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안에 저전력 칩을 탑재한 '마이크로 서버'가 대세로 떠올라 주류 시장에 편입될 것이란 관측이 대두됐지만, 인텔 엔지니어가 이를 반박하는 주장을 펼쳐 주목된다.
인텔은 오히려 서버를 넘어 네트워크 장비와 콜드스토리지 시스템을 위한 프로세서, 클라우드 사업자같은 특수 고객을 위한 맞춤형 프로세서 시장에서 더 큰 기회를 보고 있다.
미국 지디넷은 지난 18일 인텔의 수석 시스템엔지니어 데이브 힐의 발언을 인용하며 오는 2016년쯤 출하되는 서버 10대중 1대는 마이크로서버일 것이라는 업계 예상에 의문을 던졌다.
힐은 3~4년 전에 시스테온칩(SoC) 제품의 아톰 라인을 개발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마이크로서버가 시장 최대 영역을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제) 마이크로서버 디자인이 몇 개 나와 있는데 그건 콜드스토리지나 네트워킹 부문에 비해 훨씬 작은 시장이라고 지적했다.
힐은 마이크로서버 실제 출하량이 가장 낙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그 10분의 1에 불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잘 해봐야 1년에 1~2% 수준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다. 최대 20%는 말도 안 된다는 게 그의 예상이다. 이를 보자면 인텔은 서버용으로 내놓기 시작한 저전력 프로세서 '아톰' 시리즈로 큰 돈을 벌 것이라 기대하진 않는 셈이다.
마이크로서버는 흔히 최대 연산 능력이 제한적이지만 그만큼 소비 전력이 낮게 설계된 멀티코어 칩 여러개를 한 장비에 밀집시킨 시스템을 가리킨다. 저전력 칩 기반 모듈형 서버가 한 장비에 촘촘히 연결되는 클러스터 구조를 바탕으로 수천개 코어를 한꺼번에 사용해, 병렬 처리를 요하는 작업 수행에 유리할 것으로 여겨진다.
소수의 강력한 프로세서를 쓰는 대신 그 일을 다수의 저전력 칩에게 맡김으로써, 똑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데이터센터가 써야 하는 전력과 상면 공간을 줄일 수 있을 때 마이크로서버의 효능이 입증된다. 전기 사용량과 서버 장비가 물리적으로 차지하는 공간은 데이터센터 운영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인텔은 왜 이런 마이크로서버가 업계 일각의 기대만큼 시장의 한 축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는 것일까. 핵심은 앞서 언급된 것처럼 성능상의 한계 때문이다. 정적이거나 제한적으로 동적인 콘텐츠를 제공하는 웹서버 영역이 마이크로서버의 거대 시장일 것 같았지만, 정작 그 성능은 웹서버 운영에 필요한 수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힐은 현재 웹에서 사용되는 소프트웨어(SW) 대부분은 2005~2010년에 만들어졌는데, 그게 개발된 환경이자 실행되는 시스템 환경일 것으로 예상된 건 (인텔 서버 프로세서) '제온(Xeon)'이었다며 낮은 연산 단위를 사용해서 (웹서버를 운영하려고 하면) 잘 돌아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수십억명에 달하는 이용자에 대응하기 위해 많은 웹서버를 가동해야 하는 페이스북 측은 그 프론트엔드 시스템을 구성하기 위해 클럭속도 2.5GHz짜리 (x86) 프로세서와 그걸 탑재한 장비들의 갖은 조합을 제시해 준 성능비교사이트 'SPECint'의 벤치마크 목록에서 그들 입맛에 맞는 사례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신 엔지니어링 그룹 '리나로'는 가장 널리 알려진 오픈소스 웹서버 패키지 'LAMP' 스택과 다른 웹서버 SW의 성능을 ARM기반 SoC 장비에서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여름 리나로는 주요 엔터프라이즈 웹서버 애플리케이션을 ARM 기반 SoC 스택에서 구동할 수 있는 여건이 거의 마무리됐다고 주장했다.
성능과 별개로 마이크로서버 확산의 장애물이라 여겨지는 성질은 그 '비유연성'이다. 최근 HP는 '애플리케이션 정의 서버'라는 개념을 들고 나오면서 마이크로서버 제품을 출시했는데, 각 상용화된 시스템은 기존에 이미 그 요구 특성과 필요 사항이 잘 알려져 있는 업무에 대응하도록 만들어진 모델이었다. 범용성이 떨어진단 얘기다.
힐은 고객들로부터 애플리케이션 변화가 빨라 6개월, 1년 뒤 (시스템 요구 성격, 연산 처리량 등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말을 듣는다며 변덕스러운 작업들은 범용 목적의 CPU로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하드웨어를 묶어놓지 않고 필요할 때 확장할 수 있는 가상머신(VM)에서 돌리는 게 더 알맞다고 주장했다.
인텔 엔지니어의 신중론이 마이크로서버의 미래 시장성까지 원천 부정하는 건 아니다. 아직 시장 상황이 마이크로서버라는 기술을 업계 일각에서 예상하는 것만큼 빠르게 도입해 활용할만큼 성숙되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다. 주류보다는 당분간 비주류에 가까운 신세라는 뜻이다.
앞서 예를 든 서버 제조사 HP의 경우에도 x86 및 ARM 기반 마이크로서버 제품군 '문샷'을 공급 중인데, 회사는 당초 내세웠던 시장 예측을 보수적으로 변경했다.
ARM과 파트너들의 경우 첫 마이크로서버용 SoC로 ARMv8 아키텍처를 내놓고 그 투자수익(ROI)을 비교할 때 인텔 제온E3 프로세서에 상응한다고 주장한다. 어플라이드마이크로와 HP가 의뢰한 연구에 따르면 인텔 제온E3 1200 v3 칩기반 웹서버 랙 3채와, 어플라이드마이크로의 64비트 ARMv8 프로세서 X진(X-Gene) 기반 서버 랙 1채의 사용 효과를 비교시 후자가 3년간 돌리면 14만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결과가 있다.
반면 인텔도 마이크로서버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아보톤' 프로세서가 X진 프로세서보다 더 낮은 전력을 쓰면서 20~30% 나은 성능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며 반론을 편다.
인텔은 당장 주류가 되지 않을 것 같은 마이크로서버를 넘어, 네트워크 장비 영역에서 저전력 칩 시장 수요가 꽃필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저가형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 인텔 차세대 아톰 SoC 제품군 '덴버톤'을 밀어넣으려는 계산이다.
일이 순탄히 풀린다면 제온D와 그 후속 프로세서같은 고성능 칩으로 시스코 카탈리스트6000같은 중급 및 고성능 장비에까지 대응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힐은 인텔이 LSI 악시아(Axxia) 사업부를 인수해 필수 네트워킹 작업으로 불리는 암호화, 복호화, 패킷포워딩 등의 성능을 가속하기 위한 기술을 그 프로세서 전용으로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인텔은 향후 시장 1, 2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시장 영역에 진입하길 원하며 지금은 그런 기대로 저가 네트워크 장비 영역에 침투 중이라는 설명이다.
또 인텔은 자사 프로세서가 상당한 역할을 맡아낼 수 있는 또다른 영역으로 콜드스토리지 장비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콜드스토리지란 한 번 기록된 뒤 그리 자주는 아니고 가끔씩 읽힐 수도 있는 데이터를 보관하는 영역을 뜻한다. 매일 3억5천장의 사진 파일이 저장되고 있는 페이스북의 이미지 저장소가 대표적인 콜드스토리지다.
인텔과 페이스북은 최근 '허니배저(Honey Badger)'라는 이름의 서버 기판을 설계해 내놨다. 콜드스토리지 어플라이언스를 제작하기 위한 용도다. 페이스북은 이걸 사용해 아톰C2000 프로세서 제품군을 기반으로 한 2U 크기 시스템에 180테라바이트 데이터를 저장하는 어플라이언스를 만들어 쓴다. 오픈컴퓨트프로젝트(OCP)의 일환이다.
당연히 인텔은 네트워크와 콜드스토리지 장비 시장에서 ARM과 그 칩 제조 파트너들과의 경쟁에 맞딱뜨릴 전망이다. 앞서 언급한 어플라이드마이크로 뿐아니라 카비움이나 인텔과의 x86 프로세서 시장 경쟁에서 사실상 패배한 AMD가 64비트 ARM기반 아키텍처 SoC를 탑재한 네트워크, 콜드스토리지 장비 영역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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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인텔은 최근 프로세서 라인업을 재정비하면서 표준화된 프로세서 중심 전략이 아닌 고객 맞춤형 전략으로 옮아가고 있다. 인텔이 특정 고객사의 업무에 필요한 추가 로직(연산기능)을 자사 x86 프로세서에 넣은 맞춤형 칩을 생산하는 것이다.
중급 서버용 프로세서 제온E5 v3 프로세서는 35가지 이상의 맞춤형 칩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게 힐의 설명이다. 최근 사례로는 퍼블릭클라우드 업체 아마존웹서비스의 EC2 플랫폼에서 돌아가는 연산최적화 인스턴스 'C4' 유형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세서가 맞춤형으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