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 전 ‘OO사용설명서’가 서점가의 유행이던 때가 있었다. 인생, 몸, 시간, 아내, 상사 등 대상은 다양했다. 최근에는 ‘남자사용설명서’라는 영화도 개봉했다. 이들 키워드의 공통점은 하나. 모두 친숙한 존재들이지만 막상 정확한 사용법은 알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매일 1천800만명 이상이 접속하는 포털 네이버도 마찬가지다. 너무나 익숙하지만 모든 서비스의 사용법을 알기란 어렵다. 그런 네이버의 사용설명서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이들이 있다. 모두 6명으로 NHN 자회사인 NHN테크놀로지서비스(NTS) 소속 기술문서팀의 ‘테크니컬 라이터(Technical Writer)’들이다.
보통 테크니컬 라이터는 IT제품 설명서를 쓰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다양한 자료를 참고해 소비자 눈높이에 맞게 쉬운 제품 매뉴얼을 쓰고 외국어 매뉴얼의 번역을 감수한다. 외국에선 IT기업마다 꼭 필요로 하는 전문직이지만 우리나라 인식은 높지 않다. 특히 국내선 테크니컬 라이터가 제조사나 소프트웨어 패키지 회사가 아닌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서 활동하는 경우 자체가 드물다. 포털 기업으로는 NHN이 처음이다.
이들 6인도 대부분 마이크로소프트(MS), 안철수연구소, 나모인터랙티브 등 IT기업 및 IT전문 번역회사 출신이다. MS에서 근무하다 온 유영경 기술문서팀장은 “예전에는 사용자에게 전달되기 위해 꼭 필요한 제품 가이드, 매뉴얼 구성요소를 만드는 일을 했는데 NHN에선 딱히 꼭 필요한 문서랄게 없어 어려움도 있었다”며 “하지만 이는 달리 말하면 업무의 확장성이 높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늘상 보는 네이버 초기 화면 메뉴·탭·서비스 이름, 사용자 도움말, 오류 메시지부터 내부 개발자가 보는 프로그래밍 가이드, API 레퍼런스 등도 모두 이들 테크니컬 라이터들이 검토한다. 유 팀장은 “NHN 서비스 규모가 방대하다 보니 모든 서비스 메시지를 초안부터 맡기는 어렵지만 개발자나 실무자들이 쓴 초안에 빠진 내용을 보충하고 이해하기 쉽게 다듬는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가장 뒷단에서 전체 서비스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종류도 많고 양도 많은 문서를 모두 테크니컬 라이터가 작성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개발자나 UX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가이드를 만들어 배포하고 정기적인 교육을 진행하기도 한다. 사내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김붕미 차장은 “신청자를 받은 뒤 3~4명 그룹을 만들어 빨간펜 선생님처럼 1:1 글쓰기 코칭을 한다”며 “기수제로 운영되는데 교육 과정이 끝나면 하나의 주제에 대한 문서 작업이 끝나는 식이다”고 말했다.
NHN이 지난 2010년부터 선보여온 ‘NHN은 이렇게 한다!’ 기술서적 시리즈에도 이들의 손길이 닿아 있다. 소프트웨어 품질관리, 자바스크립트, API 활용 등 각 서적의 주제에 맞게 담당 실무팀이 저자로 참여하면 기술문서팀이 편집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달 초에는 이들이 직접 저자로 나선 책 <초보라도 괜찮아! 네이버 N드라이브>도 발간됐다. 추후에도 외부에 알리면 유용할 것 같은 NHN 자체 기술이나 적용 사례, 서비스 활용기 등은 ‘네이버 스타트북’ 시리즈로 엮어 낼 계획이다. 원혜정 차장은 “N드라이브 활용서처럼 일반적 상식 수준에서의 테크니컬 라이팅이라는 글쓰기 범주를 벗어난 재밌는 매뉴얼들을 많이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기술 공유 활동에도 앞장선다. 외부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블로그 ‘헬로월드’ 게시글을 관리하는 박춘권 차장은 “NHN 개발자들이 직접 쓴 글에는 아무래도 내부에서만 쓰는 용어들도 나오기 때문에 이를 알기 쉽게 바꾸는 업무를 보고 있다”며 “앞으로 이런 활동이나 우리가 내는 책 등이 중요한 레퍼런스(참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팀의 막내인 장주혜 대리는 “국내 IT업계는 ‘재야의 고수’에 의지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NHN이 실무와 이론을 결합시킨 서적들을 내고 소통하면서 정보 흐름이 체계화되는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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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공통된 바람은 테크니컬 라이터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인실 차장은 “테크니컬 라이터로서 정체성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겨나 같은 고민을 공유하는 행사나 모임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며 “외국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오래된 경력을 자랑하면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아가 NHN 테크니컬 라이터로서 국내 IT업계의 기준점을 만들고 싶은 마음도 크다. “외국 IT 업계에선 ‘구글이 이렇게 했어. 구글을 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죠. 국내 IT 종사자라면 어떤 어려운 일에 봉착했을 때 ‘NHN이 이렇게 했대. NHN을 봐’라는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유영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