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가전업계 라이벌인 삼성과 LG의 자존심 싸움이 끝장전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두 회사는 과거 수차례 기술유출과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왔지만 이번엔 회사 차원의 법정다툼을 넘어 그룹 내 최고경영진까지 연루된 소송에 여론전까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어 향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15일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삼성전자 세탁기 파손 사건에 연루된 조성진 LG전자 홈어플라이언스(HA) 사업본부장 사장을 포함한 LG전자 임원 3명을 재물손괴·명예훼손·업무방해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독일에서 시작돼 5개월 간 지속된 '세탁기 파손' 논란은 결국 법정다툼으로 비화됐다.
사건 발생 초기만해도 경미한 사건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검찰이 LG전자 본사에 대한 전격적인 압수수색과 함께 조 사장에 대한 두 차례 고강도 소환조사를 진행하는 등 강력한 수사 의지를 보이면서 그동안 업계 안팎에서는 조 사장에 대한 기소 가능성을 높게 점쳐왔다.
특히 삼성그룹 내 최고경영진들까지 '자존심' 운운하며 이번 사건에 대한 형사처벌 의지를 다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러한 관측에 더욱 힘이 실렸다. LG 내부적으로도 이에 대한 대응에 골몰하면서 사건은 끝장전 분위기로 치닫게 됐다.
우연찮게도 조 사장 기소가 발표된 같은날 LG디스플레이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자사 OLED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데 대해 무려 A4 5쪽 분량에 달하는 성명 자료를 배포했다.
LG디스플레이는 성명에서 “삼성디스플레이가 OLED 핵심 영업비밀을 조직적이고 부도덕하게 취득한 파렴치한 행태에 분노를 느낀다”면서 “삼성은 글로벌 기업으로서 본연의 사업을 통해 정정당당한 경쟁에 나서달라”고 잔뜩 날을 세웠다.
이 사건은 이미 지난 13일 기소가 결정된 건으로 LG디스플레이는 검찰의 기소 발표 후 이틀이 지난 15일에서야 입장자료를 배포했다. 무엇보다 같은 날 LG전자 조성진 사장의 기소 결정이 보도됐다는 점에서 공교롭다. 이 사건이 발생한 시점은 지난 2010년 5월로 처음 사건을 맡은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2013년 수사에 나서 그 해 11월에 수원지검에 송치됐다. 검찰 송치부터 기소까지 15개월이 걸렸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한 시점도 지난 2012년 4월 삼성디스플레이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LG디스플레이 임직원 11명이 불구속 입건된 것을 계기로 양사의 맞소송전이 진행되고 있던 때다. 양사가 디스플레이 민사소송을 진행하면서 각각 상대 회사 임직원들을 기술유출 혐의로 수사의뢰한 셈이다.
결국 정부가 중재에 나서면서 양측의 민사소송은 취하로 일단락됐지만 기술유출을 둘러싼 형사소송은 그대로 진행돼 왔다. 앞서 수원지검에 기소된 삼성의 OLED 기술을 LG로 빼돌린 전직 삼성디스플레이 연구원과 이를 건네받은 LG디스플레이 임직원 중 4명은 지난 6일 1심 법원에서 벌금형 등을 선고 받았다.
이외에도 삼성과 LG는 그동안 국내 전자업계 각종 타이틀을 놓고 자존심 경쟁을 벌여왔다. 법정 다툼으로 비화된 것도 이번은 처음이 아니다. 사돈 관계로 맺어진 두 회사의 창업주가 서로의 사업영역을 침범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삼성이 지난 1969년 전자사업에 진출하면서 틀어지기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지난 40여년 간 삼성과 LG는 거의 전 사업 분야에서 라이벌 관계로 충돌하면서 앙금이 쌓였다.
특히 간판 사업인 전자 분야에서는 휴대폰, TV, 생활가전, 디스플레이 등 가전제품 전반에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지난 1992년에는 LG전자와 삼성전관(현 삼성SDI)이 브라운관 TV 시장에서 특허권을 둘러쌓고 소송전을 벌였다. 이 사건은 결국 양사가 특허를 공유하기로 합의를 보면서 일단락된 바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시작된 냉장고 용량 경쟁에 더해 2012년 냉장고 용량을 놓고 삼성전자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이 빌미가 돼 양사 간 법정싸움이 촉발되기도 했다. 광고와 동영상, 풍자만화 등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던 싸움은 수백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비화됐지만 결국 법원이 중재해 1년 만에 일단락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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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세탁기 사건 역시 삼성전자가 고소고발로 강하게 대응에 나서면서 크게 커졌다. 검찰 수사는 일단락 됐지만 LG전자는 여전히 수사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법정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양 측의 중재를 시도했지만 합의가 결렬된 바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세탁기 파손 논란을 법률적인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이 정도의 다툼으로 비화될 만큼 사안의 중대성이 큰 것이냐는 의문이 지배적”이라면서 “하지만 역사적으로 양사의 깊은 감정의 골을 놓고 봤을때 회사 최고경영진이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끝장을 보자는 분위기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