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른듯 안 누른듯” 키보드계의 한석봉

레오폴드 FC660C 리뷰

일반입력 :2014/06/01 18:22

권봉석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적어도 매일같이 PC를 만지면서 쓰게 되는 키보드나 마우스는 좋은 제품을 쓰는 것이 업무 능률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너무 눌러댄 나머지 키 인쇄가 다 지워지거나 가면 갈수록 뻑뻑해지는 키보드로 고생하는 것보다는 튼튼하고 잘 눌리는 키보드를 장만해 즐겁게 일하는 편이 낫다.

몇년 전만 해도 키보드는 저가 멤브레인 방식이나 노트북에 흔히 쓰이는 팬터그래프 방식이 주류를 이뤘다. 하지만 4~5년 전부터 게임 반응 속도와 내구성을 앞세운 기계식 스위치 키보드가 인기를 얻으며 제품 수도 제법 늘어났다. 레오폴드가 최근 출시한 키보드 ‘FC660C’는 내구성이 높고 소음이 적은 정전용량 무접점 방식 키보드다.

공간 절약 우선한 디자인

이 키보드를 보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화감을 느끼기 쉽다. 공간 절약을 위해 텐키 키패드를 덜어낸 제품은 많지만 홈/엔드, 페이지업/다운 등 커서 이동에 필요한 대부분의 키까지 들어냈다. 심지어 대부분의 키보드에 흔히 볼 수 있는 펑션(F1~F12)키도 없다. 그 대신 키보드가 차지하는 면적은 확실히 줄었다. 기존 키보드를 놓을 공간이면 FC660C와 유·무선 마우스를 놓아도 공간이 남는다. 숫자 입력을 자주 하는 사람, 혹은 숫자를 키패드로 입력하는 버릇이 든 사람이 아니라면 한 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색상은 블랙·그레이 두 종류이며 키보드 배열은 영문·한글·무각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한글 2벌식 자판이나 영어 자판을 모두 외우고 있다면 아무런 표시가 없는 무각인 블랙 버전을, 한글 자판이 필요하다면 그레이/블랙 버전을 선택하면 된다. 리뷰 제품인 그레이 버전은 영어 알파벳과 한글 자모를 높은 온도로 키 표면에 스며들게 만드는 염료승화 방식을 써서 인쇄했다. 지문 등 마찰에 강하고 오래 써도 키보드 자모가 벗겨지지 않는 게 장점이다.

FC660C를 옆에서 보면 키 표면이 완만한 곡선을 그린다. 중앙에 가까운 ‘A’키와 바로 아래 있는 ‘Z’키를 바꿔 끼우면 서로 높이가 맞지 않아 타이핑하기 힘들어진다. 이처럼 각 단마다 높이·각도를 다르게 만든 키캡을 써서 곡선을 그리게 만든 방식을 ‘스텝 스컬처 2’라고 부른다. 손가락이 누르려고 의도했던 키에 정확히 와닿도록 만든 것이다. PC와 연결할 때는 메모리카드 리더나 주변기기 연결에 곧잘 쓰이는 5핀 미니 케이블을 이용한다.

누르는 부담과 소음공해 줄여주는 스위치

키보드는 주변기기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소모품이기도 하다. 손가락과 직접 맞닿는 키캡이 반들반들해지고 새겨진 글자가 벗겨지기도 하지만, 키 안에 들어간 고무 스위치가 여러번 눌리다가 찢어지거나 시간이 지나면서 뻑뻑해지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특히 PC를 사면 딸려오는 키보드는 원가 절감을 위해 합성고무(멤브레인) 스위치를 쓰는 경우가 많다. 개중에는 키를 눌렀을 때 손끝 느낌이 퍽퍽하고 오래 두드리고 있으면 손목이나 손가락 관절이 시큰거리는 제품도 있다.

FC660C는 다른 키보드와 약간 다른 정전용량 무접점 방식으로 작동한다. 키 내부에 있는 스프링이 압력으로 눌리면서 생기는 전압 차이를 통해 키가 눌렸다는 것을 인식한다. 노트북에 자주 쓰이는 팬터그래프 방식이나 멤브레인/기계식 키보드처럼 키를 굳이 바닥까지 눌러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만큼 힘이 덜 들고 손목이나 손가락에 가해지는 부담도 적다. 현재 이런 스위치를 만드는 회사는 일본 토프레(Topre)가 유일하며 FC660C 역시 이 회사 스위치를 썼다. 키가 눌린 것으로 인식하는 기준이 되는 키 압력은 모두 45g으로 통일되어 너무 가볍거나 무겁지 않다.

특수한 스위치 덕에 얻는 이점은 또 있다. 키를 깊이 끝까지 누를 필요가 없기 때문에 키를 누를 때 소음도 그만큼 줄어든다. 키보드를 누를 때 나는 소리는 키 표면을 손가락이 때릴 때 나는 소리와 키가 키보드 바닥에 닿을 때 나는 소리로 나눠진다. 하지만 FC660C는 키를 굳이 깊이 누르지 않아도 키를 인식한다. 조금만 습관을 바꾸면 사무실 등 다른 사람이 있는 곳에서도 소음공해 없이 키보드를 쓸 수 있다. 단 타자기로 타이핑을 배웠다거나, 스트레스를 느끼면 무의식 중에 키보드에 화풀이(?)를 하는 습관이 있다면 소음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특수 재질 키캡으로 미끄러짐 줄여

오타나 실수를 줄여주는 요소 중 의외로 중요한 것이 키 스위치를 눌러주는 키캡이다. 한 글자를 만들기 위해서 손가락이 적을 때는 두 번, 많을 때는 다섯 번 이상 키 위를 오가며 키캡 위를 지나간다. 일반 플라스틱으로 만든 키보드는 한 달도 채 안되어 표면이 반짝거리고 미끄러지기도 쉽다. 리뷰 제품을 수령한 후 만 6일간 매일 6천자 이상 타이핑했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기본 자리 8개 키와 스페이스바가 약간 매끈해졌을 뿐 심하게 반짝거리지는 않는다.

홈/엔드, 페이지업/페이지다운 등 특수키는 오른쪽 아래에 있는 펑션(Fn)키와 다른 키를 함께 눌러서 해결한다.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펑션키를 누른 상태에서 K를 누르면 홈 키로, ‘,’키를 누르면 엔드 키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이용해 커서 이동에 관련된 기능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데 익숙해지면 바삐 놀리던 손을 멈추거나 움직일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익숙해질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며 끝끝내 익숙해지지 못할 가능성도 적잖다. 차라리 펑션키는 오른손으로 누른 상태에서 왼손으로 다른 키를 누르게 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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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드 뒤의 딥스위치를 밀어 기능을 조절하면 제한적이지만 키보드를 입맛에 맞게 설정할 수 있다. 유닉스·리눅스 환경에서 작업이 잦거나 특정 프로그램에서 컨트롤(Ctrl) 키를 많이 쓴다면 왼쪽 컨트롤키와 캡스록 키 위치를 서로 바꿔줄 수 있다. 원한다면 키 캡도 아예 갈아치울 수 있다. 전체 화면을 다 쓰는 게임에서 윈도 키를 잘못 눌러 튕겨나가는 것이 짜증스럽다면 아예 윈도 키가 작동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프로그램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로 기능을 조절하기 때문에 다른 PC에 꽂아도 그대로 작동한다.

FC660C는 누를때 손목이나 손가락에 부담이 덜 가는 정전용량 무접점 방식을 써서 마우스보다 키보드를 더 자주 쓰는 사람에게 유용하다. 하지만 숫자 입력에 자주 쓰이는 키패드를 생략하고 커서 이동에 자주 쓰이는 여러 키는 다른 키와 함께 눌러야 한다. 이들 키를 자주 쓰는 사람에게는 추천하기 힘들지만 글자 입력이 주된 용도라면 더 잘 맞을 수 있다. 가격은 21만원 선이며 현재 출시된 정전용량 무접점 키보드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