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팬택의 미래, 살아야 있다

기자수첩입력 :2015/02/16 16:20    수정: 2015/02/19 23:34

이재운 기자

벤처 1세대로 출발한 팬택의 최종 운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창업주인 박병엽 전 부회장이 현대전자 큐리텔과 SK텔레텍 스카이(SKY)를 인수하며 성장 가도를 달려온 팬택의 앞날이 이제 매각이냐 청산이냐는 선택만 남겨 놓고 있기 때문이다.

팬택의 새 주인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뜻밖에 ‘원-밸류에셋 매니지먼트’이라는 인수 의향자가 깜짝 등장한 것도 선택의 고민을 더 깊게 만들고 있다.

원-밸류에셋 매니지먼트는 국내에서 인지도가 전무한 상황이다. 부동산 사업 위주의 자산운용사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 그들이 운용하고 있다는 IT 펀드에 대한 실체도 명확하지는 않다. 어쩌면 팬택이 원-밸류에셋 IT 펀드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일지도 모른다. 그 만큼 법원과 채권단이 팬택의 매각을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과거 현대전자에 뿌리를 둔 야구단, ‘현대 유니콘스’가 떠오른다. 유니콘스 야구단은 현대전자가 농구단과 함께 운영하던 프로 스포츠 구단이었다. 현대전자는 금융 위기 속에 결국 계열 분리돼 하이닉스가 됐고, 농구단은 현대가의 방계 그룹인 KCC에 인수됐지만 야구단은 그렇지 못했다.

현대 유니콘스는 모기업 하이닉스의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삼성 라이온스를 꺾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등 기염을 토했지만, 결국 2007년 운명이 결정된다. 경영난을 겪고 있던 하이닉스는 당초 매각 예상가였던 1천억원에 훨씬 못 미치는 100억원대 가격에 야구단을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에 매각하기에 이른다.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와 대표이사인 이장석씨에 대한 야구계의 지식은 현저히 낮았다. 애당초 알지도 못했거니와, 자금 조달 능력부터 모든 사항이 미심쩍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던 탓에 야구단 매각은 그렇게 추진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히어로즈’의 신화는 이때부터 시작됐다.

첫 해 사령탑을 교체하고 한 담배 제조사와 구단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맺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네이밍 스폰서 계약도 시즌 중간에 해지됐다. 이듬해 원래 사령탑인 김시진 전 감독을 다시 영입하고 부활을 꿈꿨지만 ‘가을 야구’ 진출은 고사하고 꼴찌 탈출도 힘겨웠다. 그나마 위안은 넥센 타이어라는 네이밍 스폰서와 계약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뿐이었다.

결국 넥센 히어로즈는 2013년 타구단에서 논란의 인물이었던 염경엽 감독을 새로 선임한다. 파격적인 조치에 야구계는 들썩였지만, 염 감독은 첫 해부터 팀을 준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고 지난해에는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이장석 대표는 성과로 모든 것을 말한 셈이다.

이쯤에서 다시 팬택을 돌아보자. 현재 팬택은 지속되는 적자 속에서도 베가팝업노트 신제품 초도 물량 3만대를 출시 당일 완판하는 등 꾸준한 호응을 얻고 있다. 서비스센터도 신규 개설했다. 모기업의 어려움 속에서도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내고 우승까지 차지하던 현대 유니콘스의 투혼을 상기시킨다.

관련기사

원-밸류에셋의 제이 박 총괄이사는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남미 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 통신사업자와 논의가 상당 부분 진행됐다”며 “알리바바의 T몰(TMALL) 등을 통한 중국과 인도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모든 말은 실제 일이 성사되기 전까지는 알 수 없지만, 청산가치가 더 높다는 팬택에 이만큼 적극적인 의사를 보이는 곳은 원-밸류에셋이 유일하다.

아직 인수계약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기술 유출 논란만 일으키고 대량 해고자 사태를 방치한 상하이차와 쌍용자동차간 관계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팬택은 히어로즈가 될 것인가, 쌍용차가 될 것인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팬택의 미래를 긍정으로 바꾸기 위해선 우선 생존해야 한다. 현 시점에서 선택권은 많지 않다. 죽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