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산-모직 합병변수 美펀드 시나리오 셋

엘리엇 진의 파악과 주가 흐름에 촉각

홈&모바일입력 :2015/06/04 11:23    수정: 2015/06/04 11:27

정현정 기자

미국계 헤지펀드가 삼성물산 지분 7%를 보유한 사실을 공시하면서 합병가액 산정 등을 문제 삼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공개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나서면서 양사 간 합병에 돌발 변수로 등장했다.

시장에서는 이같은 변수가 양사 합병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하면서도 향후 주가 흐름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그동안 외국계 헤지펀드사들이 경영간섭을 내세워 시세차익을 얻고 떠나면서 주주들이 피해를 입은 전례가 있어 진의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Associates, L.P.)는 주식 장내 매수를 통해 삼성물산 지분 1천112만5천927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4일 공시했다. 전체 의결권 있는 주식수의 7.12%에 해당한다. 주당 취득단가는 6만3천500원으로 보유 목적은 경영 참가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측은 지분 보유 사실 공시와 함께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은 삼성물산의 가치를 과소평가 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아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제일모직 대 삼성물산의 1대 0.35(우선주 동일) 합병비율이 삼성물산 측에 불리하게 산정됐다는 것이 주요 반대 이유다.

엘리엇은 1977년 설립된 자산운영사로 엘리엇어소시에이츠와 엘리엇인터내셔널 두 가지의 펀드를 운영중으로 현재 전체 운용자산은 260억달러(한화 약29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증권가에서도 이 회사의 실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엘리엇이 갑작스럽게 합병에 제동을 건 진의에 대해 파악하면서 주주들에게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로써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3가지 정도다.

우선 삼성물산 지분 7%를 보유하게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다. 양사의 합병 결의안에는 주식매수청구액이 1조5천억 원을 넘어서면 합병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조항이 포함됐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액이 지나치게 커지면 합병 법인의 재무 구조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들과 기존 주주들이 대거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경우 합병 무산의 우려가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계획이 주식매수청구권의 대량 행사 때문에 무산된 전례가 있다. 주주총회 직전 양사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보다 낮게 형성된 게 국민연금을 비롯한 주주들이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데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제시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액은 보통주 기준 5만7천234원으로 현재 삼성물산의 주가가 합병 계획 발표 이후 6만원 이상으로 크게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는 실효성이 없다.

다만 행사 시한이 오는 7월 16일까지로 다소 시일이 남은 만큼 일단 주가 흐름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물산 역시 이같은 점은 감안해 최근 합병 설명회를 통해서 대형 수주 계획과 실적 개선 전망 등을 투자자들에게 밝히면서 주가 관리에 나선 상태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두 번째로 엘리엇이 주주총회에서 합병 반대 의견을 피력할 가능성이다. 삼성물산은 지배주주 지분율이 14% 정도로 낮은 편이다. 반면 외국인 투자자 지분은 전체의 30% 이상으로 높다. 이밖에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식 9.79%를 보유하고 있다. 합병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으로 전체 주식수의 3분의 1 이상, 참석주주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호지분 확보가 관건이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의 경우 지배주주 지분율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찬성이 3분의 1만 넘으면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7%를 보유한 헤지펀드에 비해 삼성물산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면서 "엘리엇이 합병을 반대하기에는 산술적으로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엘리엇이 표면적으로는 합병비율을 문제 삼고 있지만 시세차익을 챙기고 떠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지난 2003년 소버린자산운용이 SK㈜ 지분 14.99%를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른 후 기존 경영진을 압박했다가 1조원의 차익을 얻고는 사라졌다. 영국계 헤르메스 역시 2004년 삼성물산 지분 5%를 매집해 최대주주에 오른 뒤 경영간섭을 목적으로 내세워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 매각 등을 요구하다가 시세차익만 챙기고 떠난 전례가 있다,

이 경우 엘리엇의 명분을 믿고 삼성물산 주식을 비싸게 산 주주들은 이대로 합병이 성사되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1:0.35라는 합병비율이 고정된 상태에서 삼성물산 주식이 제일모직 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오르면 웃돈을 주고 삼성물산 주식을 산 주주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

채상욱 하나대투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표면상으로는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는 이유를 내세우면서 합병 무산이라도 불사할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진의가 무엇일지를 파악하는게 우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만약 삼성물산이 재평가를 받도록 요구하면서 시세를 올려놓고 주총 전에 팔고 나간다면 삼성물산 구주주들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이사회는 지난달 26일 합병을 결의했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0.35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으로 9월1일 합병을 완료하는 계획이다.

삼성물산에서는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주요 주주들을 만나서 합병 시너지를 설명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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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이 이미 지난해 중공업과 엔지니어링 합병 무산을 경험한데다 이번 합병은 지난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는 점에서 주주들을 달랠 준비를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지배주주 지분율이 낮은 상황에서 합병을 준비하면서 이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리는 없는 만큼 외국인 주주들을 1:1로 만나서 설득하는 작업을 시작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현재 내용을 파악하면서 입장을 정리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