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경영 전면에 나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실질적으로 개입한 첫 사장단 인사의 키워드는 파격적인 변화 보다는 안정으로 요약된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부재가 길어지면서 연말 인사를 앞두고 이재용 부회장이 핵심 경영진 물갈이를 통해 친정체제를 구축할 것이란 전망도 일부 나왔지만 뚜껑을 연 결과는 정반대였다.
실적이 부진한 계열사의 경영진을 성급하게 교체하기 보다는 후배들에게 자연스레 길을 터주며 점진적인 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비주력계열사의 매각과 통합 등 숨가쁜 사업구조 재편이 잇따라 이뤄지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삼성그룹은 1일 사장 승진 6명, 대표이사 부사장 승진 1명, 이동·위촉업무 변경 8명 등 총 15명에 대한 사장단 인사를 내정, 발표했다.
역대 최소 수준이었던 지난해 사장 승진자 3명과 비슷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깨고 2배 이상 많은 수의 승진자가 나왔다. 이번 신임 사장단의 평균 연령은 54.9세로 지난해 53.7세 보다 높다.
이번 인사로 삼성그룹 사장단 규모는 현재 53명에서 52명으로 줄어들었다. 60명 규모에서 지난해 53명으로 줄어들었던 삼성 사장단 규모가 올해는 40명대로 크게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지만 예상보다 인사폭은 크지 않았다. 부사장 7명이 승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총 8명의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셈이다. 삼성그룹은 퇴직 임원에 대해서는 별다른 코멘트를 하지 않고 있다.
올해도 부회장 승진자는 없었다. 당초 생활가전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 사장과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무난히 성공시킨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의 부회장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지난해에 이어 2년째 부회장 승진자가 나오지 않았다.
오너일가 승진도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올해 인사에서 이뤄지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의 부재가 길어지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주력사업 부진에 따른 구조조정 및 사업구조 재편 등 그룹 내 현안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오너 일가 중에서는 이서현 사장만 삼성물산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 겸 제일기획 경영전략담당에서 삼성물산 패션부문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삼성카드·삼성증권 등 금융계열사, 삼성그룹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로 부상한 삼성물산 등 핵심계열사 수장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켰다.
삼성전자의 경우 부품(DS), 소비자가전(CE), 모바일(IM) 3개 부문 대표가 모두 유임됐다. 대신 권오현 DS부문 총괄 부회장과 윤부근 CE 부문 대표이사 사장, 신종균 IM부문 대표이사 사장이 겸직하고 있던 종합기술원장, 생활가전사업부장, 무선사업부장 보직은 후배 경영진들에게 넘겨줬다.
무선사업부장직은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개발실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맡게 됐다. 윤부근 사장을 대신할 생활가전사업부장은 이날 사장단 인사에 포함되지 않은 만큼 부사장급이 맡을 것으로 보인다. 권오현 부회장이 겸직했던 삼성전자 종합기술원장직은 정칠희 삼성전자 종합기술원 부원장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맡는다.
삼성 관계자는 “겸직하고 있던 사업부장 자리를 후배 경영진에게 물려주고 그간의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중장기 사업전략 구상과 신규 먹거리 발굴 등 보다 중요한 일에 전념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 윤용암 삼성증권 사장 등 금융계열사 CEO들은 대부분 자리를 지키게 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출범한 삼성물산의 경우 중복 사업 정리와 본격적인 시너지 창출을 위해 양대 부문 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윤주화 대표가 삼성사회공헌위원회로 옮기는 것을 제외하고는 기존 최치훈(건설), 김신(상사), 김봉영(건설·리조트) 체제를 유지하면서 이서현 사장이 패션부문을 총괄하게 됐다.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미래전략실 역시 현 체제 그대로 유지된다. 오히려 부사장 두 명이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실질적으로 조직이 격상됐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 부회장과 장충기 미래전략실차장 사장의 투톱 체제도 그대로 유지되는 가운데 대부분의 팀장급들이 자리를 지키게 된다. 그룹 전반에 걸쳐 사업구조 재편과 경영 승계 작업이 아직 진행 중인 만큼 작업이 마무리 될 때까지는 현 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제2의 반도체 신화’로 비견되며 신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바이오 사업에는 힘을 실어줬다. 그동안 부사장급으로 대표이사를 맡아온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는 초창기부터 바이오 사업 전반을 기획하고 바이오시밀러 사업 진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시절부터 ‘해결사’로 통하는 전동수 삼성SDS 대표는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장에 새로 선임해 의료기기 사업 확대 특명을 맡았다.
전동수 사장이 빠진 삼성SDS의 경우 삼성미래전략실 인사지원팀장과 삼성종합화학 대표이사 등을 지낸 정유성 삼성경제연구소 상담역을 대표이사에, 홍원표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장을 솔루션사업부문 사장에 각각 앉혀 창사 이래 처음으로 사장급 인사 2명을 동시에 내정하면서 힘을 실었다.
올해 인사를 앞두고 당초 업계에서는 잇따른 비주력 계열사 매각과 실용을 중시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스타일을 감안해 미래전략실 기능 조정 가능성이 대두돼왔다. 또 통합 삼성물산 출범과 방산·화학계열사 매각, 건설과 중공업 실적 악화 등 인사폭이 커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놨었다.
그동안 삼성은 두 차례 빅딜을 통해 삼성종합화학, 삼성테크윈, 삼성토탈, 삼성탈레스를 한화로 넘기고,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을 롯데그룹에 매각키로 했다. 또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작업을 완성시켰다. 이와 함께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계열사 추가 재편 가능성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인사가 예상보다 소폭으로 이뤄지면서 위기 돌파와 조직 다잡기를 위해서는 파격적인 변화 보다 안정에 보다 방점이 찍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이재용 부회장이 완전히 경영권을 장악하기까지도 아직 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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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관계자는 "이미 비핵심사업 매각으로 사업구조 재편을 충분히 진행한 만큼 대규모 인사로 조직을 크게 흔들 필요는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올해 사장단 인사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는데 방점이 찍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장단 인사를 마친 삼성은 이번주 내로 부사장 이하 2016년 정기 임원인사도 각 회사별로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올해 임원 인사에서는 승진 폭이 최소화되고 퇴임 임원은 늘면서 전체적인 임원 규모가 예년 대비 20% 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후속 조직 개편은 다음주 중으로 확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