 명분으로 내세운, 인터넷 명예훼손으로 고통 받는 일반인, 특히 노인이나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의 배려는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방심위가 비판여론을 의식해 공적 인물의 경우 제3자 신고를 제외한 규정도 논란의 소지가 크다.
방심위는 예외조항을 둬 대통령을 비롯한 공적 인물에 대한 명예훼손 심의 신청은 당사자 또는 대리인으로 제한했다. 방심위가 밝힌 공적 인물 범위는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 ▲정당 대표, 최고위원 및 이에 준하는 정치인 ▲기획재정부장관이 지정한 대규모 공공기관장 ▲금융기관장 ▲자산총액 1조원 이상의 기업 또는 기업집단의 대표 등이다.
언론에 공개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경우 등 위원회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도 제3자 명예훼손 신고가 제한될 수 있다. 또 사인이지만 중대한 범죄 행위로 사회 이슈의 중심이 되는 경우 등도 제한 대상이다.
그러나 이 같은 보완책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명예훼손글이 법원의 확정 판결을 받으면 공적 인물이어도 제3자 신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 산케이 신문이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대한 의혹을 법원이 명예훼손으로 판결하면 박 대통령이 아닌 제3자에 의해 해당 글이 전부 삭제될 수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 언급된 정치인들도 법원으로부터 명예훼손 판결을 받아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공적 인물의 경우, 법원으로부터 명예훼손 판결을 손쉽게 받아내 제3자가 나서 문제가 된 글들을 삭제, 차단 조치할 가능성이 크다. 사실 관계보다 특정인의 명예 훼손 여부에 초점이 맞춰져 법원 판결이 내려지는 경향이 있어 사실이 은폐되거나 왜곡될 우려가 있다.
아울러 언론중재위원회가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인터넷 기사, 카페와 블로그에 게재된 복제 기사, 댓글을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을 언론중재위원회가 갖도록 허용해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는 더 억압될 전망이다.
고려대학교 법학대학원 박경신 교수는 “민간인이 판결문이 있다고 해서 방심위가 이를 적극 입수해 명예훼손 글을 찾거나 삭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결국 방심위가 잘 아는 사람, 또는 높은 사람들의 명예훼손 당했다는 판결문을 입수해 문제 되는 글들을 삭제하거나 차단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일단 방심위원장이 법원 판결문이 있더라고 직권심의는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만큼 이 내용이 잘 준수되는지 지켜볼 예정”이라면서 “이번 개정안이 국민들의 자동적인 평판 관리 시스템 기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최성진 사무국장은 “방심위가 스스로 인지했거나 제3자에 의해 게시물이 차단될 경우, 해당 글 게시자와 명예훼손 당사자 간의 분쟁이 더 빈번해지고 커질 수도 있다”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려되는 부분은 있지만 일단 개정안이 시행되는 것을 지켜보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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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관계자는 “신문법 시행령 개정, 언론중재법 개정, 방심위 사이버명예훼손 개정 등 정부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책들을 그럴듯한 명분으로 추진하고 있다”면서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련의 정책들이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의원 역시도 수사권도 없는 방심위가 인터넷명예훼손을 심의하겠다고 나선다는 비판과 함께 “방심위는 국민의 기본권리를 짓밟고 특정 권력층을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권력자의 호위병 역할을 자처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라며 “방심위에 시급한 것은 하루속히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진정으로 명예훼손을 당한 피해자를 신속히 구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