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나타·K5 부진...동반출격 승부수 '毒' 됐나

잇단 출시 강행...차별성 부각 실패로 판매량 추락

카테크입력 :2015/10/07 16:06    수정: 2015/10/08 09:14

정기수 기자

현대·기아자동차가 간판 중형세단 '쏘나타'와 'K5'의 동반 부진에 고심하고 있다.

내수시장에서 거세진 수입차 공세와 레저용차량(RV) 열풍을 막기에는 힘에 부친 까닭이다. 특히 안방 부진 타개를 위해 비슷한 성능의 신차를 연이어 선보인 조급함이 '독(毒)'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7월 보름여 간격을 두고 나란히 2016년형 LF쏘나타와 신형 K5를 국내 시장에 선보였다. 출시 당시 업계에서는 쏘나타와 K5의 제살 깎기 식 '판매간섭(cannibalization)' 현상을 우려했으나, 현대·기아차는 오히려 두 차종의 상호 경쟁을 통해 중형차 수요 전체를 견인하는 시너지 효과에 자신감을 보였다.

출시에 앞서 내부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조율을 거쳐 강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결과만 놓고 보면 우려했던 두 차종간 간섭 효과보다 더 안 좋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대표 모델간의 무한 경쟁을 통해 '현상 유지'가 아닌 '판매 확대'를 노린 배수의 진이 결국 두 차종의 동반 부진을 부채질한 셈이 됐다.

터보, 디젤,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등이 추가돼 7가지 파워트레인 라인업을 갖춘 '2016 쏘나타'(사진=지디넷코리아)

■"전사적 판매 확대"...'악수(惡手)'가 된 MK '묘수(妙手)'

정몽구 회장은 지난 7월 상반기 해외법인장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실적 부진을 딛고 판매량 증대를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주문했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시장이 어려울수록 판매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며 "판매 일선에서 최대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전사적인 판매지원체제를 강화하라"고 당부했다.

이같은 정 회장의 주문에 현대·기아차는 매달 신차를 한 대씩 선보이는 공격적인 전략을 세웠다. 정 회장이 올해 판매 목표로 공언한 글로벌 820만대 판매 달성을 위해 내수시장의 신차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현대차는 7월 초 LF쏘나타를 7개 트림으로 선보였고 이어 기아차도 같은 달 중순께 신형 K5를 잇따라 출시했다. 하지만 신차 효과가 극대화 되는 시점인 3개월 여가 지난 현재 두 차종의 판매 실적은 기대 이하다.

결과만을 놓고 보면 판매 극대화를 위해 꺼내든 정 회장의 묘수(妙手)가 아직까지는 악수(惡手)에 가깝다. 당초 기대했던 신차 효과는 커녕, 일각에서 우려했던 간섭 효과가 무색할 지경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사진=현대차)

물론 쏘나타와 K5의 동반 부진이 전적으로 두 차종의 잇단 출시에 따른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내수시장에서 경쟁 수입세단의 인기와 RV 차종의 가파른 상승세에 기인한 탓도 있다.

다만 상품성에서는 두 차종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는 만큼,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형제 계열사의 동급 차종을 연이어 출시한 전략이 소비자들에게 차별성을 각인시키는 데 실패하는 '무리수'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파워트레인을 공유하는 두 차종을 나란히 선보였을 때는 철저한 사전 조사를 거쳤을 것"이라면서도 "현재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소비자 니즈(needs) 등 시장 반응에 대해 잘못된 판단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통상 출시 후 3개월여 정도를 신차 효과 기간으로 보면 향후 쏘나타와 K5의 판매량이 상승 반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내다봤다.

■쏘나타 트림 확대, K5 신차효과 잠식

현대차 쏘나타는 지난 9월 하이브리드 모델(577대)을 포함해 총 8천33대를 판매, 전년동월 대비 3.1% 감소했다.

더 큰 고민은 트림 확대로 기대했던 판매 증대 효과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사상 최초로 도입한 36개월 무이자 할부 등 판촉 강화에 힘입어 5~6월 9천대 중반 수준까지 반등했던 판매량은 석 달 연속 뒷걸음질 치고 있다.

문제는 하락세가 시작된 시점이 '7개의 심장'으로 트림을 늘린 새로운 쏘나타들이 등장한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지난 7월 2일 볼륨 모델 '쏘나타'에 엔진 다운사이징과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DCT)를 장착한 1.7 디젤 모델과 1.6 터보,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등을 추가했다. 기존 2.0 CVVL, 2.0 터보, 하이브리드(HEV), LPi 모델과 함께 7가지 파워트레인 라인업을 선보이면서 내심 판매 확대를 기대했다.

하지만 쏘나타의 7월 판매량(8천380대)은 오히려 트림 확대 이전인 전월(9천604대) 대비 12.7% 크게 감소했다. 8월에도 8천218대 판매에 그쳐 전달보다 1.9% 줄었다. 지난달 판매량 역시 전월 대비 2.3% 감소해 3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주춤했던 감소 폭도 다시 커지며 올 3월 이후 지켜왔던 월 8천대 판매량 사수에도 비상등이 들어왔다.

쏘나타의 올 1~9월 판매량은 7만4천94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8만414대)보다 6.8% 줄었다.

'2016 쏘나타'의 7가지 엔진 라인업(사진=지디넷코리아)

쏘나타의 시장을 잠식할 것으로 우려했던 신형 K5의 판매량도 감소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15일 국내 최초 두 가지 전면 디자인과 쏘나타보다 2개 적은 '5개의 심장'으로 돌아온 K5는 첫 달 짧은 판매 기간에도 4천185대를 팔아치우며 신차 효과를 기대케 했다.

하지만 온전한 판매 실적이 집계된 8월에는 4천934대 판매에 그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구형(570대)과 신형을 합친 K5 전체 판매량(5천504대)는 7월보다 오히려 943대 쪼그라들었다. 이전 모델이 출시 초기 두 달 연속 월 판매량 1만대를 돌파하며 쏘나타의 아성을 위협했던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지난달에는 4천773대가 판매돼 전월 대비 3.3%(161대) 감소했다. 오히려 구형 모델이 784대 판매돼 전월 대비 214대 늘었다.

신형 K5의 올해 판매 목표는 4만6천대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남은 3개월 동안 3만2천여대, 즉 월평균 1만대 이상을 팔아치워야 한다.

신형 K5 SX모델(사진=지디넷코리아)

2016 쏘나타는 지난해 출시된 LF쏘나타의 파워트레인을 확대해 고객 선택 폭을 넓힌 연식 변경 모델이다. 사실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모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신형 K5는 5년 만에 나온 풀체인지(완전변경) 모델이다.

LF쏘나타와 신형 K5의 경우 동일한 플랫폼과 파워트레인이 적용된 데다 가격대 역시 별 차이가 없다. 디자인과 편의사양에서만 다소 차이를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출시 초기 비슷한 성능을 발휘하는 두 차종 중 K5의 디자인과 편의사양에 수요가 쏠리며 완전변경 신차 효과를 누렸다"면서도 "시간이 지나며 각 차종이 지닌 장점을 부각시키는 데 실패, 소비자들에게 '껍데기만 다른 차'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가 고객 유입을 기대하며 내놓은 쏘나타의 라인업 확대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얼마 안 되는 쏘나타의 트림 확대 수요가 K5의 신차 효과마저 잠식해 버린 모양새"라고 덧붙였다.

7개의 심장으로 라인업을 늘린 쏘나타는 가솔린 모델의 판매 비중이 전체의 70% 이상에 달한다.

■준중형 '신형 아반떼' 간섭효과도 우려

국내 중형세단 시장에서 쏘나타와 K5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80%에 달한다. 입지가 좁아진 중형차 시장 중흥에는 결국 이 두 차종의 분발이 무엇보다 필요한 셈이다. 결국 국산 중형세단의 핵심 차종인 두 모델이 새 심장 가세에도 수입 세단과 RV 열풍의 거센 파고를 넘지 못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다양한 엔진 라인업으로 중형 세단을 살려보려 했지만 수입 세단과 RV로 빠져나간 수요를 되찾아 오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현대·기아차의 오판에서 비롯된 출시 전략이 쏘나타와 K5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데 실패, 동반 부진을 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출시 일정이 정해진 것으로 안다"며 "쏘나타와 K5의 상품성을 체험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면 차츰 판매 추이가 확대 추세로 돌아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형 아반떼(사진=지디넷코리아)

최근 출시된 준중형 '신형 아반떼'로의 고객 이탈도 우려된다. 쏘나타와 K5가 선보인지 두 달여 만에 현대차는 지난달 초 중형차 수준으로 성능과 편의사양을 높인 '신형 아반떼'를 또 다시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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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중형 아반떼의 상품성을 극대화한 제품 전략이 쏘나타와 K5의 판매량에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실제로 쏘나타와 K5의 판매 부진이 지속된 지난달 아반떼는 신형 모델 5천667대를 포함해 총 8천583대가 팔려나가며 호조를 보였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2~3개월 판매량 추이로 쏘나타와 K5가 부진에 빠졌다고 판단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면서도 "중형세단보다는 프리미엄 대형 세단과 RV를 선호하는 현상에 더해 최근 준중형 신형 아반떼가 출시돼 강력한 신차 효과를 누리는 점도 쏘나타와 신형 K5의 수요를 일정 부분 잠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