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실수와 카드정보 유출 대책 신뢰 위기

기자수첩입력 :2014/01/27 17:29

연초 신용카드회사 3곳에서 취급하던 금융관련 개인 및 법인정보 1억건 이상이 불법 유출됐다는 소식에 따른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재발 방지를 위한 정부 대책은 계속 나오는데, 소비자들의 불안은 오히려 커지는 것 같다. 대책의 약발이 별로임을 보여준다. 

지난 8일 창원지방검찰청 특수부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불법수집된 원본 파일과 1차 복사 파일을 압수함으로써 외부 유출은 '일단 차단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해당 카드사와 정부는 2차 피해는 없다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아가고 있다. 없다와 추정된다는 뉘앙스 자체가 다른 말이다. 추정된다에는 '유출됐을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카드사와 정부가 어떤 이유로 추정된다를 없다고 바꿨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물론 1억건 이상의 정보가 유출된 시기는 지난 2012년 5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1년반가량에 걸쳐 일어났다. 체감상 최근 텔레마케팅과 대출안내전화 등이 늘어났음을 근거로 2차 피해를 기정사실화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당초 카드3사와 금융당국의 대응은 사건을 수사해 온 창원지방검찰청 특수부가 올초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뒤에야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도 이들은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을 안심시키느라 16자리 카드번호만 일정규모 이상 갖고 있더라도 발생할 수 있는 2차 피해 가능성을 축소하는데 바쁜 모습을 보였다.

정부는 범인과 주변인물 계좌에 고객정보가 추가 거래된 흔적과 직접 피해 사례 신고가 없었고 USB저장장치와 하드디스크 등 유출매체를 압수했기에 2차 유출은 없었다고 단정했다. 여기서 2차유출 거래가 비실명 계좌를 통하거나 은행 밖에서 이뤄졌을 가능성, 이번 정보 유출 사건으로 인한 금융사기나 카드정보 도용이 발생했을 가능성은 간과됐다.

유출된 정보만으로 온라인 결제가 가능한 사이트의 존재나 유출된 신용카드 번호에 무작위 대입한 CVC로 카드위조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도 무시됐다.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거주지와 회사의 주소나 연락처, 결제은행과 계좌번호 등 일상적인 경제활동에 신분 증명과 관련된 정보가 도난당한 것 자체가 큰 피해라는 점도 부각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부 고위 당국자들의 어이없는 발언이 터져나오면서 정부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차가워지는 분위기다.

최근 현오석 부총리는 "국민들도 다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 것 아니냐"는 말로,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카드사에서 유출된 정보는 텍스트파일 형태였다. 법무부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텍스트파일은 엑셀파일로 변환이 안되는 것으로 안다"는 말로 정보가 유출된 사용자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결론부터 말하면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으면 금융 서비스 자체를 이용할 수 없고, 텍스트파일은 엑셀파일로 쉽게 변환된다. 현오석 부총리나 정찬우 부위원장이 혹세무민하려고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잘 모르다보니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컴퓨터 활용 수준이 높지 않을테니, 모르는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발언의 당사자들이 정부 대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다보니, 일반 사람 입장에선 그냥 넘어갈 사인이 아닌 것 같다. 정부의 전문성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일반인들의 눈에 "2차 피해는 없으니 안심하라"며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정부 당국자와 "국민들도 다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한 것 아니냐", "카드사에서 유출된 정보는 텍스트파일 형태였다"며 "법무부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텍스트파일은 엑셀파일로 변환이 안되는 것으로 안다"라고 말하는 정부 당국자들은 모두가 같은 사람들이다.

검찰에선 2차 피해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2차 피해는 없다는 쪽으로 분위기를 몰고가는 이들 또한 정부 당국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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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현오석 부총리나 정찬우 부위원장의 발언을 사소한 말실수로 생각할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걸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다르다. 이들의 발언과 정부 대책은 거의 동급으로 비춰진다. 대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엉뚱한 얘기하면 대책 자체도 엉뚱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두 사람의 발언이 이슈화된뒤 인터넷을 보니 '정부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에서 '이제는 믿을 수 없다'는 쪽으로 기우는 이들이 느는 것 같다. 정부는 바쁘고 급해도 사실관계는 좀 확인하고 대책을 말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