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甲午年) 청마(靑馬)의 해인 올해는 대한민국에 이동통신 서비스가 선보인 지 꼭 30년이 되는 해다. 지난 1984년 5월에 개통된 카폰이 그 시초다. 당시 카폰은 포니 승용차 가격보다 비싸 특수 계층만 사용하던 귀족폰이었다. 이후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부럽지 않은 환경이다. 이동통신은 내부적으로 국민의 생활과 기업의 문화를 혁신케 한 일등공신의 역할을 해왔으며 외부적으로는 우리나라 최대 수출 산업으로 올라선 스마트폰의 젖줄이 되었다. 지디넷코리아는 국내 모바일 혁명의 역사를 6회에 걸쳐 되돌아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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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1) 생각나시나요?…차보다 비쌌던 30년전 그 폰
2) 응답하라 1997…삐삐·시티폰, 그 아련한 추억
3) 보조금이 태어났다…격동의 이통 5社 시절
4) 아이폰 전에 꿈꿨다…손안의 멀티미디어 3G
5) 어느날 아이폰이 왔다…4년만에 시효 끝?
6) 호모 모빌리쿠스 시대…스마트폰이 곧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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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벽돌폰’이 저렴해지고 주머니 속에 들어올 만큼 작아졌다. 어느 샌가 학생들에서부터 중장년층까지, 너나 할 것 없이 휴대폰을 들고 다닌다. 이전까지의 휴대폰은 ‘과시용’이었다면 이제는 실제로 통화를 하기 위한 기기가 됐다. 손에 들고 다니는 폰이라는 의미의 ‘핸드폰’이라는 콩글리시도 등장했다.
1990년대 중후반, 바야흐로 개인 휴대폰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나라에 2세대(2G) 이동통신이 처음 도입된 때는 지난 1996년이다. 1996년 1월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4월 신세기통신이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전국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2G 도입 한 해 전만해도 100만명에 불과했던 이동통신 가입자수는 2000년 12월 셀룰러 1천445만명, PCS 1천236만명으로 총 2천682만명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 셀룰러 vs PCS, 이동통신 5강 체제…보조금 등장
통신사들 간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 것도 이때다. 지금은 고작(?) 3개 사업자가 각축전을 벌이고 있지만 우리나라도 한 때는 다수의 통신사업자들이 경쟁을 한 적이 있었다. 2G 이동통신(셀룰러)에서는 한국이동통신과 신세기통신이, 이후 나온 2.5세대 PCS 진영에서는 한국통신프리텔(KTF),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 한솔PCS 등 총 5개사가 선수로 나섰다.
지금이야 휴대전화 앞번호가 010으로 통합됐지만 당시에는 사업자별로 각각의 번호가 부여됐다. 아직까지 2G 이용자들이 쓰고 있는 01X 번호가 그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이동통신은 011, 신세기통신은 017, 한국통신프리텔은 016, LG텔레콤은 019, 한솔PCS는 018 번호를 쓰는 식이었다.
자연히 통신사들은 번호를 전면에 내세워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각인시키기 안간힘이었다. 번호이동시 보조금 등 혜택을 주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단말기 보조금은 이동통신 가입자 폭발적 증가의 일등공신이기도 했다. 이후 정부는 시장 과열경쟁을 방지하기 위해 2000년 6월 보조금제도를 폐지했다가 다시 부활시킨다. 2014년 현재도 보조금으로 시장이 시끄러운 점을 생각해보면 보조금 논란의 뿌리가 나름대로 깊은 셈이다.
이러나저러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것은 SK텔레콤이다. 결판은 ‘어느 통신사가 잘 터지냐’에서 났다. 당시 SK텔레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스피드 011’로 대표되는 품질 경쟁력을 앞세웠다. ‘번호의 자부심’, ‘명품 011’ 등의 문구가 TV 광고에서 넘쳐흐르던 시절이었다.
사실 SK텔레콤이 어느 회사보다 ‘잘 터진’ 이유는 유일하게 2G 황금주파수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주파일수록 멀리 가고 회절성이 좋아 2G에서는 황금주파수로 꼽힌다. 그런데 디지털이동통신은 800MHz 대역을, PCS는 1.8GHz 대역을 썼다. 여기에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까지 합병함으로써 800MHz 대역을 독차지하게 된 셈이다. 산간벽지나 건물 내부, 지하 등에서 SK텔레콤이 더 잘 터졌던 이유다.
여기서 잠깐 과거 광고를 회상해보자.
배우 한석규가 녹음이 우거져있는 대나무숲을 걷는다. 옆에는 스님과 함께다. 대화는 없지만 풀숲을 걷는 동안 스쳐가는 바람소리,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이내 휴대폰이 울리며 정적을 깬다. 잠시 후 부드럽게 깔리는 중저음의 목소리.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
SK텔레콤 휴대폰은 한적한 산골의 대나무 숲까지 안 터지는 곳이 없다는 자부심이 깔린 광고다. 반면 고주파 대역을 썼던 PCS 사업자들은 데이터 전송량이 크고 통화료 및 단말기 가격 등이 저렴하긴 했지만, 주파수 도달거리가 짧고 회절성이 낮았다. 셀룰러에 비해 더 많은 중계기를 설치해야 했던 점이 한계로 꼽혔다.
그러나 국내 시장은 5개 사업자가 경쟁하기엔 너무 좁았던 것일까. 당시 차세대 이동통신으로 꼽혔던 IMT-2000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3개 사업자에만 사업권을 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치열한 눈치싸움과 인수합병이 시작됐다.
한국이동통신은 1997년 1월 선경그룹(현 SK그룹)으로 편입된 뒤 그해 3월 SK텔레콤으로 이름을 바꾸고 1999년 12월 신세기통신을 인수 합병했다. 당시 SK텔레콤은 시장점유율 43%의 1위 사업자로 3위 사업자 신세기통신을 합병함으로써 50%를 초과, 독점 이슈가 걸림돌이었다.
그러나 다음해인 2000년 4월, 공정거래위원회는 2001년 6월말까지 시장점유율을 50% 미만으로 떨어뜨린다는 조건 하에 인수를 승인했다.
한국통신프리텔도 2000년 6월 한솔PCS(한솔엠닷컴)를 인수했다. 사명을 KTF로 바꾼 것은 그 다음해인 2001년이다. 한국전기통신공사(한국통신)도 같은 해 민영화를 통해 KT로 사명을 변경했고 지난 2009년 KTF를 합병, 현재의 KT가 됐다.
LG텔레콤은 지난 2010년 1월 LG데이콤, LG파워콤과 합병, 사명을 LG유플러스로 변경했다. 이때부터 국내 이동통신시장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3각 구도로 고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애니콜·스카이·싸이언·걸리버…추억의 그 이름
2G 이동통신 시대에 접어들면서 휴대폰 디자인도 함께 진화했다. 종종 실수로 버튼이 눌러지는 기존 바(bar)형 휴대폰의 단점을 해소한 플립형 휴대폰이 나오면서 전반적으로 크기는 작아지고 무게는 가벼워졌다.
여기에 모토로라 스타텍 이후 폴더 열풍이 불면서 휴대폰은 순식간에 폴더폰이 대세가 됐다. 심지어 단순 폴더를 넘어 바깥쪽에도 액정이 달린 듀얼폴더, 슬라이드형, ‘가로본능’으로 익숙한 가로보기 폴더 등 종류도 다양해졌다.
자연히 통신사들의 경쟁만큼 휴대폰 제조사들의 전쟁도 불꽃 튀었다. “한국지형에 강하다”던 삼성전자 애니콜, LG전자 싸이언, 현대전자 걸리버, SK텔레텍 스카이, 모토로라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 어린 학생들은 현대전자가 휴대폰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까. “걸면 걸리니까 걸리버지예~” 로버트 할리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목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현대전자는 이후 휴대폰 사업부문을 분사, 현대큐리텔을 설립했고 2001년 팬택에 매각했다. 사명은 팬택앤큐리텔로 바뀌었다. 이후 스카이 브랜드의 SK텔레텍까지 합병, 현재의 팬택에 이른다.
■엄지족-화음벨소리 등장…데이터 활성화 아직
무엇보다 변한 것은 우리 생활이었다.
2G 시대에 접어들면서 휴대폰으로 음성뿐만 아니라 문자메시지와 데이터 전송이 가능해졌다. 사회적으로는 ‘엄지족’이라는 용어가 새로 등장하기도 했다.
또 이전까지는 휴대폰이 단순한 ‘음성통화 기기’에 머물렀다면 2G부터 카메라, 화음벨소리, 게임 등의 기능이 휴대폰 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러 아기자기한 벨소리와 바탕화면 등은 자신만의 개성을 나타내는데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16화음 벨소리 휴대폰을 가지고 있던 시절, 옆자리 친구의 64화음 벨소리가 어찌나 부럽던지. 여학생들은 예쁜 스티커, 비즈 등의 액세서리를 이용해 휴대폰을 꾸미기도 했다.
다만 데이터는 활성화되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매우 비쌌던 데이터 요금이 문제였다. 이 시절 무선인터넷을 사용하려면 WAP 방식의 이통사가 제공하는 폐쇄형 모바일 인터넷에 접속해야 했다. 예컨대 게임 하나를 다운로드 받으려면 무조건 네이트(SK텔레콤), 매직엔(KTF), 이지아이(LG텔레콤)에 접속해야 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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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이 접속시간에 따라 부과됐기 때문에 휴대폰을 만지다 실수로 네이트, 매직엔, 이지아이 버튼을 누를 경우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종료 버튼을 연타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1G 아날로그 통신은 완전 종료됐지만 2G 이동통신은 아직까지도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3G를 넘어 4G LTE, 지난해에는 두 배 빠른 LTE-A, 광대역LTE까지 상용화된 점을 생각하면 새삼 놀라운 일이다. SK텔레콤, LG유플러스는 현재도 2G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지난해 10월 기준 SK텔레콤 2G 가입자는 약 403만명, LG유플러스는 402만명 수준이다. KT는 지난 2012년 4G LTE 서비스 시작으로 2G를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