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ANN "인터넷 거버넌스에 세계 목소리 담겠다"

일반입력 :2014/04/17 15:29    수정: 2014/04/17 15:45

남혜현 기자

독립을 앞둔 '인터넷 주소 관리 기구' ICANN이 우군 확보에 전념 중이다. 미국이 ICANN 관리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지만 일각에선 ICANN이 미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우산을 벗어나는 만큼 ICANN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 구축이다. 이를 위해 파디 쉐하디 ICANN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발 벗고 나섰다. 최근 방한한 쉐하디 CEO가 17일 오전 리츠칼튼 서울에서 국내 기자들을 대상으로 간담회를 연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한 시간 남짓 간담회에서 쉐하디 CEO가 강조한 것은 정부, 기업, 시민사회를 아우르는 인터넷 거버넌스다. ICANN이 그간 인터넷 주소와 실제 사이트를 연결해주는 기본 역할을 충분히 해왔다는 공로도 인정받길 바랐다. ICANN의 역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인터넷 산업 참여자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지금보다 큰 인터넷 거버넌스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요지다.

인터넷 거버넌스는, 작게는 도메인 관리부터 넓게는 보안, 네트워킹, 문화 형성까지 인터넷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여러 문제를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 함께 해결해나가는 구조를 뜻한다. 각국 정부는 물론,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IT 기업들, 시민사회 단체가 포함된다. 이달 말 열리는 브라질 인터넷 거버넌스 회의(NETmundial) 주제도 역시 인터넷 거버넌스다. 인터넷의 미래를 책임질 주체를 결정 짓자는 얘기인만큼 거버넌스에 세계 각국의 관심이 쏠려있다.

뜨거운 관심만큼 인터넷 거버넌스를 바라보는 여러 주체의 속내는 복잡하다. 우선 미국. 지난해 미국 정부의 도감청 사태를 폭로한 스노든 사건 이후 인터넷 관리 주도권을 내놓으라는 압박을 받아왔다. 결국 미국 국가통신정보국(NTIA)이 2015년 9월 만료되는 ICANN 관리 권한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러나 단서를 붙였다. ▲다자간 협의 모델 강화 ▲인터넷 DNS 보안과 안정 탄력 유지 ▲미국 민간 비영리기관 IANA(인터넷 할당번호 관리) 서비스를 쓰는 소비자와 제휴사 기대 충족 ▲인터넷 개방성 유지가 그것이다.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거나 ICANN이 독립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미국은 두 번에 걸쳐 계약 만료를 연장할 수 있다. 올해 열다섯살이 된 ICANN이 스무살, 성인이 될때까지 미국이 직접 관리하겠다는 뜻이다. ICANN으로선 독립을 위해서도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ICANN이 결국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겠느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여기에서 나온다.

쉐하디 CEO도 그간 ICANN이 미국을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가 ICANN의 운영을 맡은 것은 18개월 전부터다. 그때만해도 아시아를 담당하는 ICANN 직원은 단 한 명 뿐이었다. 이집트 태생에 레바논에서 자랐으며 미국 국적을 가진 그는, ICANN이 미국을 넘어 글로벌 정통성을 인정받는 기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미국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가능한 다양한 국가와 기업, 시민사회의 의견이 교류되는 통로가 되겠다는 것이다.

쉐하디 CEO는 ICANN 뿌리가 미국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미국에 편향됐다는) 지적들이 나오게 됐다며 ICANN은 세계화를 위한 여정을 시작했고 이 여정은 계속해 이어지는 것이라 하루 아침에 완성되는 내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의 빈 자리를 글로벌 커뮤니티가 채워야 한다는 주문도 했다. 그는 그간 ICANN 운영에는 133개 정부가 참여해왔고 미국은 여기에서 CEO 같은 역할을 해왔던 것이라며 미국이 이 권한을 내놓은 만큼 국제 사회가 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ICANN 운영에서 공식적으로 손을 뗀다 하더라도 암막 뒤에서 영향력은 지속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선 솔직하게 말해서, 자기가 가진 권한을 남에게 주기는 어렵다. 그런데 그런 시점이 왔고 미국이 그 권한을 포기한 것이라며 이것에 대해 인정할 건 인정해줘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이 내건 ICANN 독립 조건에 대해서도 미국에 특혜를 주는 게 아니라 개방 플랫폼을 유지하고 안정적 서비스를 갖추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남미 등에서 미국을 견제하는 목소리를 양극화라고 표현한 그는, 한국 정부에 대해선 우호적 태도를 취했다. 그는 한국이 인터넷 거버넌스에 대해 포용적인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양극화 현상이 더욱 커질 때는 세계 인터넷이 해체되는 상황이 올 수 있는데 한국 같은 포용적 입장을 견지한다면 세계를 통합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형성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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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하디 CEO는 지난 16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원장 출신인 이기주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을 만나 인터넷 관련 업무에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를 검토하기도 했다. 그는 이기주 전 KISA 원장을 만났고 부임 축하 인사를 했다며 KISA 때 좋은 파트너십을 가져간 만큼 새로운 자리에서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확인해봤고 가능성이 있다고 확인했다고 말했다. 현재 ICANN 한국 사무소는 KISA가 그 역할을 겸하고 있다.

이 외에 쉐하디 CEO는 윤종록 미래창조과학부 2차관과 송경희 인터넷정책과장, 부산 IT전권회의를 준비하는 민원기 의장 등 국내 인터넷 산업의 중심 인물들을 만났다. 그는 윤 차관과 만남에 대해 한국이 ICANN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줬고, 브라질 회의에 낸 제안서에 감사했다며 앞으로 세계 무대에서 한국이 인터넷 거버넌스에 관한 논의를 할때 리더십을 보여주길 당부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