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이란 별이 있었다. 이 별에는 대서양이란 거대한 바다를 사이에 두고 두 세력이 각축을 벌이고 있었다. 한 쪽 끝엔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세력이 있었고, 또 한 쪽엔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외계에서 이상하게 생긴 종족들이 날아왔다. 구글, 페이스북이란 독특한 이름을 한 외계 종족들은 조금씩 ‘저널리즘’이란 별의 질서를 흔들어버렸다. 한 때 ‘저널리즘’ 별의 대표 종족이던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조차 이들의 위세 앞에 꼼짝을 하지 못하게 됐다.
외계 종족의 위세에 견디다 못한 저널리즘 별의 ‘독수리 5형제’가 어느날 특공대를 조직했다. 이들은 중생대초까지 존재했다가 사라진 거대 대륙의 이름을 빌어와 외계 종족에 대한 강한 저항 의지를 드러냈다.
'저널리즘' 별의 수호자를 자처한 주인공은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를 비롯해 CNN, 로이터, 이코노미스트 등 5개 언론사. 이들은 18일(현지 시각) ‘판게아연맹(Pangaea Alliance)’을 결성하고 온라인 광고 시장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가디언 등이 연맹 이름으로 택한 판게아는 고생대 말기와 중생대 초기 사이에 존재했던 초대륙이다. 판게아란 이름은 1915년 독일의 알프레트 베게너가 제안했다. 3억 년 전에 판게아 대륙이 만들어지면서 애팔래치아, 우랄산맥 등이 생겨났다고 알려져 있다.
가디언을 비롯한 독수리 5형제들은 '판게아연맹'을 통해 거대한 마케팅 플랫폼으로 거듭나겠다는 야심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들의 야심이 담긴 '판게아 연맹'은 4월 베타 버전을 내놓으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 구독-행동 유형 정보 공유해 최적의 광고 제공
가디언 주도로 결성된 '판게아연맹'은 단순히 광고 영업을 공동으로 하는 차원은 아니다. 각자가 보유한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프로그래머틱 광고 시스템(programmatic advertising system)을 구축해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판게아연맹을 주도한 가디언은 18일(현지 시각) 프로그래머틱 광고 시스템을 통해 (광고주들이) 1억1천100만 명에 이르는 독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로그래머틱 광고란 데이터를 기반으로 광고를 자동 송출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보자. 어떤 광고주가 자신들의 광고 메시지를 ‘자동차에 관심 있는 25-35세 남성 100만 명’에게 표출해 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판게아연맹은 5개 회원사가 보유하고 있는 1억1천만명의 고객DB에서 이 조건에 맞는 사람들을 선별해서 광고를 쏴주게 된다. 이렇게 할 경우 이론적으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광고에 비해 훨씬 높은 반응을 끌어낼 수 있게 된다.
프로그래머틱 광고는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차세대 광고 시장으로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이마케터에 따르면 지난 해 미국 프로그래머틱 디스플레이 광고 시장은 100억 달러 규모로 전체 디지털 광고 시장의 45% 수준으로 추산됐다. 또 프로그래머틱 광고는 오는 2016년에는 200억 달러로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또 다른 시장 조사기관인 마그나 글로벌은 전 세계 프로그래머틱 광고 시장이 오는 2017년까지 320억 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디언 등이 판게아연맹을 결성한 것은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위해 이들은 1차적인 고객 데이터를 서로 공유한 뒤 좀 더 경쟁력있는 수용자군을 만들어낼 계획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이번 모임을 주도한 가디언의 글로벌 매출 담당 이사인 팀 젠트리가 잘 설명했다.
젠트리에 따르면 판게아연맹 참여사들은 기본적인 구독자 데이터를 서로 공유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 수준에서 머무르지 않고 각사에서 갖고 있는 다양한 데이터를 결합하는 쪽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이를테면 A라는 사람에 대한 데이터를 정교화하는 작업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가디언은 A가 신문 구독할 때 확보한 데이터를 갖고 있는 반면 파이낸셜타임스는 A가 자사 사이트에서 활동한 이력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을 수 있다.
이 때 두 데이터를 결합하면 광고주들이 선호하는 타깃 고객으로 격상시킬 수 있다. 세계 유력 5개 매체가 저마다 갖고 있는 각종 데이터를 결합하면 프리미엄 고객 DB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렇게 확보된 타깃 고객군에게 광고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돈을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는 게 판게아연맹의 기본 논리다.
젠트리는 또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가디언의 세계 시장 확장을 위한 다음 행보에 대해 생각하면서 다른 언론사들과 협업해서 풀 수 있는 틈이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을 자신했다.
판게아연맹 소속 5개사의 월간 순방문자 수는 약 1억1천만 명 수준. 페이스북(8억2천300만)에는 크게 못 미치며 트위터(1억7천800만명)에도 뒤지는 수준이다. 하지만 주요 소셜 네트워크 업체들에 비해 타깃화된 고객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게 판게아 측의 주장이다.
판게아연맹의 ‘독수리 5형제’들의 반란은 성공할 수 있을까? 현재로선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역사 속에서 교훈을 찾아볼 수는 있다.
■ 미국선 뉴욕타임스 등이 한 차례 시도했다가 실패
이번 연맹에 몸을 섞지 않은 월스트리트저널은 판게아연맹이 첫 시도는 아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미국에서 이미 오래 전에 비슷한 시도를 했다가 실패했다.
뉴욕타임스, 트리뷴 컴퍼니, 허스트, 가넷 등 미국의 유력 언론사들이 2008년 쿼드런트원(QuadrantONE)이란 광고 네트워크를 결성한 것. 하지만 이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2013년 조인트벤처를 폐쇄했다.
프랑스에서도 2012년부터 라 플라스 미디어가 광고 교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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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젠트리는 “이번 조직의 핵심은 우리 비즈니스 방향에 대해 좀 더 많은 전략적 통제를 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점”이라면서 “가디언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다섯개 업체가 모여 있는 것이 낫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판게아연맹은 개별 참여사들의 비즈니스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추가적인 판매 채널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계인의 침공에 맞선 ’독수리 5형제’의 새로운 전략을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4월 베타 버전을 내놓은 뒤 11월 경 본격 출범할 ‘판게아연맹’이 어떤 성과를 낼 수 있을 지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