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나는 프로그래머다' 공개방송 일정을 마치고 미국에 돌아왔다. 리그 오브 레전드 등 e-스포츠를 생중계하는 장소인 넥슨 아레나에서 진행된 행사의 열기가 뜨거웠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온기가 느껴질 정도다. 5시간 동안 한 개의 트랙으로 진행된 행사였는데 중간에 휴식시간이 없었다. 그런데도 500여 명의 참여자는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끝까지 집중했다.
AWS 에반젤리스트인 윤석찬, 마이크로소프트의 김명신, 구글 개발자인 염재현, 안드로이드 개발자 김용욱 등, 한 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스타개발자들이 진행한 강연은 한시도 눈을 떼기 어려운 알찬 내용이었고, 무대를 꽉 채운 초대형 화면을 통해서 진행된 라이브코딩은 행사의 절정을 이루었다. 이날 있었던 강연의 내용은 유튜브 한빛미디어 채널을 통해서 공개될 예정이다.
라이브로 하스켈(Haskell) 코딩을 선보인 최철웅, 리액트(React) 코딩을 진행한 박중운, 엘릭서(Elixir) 코딩을 보여준 박창욱 세 사람의 세션은 행사에 참석한 개발자들에게 깊은 영감을 불어넣어주었다. 하스켈 코딩을 수행한 최철웅은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미래에 대한 많은 기대를 품게 해준다. 최근 프런트앤드 개발자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리액트 코딩도 많은 관심을 받았고, 아마도 국내에서는 최초였을 엘릭서 코딩은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유명한 <바로풀기>의 김영재 CTO와 함께 진행한 공개방송도 재밌었다. 최근 회사의 미녀 CEO와 결혼을 한 그의 드라마 같은 성공담(?)도 이야기하고 개발자들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여자 개발자 모임>의 운영자 전수현 개발자가 방송 도중에 무대에 올라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나와 함께 방송을 진행하는 MC인 정도현(정개발)은 유명한 만화 슬램덩크를 참조하여 개발팀 관리기법을 설명했고, 김호광(데니스)은 스타트업 회사들이 경험하는 해킹의 실상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설명하여 열기를 더했다. 오프닝 멘트와 진행을 맡은 “롤의 여신” 조은나래가 무대에 올라왔을 때는 남성 위주의 후줄근한 분위기에 익숙한 개발자 청중들 사이에서 작은 술렁임이 일어나기도 했다.
행사가 끝나고 저녁시간이 되자 넥슨 아레나는 개발자가 사랑하는 음식인 피자와 콜라와 맥주로 뒤덮였다. 어렵게 반차를 내고 참석한 사람, 지방에서 기차를 타고 올라온 사람,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 유학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참석한 사람, 연인끼리 데이트 삼아서 온 사람,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찾아온 사람 등이 어울려서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었다. 티셔츠와 스티커를 챙기고, 사진을 찍고, 웃고, 포옹을 했다.
한빛미디어에서 5년째 진행 중인 RT:FM이라는 개발자 행사와 나프다의 공개녹음이 결합된 이 행사의 목적은 특정 플랫폼, 회사, 언어, 기술을 광고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 문화 일반을 고양시키는데 있었다. 개발자 문화는 배움(Learn), 즐김(Enjoy), 해결(Solve), 공유(Share)라는 네 개의 속성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영어의 앞 글자를 따면 LESS다. 나는 LESS를 주제로 키노트 강연을 했다.
개발자는 끊임없이 배운다. 공부에 끝이 없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주변 동료로부터 배우고,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배우고, 책을 읽으면서 배우고, 무크(MOOC)를 통해서 배우고, 팟캐스트를 통해서 배우고, 실수와 버그를 통해서 배운다. 그래서 개발자 문화를 정의하는 속성 중에서 으뜸은 배움이다. 배움이 없이는 개발자 문화를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는 배움은 취업이나 시험 같은 구체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배움은 즐겁고 재미있는 놀이다. 그 자체가 목적이다. 다른 목적을 위한 배움은 즐거움이 결여된 노동이다. 하지만 개발자 문화에서 이야기하는 배움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자발적 행위다. 그래서 개발자 문화를 구성하는 속성의 두 번째는 즐거움(joy)을 있게 만드는 인조이(enjoy)다.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배우고 즐기는데서 그치면 자기만족 이상의 의미가 없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문제의 해결이란 회사의 비즈니스 팀에서 요구하는 기능을 구현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오픈소스 프로젝트의 버그를 수정하는 것일 수도 있고,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재능을 기부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개발자의 본령은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개발자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자 문화의 세 번째는 해결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유다. 개발자 문화를 다른 문화와 구분지어 주는 가장 뚜렷한 특징이 바로 공유다. 진정한 개발자에게 지식과 경험은 경쟁의 수단이 아니라 즐김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나눔이 자연스럽다. 나눌 수밖에 없다. 나눌 때 즐거움이 증폭되기 때문이다. 윤석찬, 김명신, 염재현, 김용욱 같은 사람들이 무대에 오르는 이유는 자기가 다니는 회사를 홍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유의 즐거움을 알기 때문이다. 공유할 때 자기가 느끼는 기쁨이 몇 배로 커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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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눌 줄 모르는 개발자는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이다. 즐길 줄 모르기에 배움이 빈약하다. 그런 사람은 배움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부족하다. 악순환의 덫이다. 공유를 하면 즐거움의 참맛을 알게 되고, 배움에 살이 붙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배가된다. 선순환이 일어난다. 그래서 개발자 문화의 진정한 핵심은 공유다. 배움과 즐김과 해결의 끝은 공유다.
꿈처럼 달콤했던 시간이 지나갔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다행인 점은 팟캐스트 방송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분들의 응원과 지원 덕분에 개발자 문화의 부흥을 지향하는 방송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 내년 가을에 다시 행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개발자와 청취자, 독자 여러분 모두 온힘을 다해서 배우고, 즐기고, 해결하고, 공유하기를 희망한다. LESS is more.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