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모바일 칩 제작이 쉽지 않은 이유

"생태계 이해관계 뒤흔들 반도체 협력사 찾기 어려울 것"

반도체ㆍ디스플레이입력 :2015/11/06 16:20    수정: 2015/11/06 17:25

송주영 기자

“사실이냐?”

5일(현지시간) 더 버지 등 외신들이 보도한, 구글이 반도체 설계를 검토한다는 소식에 대해 반도체 전문가들의 첫 번째 반응이다.

이후 두 번째로 나온 반응은 “어려울 것”이라는 답변이다.

반도체 업계, 학계, 연구원까지 반응이 한결같다.

모바일 시장에서 구글이 반도체 업계와 손을 잡을 여지가 적다는 의미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구글이 내민 손을 덥석 잡을 수 있는 반도체 업체는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외신은 구글이 반도체 업체들과 자체 설계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해 논의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구글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분석도 나왔다.

애플이 폐쇄형 전략으로 운영체제(OS), 스마트폰, 반도체 설계 등을 직접하는 것과 달리 개방형인 안드로이드는 그 수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수 많은 업체들이 참여한 생태계를 통해 움직인다. 이는 이해관계가 그만큼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의미다.

구글이 플랫폼 전략을 반도체 설계 분야로 확장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사진은 구글이 개발한 하드웨어 넥서스6p(사진=지디넷코리아)

만약 구글이 반도체 자체설계를 하게 되면 반도체 업계 삼성전자, 퀄컴, 미디어텍, 스프레드트럼 등이 직접 영향권에 놓이게 된다. 이후로는 삼성전자, LG전자, 화웨이, 샤오미 등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영향을 받는다.

반도체 설계 업체는 구글의 간섭을 받아야 하고 이는 제조사들도 마찬가지다. 운영체제부터 반도체까지 구글이 모두 공급하게 되면 하드웨어 업체들의 전략은 제한된다. 하드웨어 차별성도 희석된다.

■구글은 왜 반도체를 설계하고 싶어하나

애플은 아이폰에 들어가는 A시리즈 칩을 직접 디자인한다. 운영체제부터 칩 디자인까지 애플 내부에서 해결하고 있다. 생산을 대행하는 파운드리만 외부 업체에 맡긴다. 한 목소리로 전략을 실행하기 쉬운 구조다.

그러나 구글은 다르다. 구글은 하드웨어가 아닌 서비스를 파는 회사다. 넥서스폰 등 일부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있고 여기에 들어가는 부품을 직접 선택하기는 하지만 일부 제품에 한정된 것이다. 모토로라를 인수해 직접 하드웨어를 공급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구글의 중심축은 안드로이드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검색 등 서비스다. 플랫폼을 기반으로 안드로이드페이 등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구글 서비스 확장을 위해서는 생태계 내에 있는 제조사들이 스마트폰을 잘 팔아야 한다. 구글 서비스를 많이 넣어주면 좋다. 반면 제조사들은 자사 스마트폰을 많이 팔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비스도 차별화를 시도해야 한다. 구글과는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안드로이드 핵심 기능을 제외하고는 전략에 따라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따로 구현한다. 안드로이드가 파편화됐다는 의미다.

구글이 안드로이드페이를 공개했지만 기존 페이팔이나 애플페이, 같은 안드로이드 플랫폼 내에서 서비스될 예정인 삼성페이 등과 경쟁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구글 서비스 확대 전략도 한계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현재 스마트폰은 같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라도 호환성이 크지 않다. 구글 서비스 영향력에도 제약이 생긴 셈이다.

구글은 다시 한번 안드로이드 통합 플랫폼 전략에 박차를 가해야 필요성을 고민했을 수 있다. 플랫폼의 기본은 운영체제다. 다음은 운영체제를 구동하는 프로세서다.

구글이 운영체제와 프로세서를 주도하게 되면 하드웨어 제조사들은 구글 플랫폼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IoT 시대가 되면 플랫폼은 더욱 중요해진다.

기기간 연결이 중요한 IoT 시대에 플랫폼 선점은 핵심이다. 따라서 구글이 반도체 설계에 나설 수 있는 이유가 IoT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현준 LIG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구글이 이 시점에서 프로세서 디자인을 자체적으로 설계하겠다는 것은 스마트폰 운영체제 때문이 아니라 IoT에서 범용 플랫폼이 필요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며 “범용 플랫폼 운영체제를 위해 제조사들을 모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업계, 왜 구글이 협력사 찾기 어렵다고 하나

그럼에도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구글이 설계한 반도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안드로이드는 애플 독자로 움직이는 iOS와는 달리 구도가 복잡하다.

스마트폰 제조는 삼성전자, LG전자, 화웨이, 샤오미, ZTE, 레노버 등이 담당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프로세서는 삼성전자, 퀄컴, 미디어텍, 스프레드트럼 등이 공급한다.

안드로이드라는 거대한 생태계 속 업체 수를 가늠하기도 어려울 만큼 많은 업체들이 있다. 이해관계도 업체, 주력 사업만큼 다양하다.

반도체 업체가 구글 제안을 받아들이면 자사 반도체 전략을 스스로 결정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생긴다. 퀄컴, 삼성전자 등은 모두 자체 SoC를 개발해 기능을 통합하고 성능을 개선하며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구글과 손을 잡으면 이처럼 자체 전략을 펴기가 어렵다. 여기에 구글과 손을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고객사인 완제품 업체의 심기도 살펴야 한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구글이 협력 초기 단계부터 판로까지 다 만들어주면 모르겠지만 판매처를 직접 찾아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면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완제품 업체들의 선택권이 줄어드는 점도 문제다. 현재 프로세서 시장이 퀄컴 독과점 구도이기는 하지만 점유율은 40% 수준이다. 나머지 60% 스마트폰 시장에서 퀄컴 대안이 활발히 모색되고 있다. 신 위원은 “구글이 공동 설계 능력을 늘리면 제조사들이 공을 내려놔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구글이 채용하고 있는 멀티미디어 반도체 설계 인력도 모바일보다는 서버쪽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시각도 있다.

한태희 성균관대학교 교수는 “페이스북, 아마존도 반도체 설계 인력을 채용한다”며 “인터넷업체는 서버 수요가 많아 모바일보다는 서버 등 중대형 서비스에 자체 개발 CPU를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업체별 이해관계 첨예

구글이 생태계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반도체 분야에서 협력할 업체를 선정한다면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업체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구글이 원하는 기술, 제품을 모두 가진 업체다. 스마트폰 뿐만 아니라 IoT 시대에 떠오르게 될 TV 시장에서 전 세계 1위다. 반도체 분야 프로세서 설계 능력부터 제조 역량까지 갖췄다.

삼성전자도 구글과 손을 잡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있다. 안드로이드 최적화는 물론이고 파운드리 고객사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긴다. 엑시노스 브랜드가 안드로이드 시장에 더 빨리 확산될 수 있는 계기도 마련할 수 있다.

한 교수는 “구글이 삼성전자와 협력한다면 긍정, 부정 요소가 모두 존재하지만 결과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무선사업부는 부정적인 요소가 더 많다고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가 구글과 설계분야에서 협력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다음으로는 퀄컴, 미디어텍 등을 고려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업체도 구글과 협력하기 쉽지 않다.

퀄컴은 모바일 매출 비중이 높은 회사다. 핵심 사업 전략을 구글 손에 맡길 이유가 없다. 구글이 아예 퀄컴 모바일 사업을 인수하면 몰라도 협력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업체가 대만 미디어텍이다. 미디어텍은 이미 구글과 저가형 스마트폰 플랫폼 전략인 안드로이드원에서 협력한 전력도 있다. 구글 저가 플랫폼 통합 전략인 안드로이드원 프로세서 공급업체로 선택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구글이 특정 시장, 특정 업체가 아닌, 자체 설계를 통해 플랫폼을 확산하는 것은 안드로이드원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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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텍이 중국 시장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구글과 협력하기 어려운 요소로 꼽힌다. 구글 플랫폼 확산을 가장 경계하고 있는 국가로 중국이 꼽힌다.

미디어텍도 고객사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선뜻 응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중국업체인 스프레드트럼이나 하이실리코 등은 미디어텍보다 중국 정부의 눈치를 더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