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 투자보다는 적기 투자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중국처럼 가격 경쟁력을 갖고 경쟁을 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의문이다.”(삼성디스플레이 추혜용 전무)
“코스트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부분이 제한됐다. 투자에 좀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LG디스플레이 윤수영 상무)
한국 디스플레이가 한발 앞선 7세대, 8세대 투자로 원가경쟁력을 갖추고 이를 무기로 물량을 뽑아내며 시장을 선도하던 시대는 지났다. 투자를 통해 세계 시장을 선도해 나가기에는 중국의 물량공세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혁신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8일 무주 덕유산리조트에서 열린 ‘제10회 디스플레이분야 국가연구개발사업 총괄워크샵’ 현장에서 삼성디스플레이 및 LG디스플레이 등 업계 전문가들과 학계 종사자들은 시대가 변화한 데 공감하며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과 혁신만이 생존의 길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중국 디스플레이가 따라오기 어려울 만큼 경쟁력에서 격차를 벌리기 위한 방법이 과거의 물량 공세가 아니기 때문에 혁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국, 내년이면 8세대 생산역량 한국 추월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 위기감의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 디스플레이는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과감한 투자로 LCD 분야에서 국내 업체를 턱 밑까지 추격했다.
시장조사업체 IHS는 내년이면 중국 디스플레이가 8세대 생산능력(캐퍼시티)에서 한국 디스플레이를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의 디스플레이 8세대 생산능력이 한국 디스플레이의 패널 생산량의 1.2배 수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올해까지 중국 8세대 생산능력은 우리나라 대비 86% 수준에 머물고 있다.
중국은 앞뒤 가리지 않는 공격적인 투자로 물량을 늘려왔다. 지난 2년 동안 한국이 LCD 투자에 주춤하고 있는 사이 중국에는 연간 수많은 8세대 공장이 지어졌다. 많은 인구, 넓은 시장이 중국 디스플레이의 든든한 배경이 돼줬다.
정윤성 IHS 상무는 “다른 패널업계와 달리 중국은 공급과잉을 신경쓰지 않는다”며 “내부에서 흡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중국 디스플레이는 지난 5년 동안 공격적인 투자 덕에 큰 폭의 성장을 거뒀다. 지난해 중국의 패널 생산량은 지난 2010년 대비 918% 성장했다.
점유율도 늘었다. 지난 1분기 중국업체의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은 출하량 기준 26%다. 삼성, LG디스플레이를 합한 우리나라의 디스플레이 점유율은 35%다. 대만, 일본업체에 가려 경쟁상대로도 보이지 않았던 중국의 점유율이 어느덧 20% 중반까지 올라선 것이다.
중국의 패널 투자는 현재 진행형이다. BOE는 최근 10.5세대 투자도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갖지 못한 3370×2940의 대형 패널을 양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겠다는 것이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계 기술력도 구리배선, 칼라필터 어레이 등 우리나라가 현재 투자하고 있는 수준의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중국은 최근 AMOLED 투자에도 나섰다. AMOLED에서도 물량공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IHS에 따르면 현재 지어지고 있는 중국 내 AMOLED 공장은 20여개다.
AMOLED는 한국의 텃밭이었다. 삼성, LG디스플레이의 AMOLED 점유율은 90%가 넘는다. AMOLED는 우리나라가 강점을 갖고 있는 시장인 동시에 LCD를 넘어선 미래 먹거리이기도 하다. AMOLED도 안전하지 않다는 의미다.
■혁신만이 살길…구부리고 붙이고 혁신해야
정윤성 상무는 “기술의 흐름이 서쪽으로 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며 “이를 늦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중국보다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선두자리를 유지하고 생존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중국 BOE의 대규모 패널 공장인 10.5세대 투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과거와 달라졌다. 과거 물량을 늘리고 경쟁사보다 먼저 대형세대를 투자해 비용 효과를 거두는 전략이 변화해야 할 시점이 왔기 때문이다.
추혜용 삼성디스플레이 전무는 “10.5세대를 곧바로 투자하는 것은 좀 더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며 “적절한 시기에 투자하는 것이 더 맞지 않나 한다”고 설명했다.
윤수영 LG디스플레이 상무도 “10세대 투자는 시장이 바뀌었기 때문에 내부 고민을 많이 해야한다”며 “코스트 혁신을 위해 선행투자를 하는 선순환 고리는 깨졌고 코스트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부분도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답은 스스로 혁신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쳐다보고 따라가야 할 선도업체는 사라졌다. 삼성, LG 등 한국 디스플레이 업체는 맨 앞자리에 서 있다. 양사는 선도업체의 전략이 비용절감보다는 혁신에 맞춰져야 한다는 데도 동감했다.
대안 역시 중국이 아직 따라할 수 없는 선제적인 기술 혁신이 제시됐다. 선도업체의 살 길은 새로운 아이디어, 혁신뿐이라는 것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플렉서블을, LG디스플레이는 OLED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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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 전무는 “커브드, 엣지를 기반으로 한 윰 디스플레이 등으로 기술격차를 넓혀 나가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윤 상무는 “OLED가 차세대 기술이라고 생각한다”며 “가능한 빨리 가격 경쟁력을 갖고 시장을 열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