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빅데이터 업체의 고군분투 미국 진출기

그루터, 현지 법인 설립하고 글로벌 공략 가속도

일반입력 :2014/10/06 10:59    수정: 2014/10/06 13:54

[샌프란시스코(미국)=김우용 기자]국내 빅데이터 전문업체 그루터는 올해 실리콘밸리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회사 대표를 비롯해 핵심 개발자들이 미국 법인에 머물면서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우는데 한창이다.

최근 실리콘밸리를 찾은 기자는 그루터 멤버들과 하루를 함께 했다. 그루터USA 사무실은 팔로알토 시내 한복판에 있다. 팔란티어, 페이스북, VM웨어 등이 가까운 곳이다. 이 사무실에 권영길 대표, 장정식 수석연구원, 최현식 책임연구원, 한연수 선임연구원 등이 와 있다. 네 사람 모두 미국에 온지 2주 됐고, 연말까지 미국 현지에 머물 계획이라고 한다. 시내 카페에서 권영길 대표와 장정식 연구원을 만나 안부를 나누던 중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지디넷코리아 ‘어드밴스드컴퓨팅컨퍼런스(ACC)’에서 링크드인의 하둡 구축사례를 발표했던 개발자 리처드 박이었다. 그는 지금은 링크드인을 나와 ‘릴레이트IQ’란 빅데이터전문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가 릴레이트IQ에 합류한 후 얼마 안 돼 세일즈포스닷컴이 4억달러 가까이 주고 회사를 인수했다고 한다.

얼마 뒤 최현식 연구원과 한연수 연구원이 합류했다. 기자를 포함한 6명은 저녁을 먹으러 독일 맥주로 유명한 시내 한 식당에 들어갔다.

테이블에 막 앉으려 할 때였다. 한 백인 남성이 그루터 사람들을 알아보고 테이블로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했다. EMC 빅데이터-클라우드 자회사 ‘피보탈’의 엔지니어였다.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서려다 그루터를 보고는 큰 소리를 지르며 인사해 모두가 놀랐다. 그는 조만간 또 보자며 환하게 웃으며 나갔다.

피보탈은 EMC와 VM웨어가 설립한 합작벤처다. EMC 그린플럼과 빅데이터 연구인력, VM웨어 클라우드파운드리 관련 개발인력이 모인 회사다. 피보탈은 작년초 자체 하둡 배포판인 ‘피보탈HD’와 SQL온하둡 기술인 ‘호크(HAWQ)를 출시해 미국 빅데이터 시장에서 단숨에 주목을 끌었다.

피보탈이 제공하는 호크는 그루터 인력이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타조(Tajo)와는 경쟁 관계다. 호크는 상용 솔루션이고, 타조는 아파치소프트웨어재단(ASF) 산하 오픈소스 프로젝트다.

식사를 하면서 리처드 박과 그루터 사람들은 하둡과 타조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나눴다. 리처드 박은 링크드인 재직 중 타조를 회사 데이터인프라의 분석플랫폼에 도입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했다. 그는 현재 일하고 있는 회사에도 타조를 소개해주길 바란다며 미팅을 주선하겠다고 했다. 타조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와 조언도 아까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리처드 박과 헤어진 뒤 숙소로 향했다. 그루터 인력들의 숙소는 캘리포니아주 샌마테오 시내에 있다. 임시로 에어비앤비를 통해 집을 빌렸다. 몇 개월 정도 지낼 수 있는 단기임대주택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실리콘밸리는 엄청난 구인난과 함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SW개발자 및 엔지니어의 연봉이 화제다. 스타트업 창업 열기와 개발자 연봉 상승이 더해지면서 주택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뛰었다고 한다.

숙소에 돌아온 뒤 그루터 사람들은 하나같이 노트북을 열고 업무에 몰입했다. 장정식, 최현식, 한연수 세명은 다음날 있을 모기업과 미팅을 준비하면서 밤늦게까지 개발에 열중했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가장 먼저 잠들고 말았다.

이튿날 그루터 사람들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시로 향했다. 안드로이드OS의 잠금화면 앱을 만드는 회사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다른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한기용씨가 마중을 나왔다. 그는 그루터의 미국진출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고 있다고 한다.

미팅을 마치고 샌마테오 숙소로 돌아왔다. 새너제이에서 미팅이 있을 뻔 했으나 다음주로 미뤄졌다.

최현식, 한연수 두 연구원이 코딩에 열중하고, 권영길 대표와 장정식 연구원이 사업 전략을 논의했다. 두 사람은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수시로 열리는 하둡 및 빅데이터 관련 미트업 참가와 현지 회사와 미팅 계획 등을 논의했다.

그루터는 한국에서 꽤 높은 인지도를 가진 회사다. 세계적인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개발자 다수가 그루터에서 근무하고, 이름을 밝힐 수 없다는 대형 고객도 다수 확보했다. 한국 벤처캐피털(VC) 다수가 그루터에 투자의향을 보냈다. 권영길 대표는 여러 조건과 상황들을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미국 진출은 국내 사업으로 모은 자금으로 단행했다. 정부기관의 지원은 받지 않았다.

세계적으로 통할 빅데이터 핵심 기술력을 가졌다는 자존심과 열정, 조건이 미국 진출의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새벽늦게까지 개발에 열중하고 여러 현지기업의 미팅 요청이 쇄도하지만, 숙소나 사무실 비용은 사라지지 않는 고민이다. 사무실과 숙소를 따로 운영하지 않으면 비자 발급이 거절될 수 있어 둘을 합칠 수도 없다. 높은 물가 탓에 생활비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권영길 대표는 “미국 현지에서 그루터란 회사와 타조를 알리는 게 쉽지 않다”며 “그래도 이곳에선 우리를 환영하고,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며,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계약서를 내밀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매출이 적어 문제다, 회사가 오래돼 문제다, 직원이 나가면 안된다 이런 식의 소리만 들었는데, 여기에 와서 회사 업력이 오래돼 문제없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라며 “성공하기 쉽진 않겠지만, 뭐든 잘하면 잘 될 수 있는 기회가 이곳에 있다”고 덧붙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에서 손을 떼지 않는 그루터 직원들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새벽일찍부터 밤늦도록 개발에 열중했다. 현지인과 영어로 전문적인 의견을 능숙하게 나누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의견을 전하려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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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캘리포니아 가을 하늘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그렇지만 그루터 멤버들은 다음주 숙소를 또 어딘가로 옮겨야 하고, 매일 쓰는 교통비와 체재비용도 고민해야 한다. 이런저런 인맥으로 연결된 든든한 스폰서도 없고, 몇백억원씩 투자를 받아놓고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아직은 맨땅에 헤딩이다. 그루터와 타조를 모르는 많은 개발자와 경영진을 만나 이름을 알리고 매출을 이끌어야 하며, 현지 VC 투자도 유치해야 하는, 고된 장소에 그들은 서 있다. 그래도 진지함과 꿈이 묻어 나온다. 개개인의 표정들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