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웹서비스의 사용성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은 간단하다. 공공기관 웹사이트를 웹표준 기술로 구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웹표준 기반 공공 웹서비스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다. 여러 문제가 동시에 해결되어야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한 상황이다. 관련 분야 종사자들을 취재한 결과 공공 웹사이트를 편리하게 바꾸려면 3가지 키워드를 만족시켜야 한다. 예산확충과 사업 연속성 확보, 민원서비스와 기술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그것이다.
■예산을 늘려라
관련 종사자의 공통된 의견은 예산 확충이다. 단순히 때 되면 하는 유지보수가 아니라, 사용자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대대적 개편을 염두에 둘 경우 현재 각 공공기관에서 집행 가능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국가 예산 편성 과정에서 공공정보화 사업이 과소평가되고,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정부의 공공정보화 사업 예산은 늘긴 커녕 갈수록 줄어드는 실정이다. 전자정부를 만들기 시작한 2000년 초반과 비슷하다. 현상 유지도 어렵다는 하소연마저 나온다.
국민의 정부 당시 전자정부 구축사업은 10대 국가 과제 중 하나였다. 참여 정부 때는 31대 과제로 진행됐다. 그러나 지난 이명박 정부 들어 과제 자체를 없애버렸다. 박근혜 정부는 전자정부 사업 권한을 행자부와 미래부로 분산시켰다. 권한 분산은 전자정부 사업을 이끄는 힘마저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공웹서비스의 완성도나 편의성을 고민할 여유는 없어 보인다. 올해 민원24 유지보수 사업의 예산 규모는 29억원 수준이었다. 웹사이트 개편을 통한 호환성 확보는 사업 요구사항 16가지 중 하나였다. 웹사이트 개편에 쓰일 예산이 훨씬 미미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달청 나라장터에 공고된 공공웹사이트 관련 사업 예산은 하나같이 1억원 미만이다. 인색한 성향은 중앙정부부처든 지방자치단체든 마찬가지란 얘기다.
지난 2009년 장애인차별금지법 발효로 공공웹사이트의 사용 편의성에 관한 논의가 달아올랐다. 당시 정부는 국가정보화 추경예산으로 1천200억원을 신청했지만 555억원만 확보하는 데 그쳤다. 웹접근성 확보 과제에는 고작 120억원을 배정했다.
빠듯한 예산은 정보화사업 담당 공무원의 신규 사업 추진 의지를 떨어뜨린다. 만들어놓은 시스템을 소폭 개선하는데 그치게 한다.
적은 예산 때문에 웹사이트 품질도 저하된다. 담당 공무원이 대민업무용 웹사이트 사용성과 편의성을 치밀하게 기획하는 건 어렵다. 전문성의 한계 탓에 구축업체에 기대야 한다. 빠듯한 예산은 사업 참여 업체의 역량 발휘를 제약한다.
웹퍼블리싱업체 관계자는 “현재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업체 가운데 선수들은 없다”며 “공공 사업을 수주해도 남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기술 경쟁력 없는 업체가 낮은 입찰가로 사업을 수주하고 저품질의 성과를 만들어낸다”고 덧붙였다.
■지속가능한 제도적 장치 갖춰라
공공웹사이트를웹표준 기술로 바꾸려는 부분적인 노력은 간헐적으로 진행돼왔다. 그럼에도 웹 호환성은 계속 도마위에 오른다. 새 OS가 나오거나, 웹브라우저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한바탕 난리를 치른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해결 움직임이 단발성 행정에 그칠 뿐 지속적, 장기적 동력이 받쳐주지 않는 게 근본 이유다.
공무원의 부패방지를 위한 순환보직제도는 정보화 담당관의 전문역량 축적을 막고 있다. 이 문제는공공IT사업 수발주문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지속적으로 지적돼 왔다.
지난 10월 22일 열린 'SW분할발주 추진 현황과 방안’ 세미나 패널토론에서 김찬회 산림청 정보화담당 과장은 "요구사항을 명확히 하고, 대가를 제대로 산정하고, 산출물을 검토하려면 발주 담당자들에게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데 현재 순환보직 체계에선 담당자가 자꾸 교체되기 때문에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다”는 고충을 토로했다.
정보통신부 때처럼 공공과 민간의 IT를 통틀어 책임지는 부처가 없다는 점에 대한 아쉬움도 제기된다. 행자부, 미래부, 정보화진흥원, 인터넷진흥원 등 책임기관이 산발적이다. 행자부가 공공정보화 사업과 전자정부 사업 주무 부처지만, 웹 표준 확산 정책 추진 주체는 미래부다. 미래부는 보안 기술에도 관여하면서 정보화담당자에게 혼란을 준다.
한 지자체 정보화 담당자는 “순환보직 제도로 인한 전문성 부재를 메우려면 관련 문서만이라도 어느 한곳에 잘 모이고 정리돼야 한다”며 “정보통신부 이후 전산업무를 총괄하는 조직이 없어, 업무를 할 때 뭐라도 미래부와행자부에 문의하려 하면 서로 여기저기 물어보라고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웹퍼블리싱 업체 대표는 “오죽하면 IT쪽은 요즘 국회에서도 친한 사람이 없어서 이런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며 “이걸 해결하려면 이 문제에 관심있을 법한 국회의원을 확보해 이슈화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보안 강박증 버려라
전문가들은 대체 불가능한 기술 사용을 최소화하고 필요 여부를 엄밀히 검토해 과감히 빼라고 조언한다.
KB국민은행은 최근 인터넷뱅킹 서비스 개편을 통해 웹표준 기반의 가상키패드와 공인인증 솔루션을 도입한 민간 사례다. 개인방화벽, 키보드보안 백신 등 웹표준으로 만들 수 없는 보안프로그램 3종세트를 버리고 공인인증서의 전자서명을 브라우저의 자체 기능만으로 처리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정부 담당자, 보안솔루션 업체, 웹사이트 구축업체가 사용자 입장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절충안을 찾아야 한다. 공공 웹사이트에 필요한 보안솔루션 중 웹표준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과 불가능한 것을 구분하고, 웹표준으로 구현하기 힘든 기능은 기술 외적 수단으로 보완하는 접근법을 취할 수 있다.
공지사항 게시판에서 공인인증서나 회원가입, 방화벽 설치를 요구하는 게 타당한 지부터 반성하란 얘기다. 공지글 확인에 신원확인하는 것부터 잘못된 생각이다. 단순 본인확인에 공인인증서를 쓰는 건 과잉 행정이다.
공공 웹사이트 제공서비스 중 절차상 특정 기술을 필요로 하는 민원을 명확히 가리는 게 필요하다. 업무진행 과정에만 관련 프로그램을 설치하도록 웹사이트 구성만 바꿔도 사용자 불편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보안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문서출력용 보안프로그램은 브라우저 플러그인 방식에서 실행파일(EXE 등)을 통한 프로그램 설치 형태로 바뀔 전망이다. 지금처럼 윈도, 맥, 리눅스와 각 브라우저 환경을 일일이 지원하기 어려운 문제가 지속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다만 내년 초 웹표준 전환지원사업 발주 시점에 맞춰 사용자 플랫폼에 관계 없이 쓸 수 있는 방식을 준비한 회사도 있다.
결국 열쇠는 전자정부 주무부처인 행자부에 있다. 행자부는 내년을 기점으로 전자정부 사업 예산을 점차 늘려 간다는 방침이다. 전자정부 예산이 지난해엔 839억원, 올해는 1천215억원이었다. 추세대로라면 내년에도 대폭 증액이 기대된다.
행자부는 지난 6월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자정부 민관협력 포럼 운영위원회를 열고 하반기 이후 진행될 전자정부 사업 추진 방향을 논의했다. 그중비표준 기술 사용으로 야기된 공공웹사이트 문제는 ‘사용자중심(UI/UX)서비스’ 분과에서 논의될 여지가 있다.
행자부는 같은 달 현행 감리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연구용역도 발주했다. 획일적인 SW개발 중심 점검 기준 대신 SW분할발주와 IoT, 클라우드, 빅데이터, 모바일 등 신기술 사업을 점검할 기준과 법제를 정비한다는 취지다. 점검 가이드를 사업 유형별로 분류해 관리방식을 개선하고 품질 향상 효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 중이다.
그러나 당장 공공웹사이트 자체의 문제에 해결 가능성을 확 키워준 건 아니다. 앞서 살펴봤듯 전자정부 예산에서 공공웹사이트 구축에 배정되는 비중은 극히 적다. 소규모 공공웹사이트 구축이나 개편 사업은 감리 대상에서도 빠진다. 감리를 받아도 엉터리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사용자 관점에서의 고민을 통해 기술적인 고려 사항과 개선 방향을 잡고 상응하는 예산과 지속성을 갖춘 사업이 수행돼야 한다.
[연재 순서]
③공공 웹서비스 혁신의 3가지 키워드
[작성=특별취재팀]
임민철(imc@zdnet.co.kr)
김우용(yong2@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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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호(sontech@zdnet.co.kr)
임유경(lyk@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