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와 LG유플러스까지 알뜰폰(MVNO) 사업에 뛰어들었다. SK텔링크를 내세운 SK텔레콤까지 더하면 이동통신망을 알뜰폰 사업자에게 도매 대가를 받고 판매하는 통신3사가 모두 알뜰폰 시장까지 직접 접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부는 이통 자회사의 알뜰폰 시장 진출을 통해 SK텔레콤의 시장 지배력 견제와 기존 알뜰폰 사업자와 경쟁을 통해 가계 통신비 인하 효과를 이끌어낼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실제 KT의 KTIS와 LG유플러스의 미디어로그가 출시한 요금제를 보면 기존 알뜰폰 사업자와 비교해 이점이나 차별점은 없고 오히려 판박이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KT그룹 계열사 KTIS는 3G 요금제 5종과 LTE 요금제 5종을 내놨다. LG유플러스 자회사 미디어로그는 2G 요금제 1종과 LTE 요금제 13종을 출시했다.
■KTIS·미디어로그 요금제 “차별화 없어”
KTIS와 미디어로그는 기존 이통사의 요금제 대비 반값 수준의 요금제를 내놨다고 대대적으로 알렸다. 특히 기존 알뜰폰 사업자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실제 요금제를 들여다보면, 이들이 내세우는 기존 알뜰폰 사업자 대비 경쟁력은 찾아볼 수 없다. LTE 요금제 기준으로 보면 KTIS의 ‘LTE 반값 21’은 CJ헬로비전과 에넥스텔레콤이 내놓기로 한 ‘조건없는 유심 LTE 21’, ‘알뜰홈 LTE 42’와 차이가 하나도 없다. 세 사업자의 요금은 월 2만1천원의 기본료부터 음성통화 200분 및 데이터 1.5GB 무료 제공까지 같다.
동일한 KT망을 이용하는 세 사업자의 요금이 이름만 다를 뿐이다. 지난달 미래창조과학부가 발표한 알뜰폰 활성화 방안 가운데 2014년 도매대가 인하를 통해 기존 알뜰폰 사업자도 선보일 수 있는 요금제 상품을 KT그룹 계열사가 버젓이 내놓고 국민 통신비 인하 정책에 부응했다고 운운한 것이다.LG유플러스의 자회사 미디어로그도 똑같은 상황이다. 미디어로그가 이날 선보인 요금제 가운데 ‘로그 LTE 40’은 월 기본료 4만원에 음성 200분, 무료 메시지 200건, 기본 제공 데이터 1.5GB로 이루어졌다.
똑같이 LG유플러스의 LTE망을 사용하면서 도매 대가를 내고 있는 스페이스네트의 ‘프리텔레콤’ 역시 기존 ‘LTE 40’ 요금제를 통해 똑같은 음성통화, 메시지, 기본 데이터를 제공한다. 음성통화 초당 1.8원, 영상통화 초당 3.0원의 요율마저 같다.
미디어로그의 ‘로그 망내 LTE 32’와 스페이스네트의 기존 상품 ‘LTE 망내 32’도 같은 상황이다.
■이통 자회사, 알뜰폰 요금제 베끼기 수준
미래부는 알뜰폰 활성화 방안 발표 당시 KTIS와 미디어로그의 알뜰폰 시장 진출을 두고 “기존 알뜰폰 사업자들과 경쟁을 통한 가계통신비 인하와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KTIS는 보도자료를 통해 “알뜰폰 시장 진출로 건전한 경쟁을 통한 국민의 통신비 인하라는 정부 정책에 부응한다”며 “KT 고객센터 등 고객 접점 서비스를 제공해온 노하우를 기반으로 알뜰폰 시장의 전체적인 서비스 품질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디어로그 역시 신규 요금제인 ‘로그 LTE 30’을 예로 들면서 “타 주요 알뜰폰 사업자의 동종 요금제에서 제공하는 혜택 대비 월등히 높은 수준”이라며 “이러한 요금제가 바로 미디어로그 알뜰폰이 추구하는 ‘저비용 고가치 LTE 서비스’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의 장밋빛 예상이 들어맞지도 않았고, 통신 계열사의 마케팅 수사도 무색하다. 기존 알뜰폰 사업자들의 상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부의 표현대로 이통 자회사의 알뜰폰 시장 진출은 ‘경쟁력 있는 사업자’의 등장을 불러왔지만, 요금제와 같은 주요 상품을 볼 때 소비자 입장의 경쟁력은 없다.
오히려 이통 자회사의 알뜰폰은 브랜드 인지도를 내세워 기존 알뜰폰 사업자보다 가입자 유치 면에 있어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상품 경쟁력이 아닌 브랜드 인지도를 이용한 것으로 이는 기존 이통사의 시장지배력이 알뜰폰 시장으로 전이되는 셈이다. 정부가 이통 자회사의 알뜰폰 진출의 부작용으로 제기한 문구 그대로다.
■통신사 등에 업은 서비스까지
이통사의 시장 지배력 전이 현상은 KTIS와 미디어로그 요금제 외에 신규 서비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KTIS의 경우 중국, 태국, 베트남 등 10개국에 국내 최저 요금으로 국제전화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KTIS의 M모바일 선불요금제 가입자에 별도 가입 절차 없이 00345 국제전화 서비스를 내세운 것. 기본료 차감도 없고 국제전화카드를 등록할 필요도 없다.이 같은 서비스를 기존 중소 알뜰폰 사업자가 하기 위해서는 해외 통신사와 직접 제휴를 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와 반대로 국제전화 서비스의 국내 최고 경쟁력을 갖춘 KT 계열사는 본사와 손을 잡고 이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미디어로그도 비슷한 행태를 보인다. 이 회사는 연내 중저가 LTE 요금제와 콘텐츠가 결합되는 콘텐츠 요금제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모회사인 LG유플러스가 ‘비디오 LTE’라는 마케팅 용어로 각종 콘텐츠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LTE8 다모아 비디오’, ‘LTE8 비디오팩’ 등의 상품을 내놓은 것을 그대로 따라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기존 알뜰폰 사업자들이 하지 못하는 부분을 모회사인 통신사의 힘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직접 이통 자회사 알뜰폰 시장진출의 부작용으로 꼽은 점이 사업 개시와 동시에 드러난 꼴이다.
■알뜰폰도 이통사 손안에, 정부 추가 대책 나올까
현행 법령에 따라 이동통신사의 자회사나 계열사라고 하더라도 별정통신사업자 등록을 통한 알뜰폰 진출을 정부가 막을 수는 없다. 미래부는 이에 공정경쟁 촉진과 이용자 보호를 위해 일부 등록조건을 부과했다.
등록조건 가운데 시장 점유율 제한이 가장 실효적이지만, 실제 전체 알뜰폰 시장의 50%라는 제한 범위가 높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온다.
알뜰폰 업계 관계자는 “50%는 제한이라는 뜻보다 이 정도까지는 나라가 앞장서서 이통사를 위해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준 것에 더 가깝다”면서 “기존 사업자들이 일군 시장 크기 만큼 통신사들이 가입자 이탈 방어를 위해 숟가락을 얹을 수 있게 하는 제한 점유율”이라고 비판했다.
미래부는 통신 관련법이나 경쟁법에서 시장 지배력 보유 여부 판단 기준을 50%의 시장점유율로 봤다고 설명했지만, 기존 사업자를 위축되게 하는 비율이라는 뜻이다. 30개에 약간 못미치는 기존 알뜰폰 사업자가 3개의 이통사 계열사 또는 자회사의 시장점유율과 같은 수의 가입자를 나눠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이통사 계열사의 가입자 유치 속도를 보면, 전체 알뜰폰 시장에서 이통사가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이미 알뜰폰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SK텔레콤 자회사 SK텔링크는 지난 연말 기준 누적 가입자 37만1천명에서 지난 5월말 기준 54만4천명까지 빠르게 증가했다. 반면 국내 알뜰폰 사업자 가운데 최다 가입자를 가진 CJ헬로비전은 같은 기간 59만9천명에서 71만3천명으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가입자 증가 속도가 기존 1등 사업자보다 약 1.5배 빠르다.
이 같은 증가 속도를 이통3사가 모두 계열사나 자회사를 내세워 알뜰폰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게 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최양희 미래부 장관 내정자가 전날 청문회에서 언급한 내용이 주목된다. 기존 정책 수단을 더 강력히 시행해 알뜰폰에 통신사를 비롯한 대기업이 진출을 하더라도 가계 통신비 인하 효과를 이끌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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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발표된지 얼마 되지 않은 미래부의 정책이 바뀌기 어려워 보인다. 이통 계열사의 알뜰폰 부과 등록 조건을 추가로 부여할 경우 반발이 거셀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텔링크의 사업을 받아들였을 때부터 잘못 돌아가기 시작한 일”이라며 “작년 순환영업정지 때처럼 이통사가 알뜰폰 시장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때와 같은 일이 앞으로 벌어질 때 정부가 즉각 개입하지 않으면 알뜰폰 시장은 의미가 퇴색될 것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