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 임원인 조OO씨㊿는 요새 ‘밴드’에 푹 빠졌다. 그동안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일체 하지 않았지만 친구의 초대로 초등학교 동창밴드에 가입한 후 댓글 다는 재미에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기가 무섭다.
#지난해 첫 손자를 본 김OO씨(61)는 아들의 권유로 스마트폰을 사고 카카오톡 계정을 만들었다. 친구들과 메시지 주고받는 재미도 재미지만 무엇보다 매일 카카오톡으로 오는 손자 사진과 동영상 보는 게 하루의 낙이다. 첫 뒤집기부터 옹알이에 걸음마까지 성장 과정이 스마트폰 사진첩에 고스란히 저장됐다.
최근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부는 스마트폰 열풍이 심상치 않다. 이미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지금까지는 ‘남들 다 쓰니까 나도 쓴다’던 중장년층들이 적극적으로 사용법을 개발하며 모바일 세상의 중심으로 편입하고 있다.
주역은 네이버가 만든 폐쇄형 SNS ‘밴드(BAND)’다. 처음에는 대학생들의 조모임용으로 기획된 서비스지만 같은 모임에 속한 멤버들끼리만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폐쇄성이 장점으로 부각되면서 가족과 친구, 커플을 비롯해 동호회, 회사동료, 동창회 등 다양한 종류의 모임이 열리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지난 8월부터 시작한 초·중·고 동창찾기 서비스는 중장년층 사용자를 불러모으는 역할을 했다. 누군가 일부러 모임을 만들지 않아도 졸업한 학교명과 졸업년도만 입력하면 동창밴드에 가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동창생들과 활발히 소통하는 모습은 제2의 아이러브스쿨 열풍에 비견된다.

조 씨가 활동하는 초등학교 밴드의 경우 이미 100명 가까운 멤버가 참여하고 있다. 참여한 친구들이 또 연락이 닿는 친구를 초대하기 때문에 확산속도도 빠르다. 얼마 전 고향인 광주에서 열린 동창회에는 40명이 넘는 동창들이 참여했다.
밴드에 가입한 후 조씨는 몇 십 년 만에 초등학교 졸업앨범도 꺼내보고 그리운 첫사랑도 다시 만났다. 누군가 사진이나 글을 올리면 순식간에 반응이 오기 때문에 한 두 시간만 지나면 수십개의 댓글이 달려 잠시라도 스마트폰을 보지 못하면 불안할 정도다. 젊은층이 싸이월드나 페이스북 같은 SNS에 열광했던 것과 똑같은 모습이다.
밴드말고도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중장년층도 크게 늘었다. ‘스마트’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카카오톡 프로필에는 손자나 손녀 사진이 자리잡은지 오래다. 아직은 전화가 더 편하지만 사진이나 동영상을 많이 주고받더라도 별다른 이용료가 들지않기 때문에 선호도가 높다.
중장년층에 부는 스마트폰 열풍에 대부분은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는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이에 따른 반작용도 존재한다. 카카오톡을 통해 지인들과 은밀한 동영상을 주고받거나 페이스북, 카카오톡 친구로 추가된 시부모님 때문에 불편하다는 불만은 오래된 고민이다.
불륜의 온상이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던 아이러브스쿨처럼 동창밴드 열풍도 똑같은 사회문제를 발생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로 많은 여성 관련 커뮤니티에는 ‘남편 혹은 아내가 밴드에 빠졌다’는 고민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대부분 통해 동창 혹은 첫사랑과 다시 연락을 하게 되면서 가정생활에 소홀해지고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 못내 불안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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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문화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에는 카톡(카카오톡)과 카스(카카오스토리)에 이어 밴드까지 SNS를 하느라 스마트폰에서 손을 놓지 못하던 주부가 결국 스마트폰을 남편에게 빼앗겼다는 사연이 게재되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다보니 가정일은 뒷전이 되는 경우도 많다.
어기준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소장은 “인터넷 시대에는 일종의 단절효과가 있었지만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면서 다양한 SNS에 소요되는 시간에 대한 통제력을 잃게 되고 성인층에서도 중독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는 일종의 문화지체 현상으로 이제 모바일 미디어를 어떻게 생산적으로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떠오르는 가운데 개인들도 이를 적절히 조절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