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자동차업체의 준대형세단들이 기대와는 달리 실적 반등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각 업체들은 대대적인 프로모션에 나서며 이들 모델의 판촉 강화에 나섰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되돌리는 데는 실패하고 있는 모양새다. 국내 경기침체의 지속과 레저용차량(RV)의 인기에 따라 시장 볼륨이 감소한 영향이 컸다.
하지만 BMW 5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 등 동급 수입차량의 내수 잠식이 심화된 데다, 상위 차급인 대형세단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데 실패해 타깃 고객층의 외면을 받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준대형 세단은 대형 세단과 함께 브랜드 파워와 기술력을 상징하는 완성차업체의 플래그십 모델이 대부분이다. 고가에 형성돼 있는 준대형 세단의 판매 호조는 수익 개선 뿐 아니라 하위차종인 중·저가 볼륨모델의 판매에도 파급 효과가 크다.
국산차업계는 하반기 신차 출시와 판촉 강화로 활로를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현대·기아자동차, 한국GM, 르노삼성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국산 완성차 5개사의 준대형세단 판매량은 총 1만3천433대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동월(1만4천678대) 대비 8.5% 감소한 규모다.
올 1~7월 준대형 세단 누적 판매량은 9만2천882대로 전년동기(9만5천387) 대비 2.6% 줄었다. 지난해 말 출시된 아슬란이 지난해 7월과 1~7월 누계실적에 제외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감소 폭은 더 크다.
■'백약이 무효' 아슬란, '시장 퇴출' 알페온
특히 현대차가 수입차 대항마로 내세운 준대형 전륜구동 플래그십 세단 '아슬란'은 부진 탈출이 요원하다. 당초 현대차는 아슬란이 제네시스와 그랜저의 간극을 메우고 비슷한 차급의 수입차 고객을 유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과는 정 반대다.
아슬란은 지난달 612대가 팔려 전월 대비 20.6% 감소했다. 판촉 강화에 따른 6월 상승세가 한 달 만에 고꾸라졌다.
앞서 현대차는 판매고가 계속 저조하자 재고 소진에 나서기도 했다. 올 3월에는 재고물량에 대해 800만원대의 할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파격적인 할인 폭으로 하위차급인 그랜저와 가격 역전 현상도 발생했지만 판매 부진은 여전했다.
아슬란은 작년 10월 30일 출시된 이후 지난달 까지 내수시장에서 총 8천393대가 팔렸다. 1천대 이상의 월간 판매량을 기록한 것은 지난해 11월과 올 1·2월 등 세 차례에 불과하다. 이 같은 판매 추세라면 연간 1만대 판매 달성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차가 내세운 올해 아슬란 판매 목표는 2만2천대다.
업계 관계자는 "아슬란 판매고는 애초 우려했던 상하위 모델 간 간섭효과가 민망할 정도"라며 "그랜저나 제네시스에서 이동한 수요가 설혹 있다고 하더라도 큰 의미가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아슬란의 합류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했던 다른 준대형 세단의 성적표도 기대치에 부합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랜저는 지난달 전년동월 대비 21.6% 감소한 7천44대가 팔렸다. 올 들어 지난달까지 누적판매량도 4만8천633대에 그쳐 8.3% 줄었다. 판매 감소세에도 불구하고 그랜저가 차지하는 국산 준대형시장에서의 입지는 확고하다. 실제 올 1~7월 팔려나간 국산 준중형 세단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같은 기간 판매된 국산 준대형차 10대 중 5대 이상은 그랜저라는 의미다.
같은 기간 상위 모델인 제네시스의 판매량은 2만1천63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7% 감소했다. 지난달에는 3천70대를 판매, 0.8% 소폭 상승세를 기록했지만 전월 대비로는 2.8% 빠졌다.
형제 계열사인 기아차의 준대형세단 판매 상황도 시원치 않다. K7은 지난달 1천901대가 팔려 전년동월 대비 소폭 감소했으나 1~7월 누계실적은 1만1천367대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7% 줄었다.
한국GM의 준대형 세단 '알페온'은 결국 단종 수순을 밟는다. 알페온은 올 들어 지난달까지 2천301대가 팔려 전년동기 대비 19.3% 감소했다.
쌍용차 '체어맨'은 존재감마저 희미한 상황이다. 하위 모델인 체어맨H는 판매량 부진으로 지난해 단종됐고 체어맨W가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체어맨W'는 지난달 전년동기 대비 41.0% 감소한 92대가 판매됐다. 1~7월 누적 판매량도 718대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5% 줄었다. 한 달 평균 100여대의 판매고를 올리는 데 그친 셈이다.
그나마 지난해 9월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은 르노삼성의 'SM7'이 국산 준중형 세단 중 유일하게 뚜렷한 신장세를 보였다. SM7은 지난달 367대가 팔려 46.2% 증가했고, 1~7월 누계실적 역시 2천382대로 13.5% 늘었다.
다만 SM7의 판매량 자체가 준대형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해 크게 의미를 두긴 어렵다.
■판촉 강화·신차 출시로 반전 모색
현대차는 아슬란이 판매 부진을 거듭하고 있지만, 출시 이후 고급차 브랜드로의 이미지 제고와 라인업 확대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 지속적인 판매 확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실제 현대차는 아슬란의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TV 광고를 비롯해 판촉 강화 등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달 역시 100만원 현금 할인과 저금리 할부를 지원한다. 오는 14일부터는 12월까지 매월 1회 서울 강남역 인근 강남오토스퀘어에서 '아슬란 뮤직 아틀리에'를 연다.
기아차는 당초 내년 출시 일정을 앞당겨 K7의 풀체인지(완전변경) 모델을 4분기께 내놓고 상승세 반전을 도모할 계획이다. 6년 간 풀체인지가 없었던 모델 노후화를 극복하고 내년 선보일 신형 그랜저와 출시 시기가 겹치는 것을 피하기 위한 복안이다.
신형 K7 라인업에는 2.0 터보엔진과 2.2 디젤 엔진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다. 상세 제원과 가격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기존 모델은 2천960만원부터 가격대가 책정됐다.
한국GM은 단종되는 알페온을 대신해 다음달부터 준대형 플래그십 세단 '임팔라'의 국내 판매를 개시한다. 이미 지난달 말부터 사전계약에 들어갔으며 오는 11일에는 임팔라의 신차 미디어 설명회를 갖는 등 신차 출시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임팔라는 1958년 미국에서 첫 출시된 GM(제너럴모터스)의 준대형 대표 세단으로 누적 판매량이 1천600만대에 달한다. 국내에 선보이게 될 임팔라는 2013년 완전 변경된 10세대 차량이다. 이 모델 역시 지난해 미국에서만 14만280대가 팔린 베스트셀링카다.
임팔라는 2.5리터 4기통 가솔린 엔진과 캐딜락 브랜드의 대형 세단 XTS에 적용된 성능을 입증한 3.6리터 V6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다. 2.5리터 모델은 최고출력 195마력, 최대토크 25.8kg·m를 발휘한다. 3.6리터 V6 모델은 최고출력 309마력, 최대토크 36.5kg·m을 낸다. 판매 가격은 3천409만~4천191만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임팔라, K7 등 국산 완성차업체들의 간판 준대형 차종들이 출격을 예고하고 있다"며 "준대형 시장의 무게중심이 수입차 쪽으로 기울어진 상황인 만큼, 이들 차종의 판매 성패가 하반기 준대형세단 시장 판도를 가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쌍용차의 경우는 2세대 체어맨 출시 이후 7년이 지났지만 당분간 신모델 출시 계획이 없다. 다만 보행자 관련 법규와 시장 상황을 감안해 오는 2018년께 체어맨의 신모델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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