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2012]박근혜 첫 여성 이공계 출신 대통령

일반입력 :2012/12/19 23:57    수정: 2012/12/20 00:17

김희연 기자

헌정 사상 첫 여성이자 이공계 출신 대통령이 탄생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당선인은 1952년 2월2일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장충초등학교와 성심여자중·고등학교를 거쳐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수석 졸업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태어나 어릴적부터 청와대에서 지내와 일찍부터 국가의 대한 신념을 자연스럽게 길렀다. 그는 22세 젊은 나이부터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해냈다.

박 당선인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룩한 박 전 대통령의 향수를 가진 중장년층들의 지지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그는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당시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해 정치권에 첫 발을 디뎠다. 이 후 이듬해 4월 대구 달성 지역구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면서 원내에 입성해 지난 18대 대선까지 이 지역에서만 4선을 했다.

박 당선인은 1998년 보궐선거로 국회에 진출하자마자 제1야당 부총재를 맡아 정치 승승가도를 달려왔다. 그러나 16대 대선 당시에는 ‘이회창 대세론’에 맞서 당내 개혁을 주장하면서 2002년 3월 탈당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 후 그는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으나 당시 이회창 후보가 손을 내밀면서 당 복귀를 선언하며 선거대책위원회 의장을 맡아 대선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 2004년 ‘천막당사의 기적’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당시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으로 국민들로부터의 실추된 당 이미지 회복을 위해 전국을 누비기도 했다. 눈물로 지지를 호소하며 121석의 의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는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 소신을 지킨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신념으로 지난 4·11총선에서도 비례대표 11번을 배정받으면서 지역구 의원 대신 비례대표 의원으로 등원하며 5선을 이뤄내기도 했다.

박 당선인의 이러한 성격을 잘 드러내는 몇 가지 사건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커터칼 테러’ 사건이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유세 당시 서울 신촌백화점 앞에서 커터칼 테러를 당해 수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수술 후 그의 첫 마디는 “대전은요?”였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는 충청권으로부터 지지를 받게 됐으며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에 적극 반대해 결국 무산시키면서 더욱 신임을 얻게 됐다.

지난해 박 당선인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나서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홍준표 전 대표 등이 디도스(DDoS)사건에 연루되면서 사퇴하자 19대 총선을 진두지휘했다. 악 조건 속에서도 152석을 획득하면서 그의 저력을 과시했다.

그는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그 동안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러나 지나친 소신과 원칙 때문에 용통성없고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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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박 당선인은 18대 대통령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시 경쟁 주자였던 정몽준 전 대표, 이재오 의원 등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이들은 그의 ‘불통’을 비판하며 경선에 불참한 바 있다.

박 당선인은 이번 대선 핵심 공약으로 ▲공정성을 높이는 경제민주화 ▲한국형 복지 체계 구축 ▲창조경제를 통한 성장동력 확보와 일자리창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정착 ▲정치혁신을 통한 신뢰회복과 미래형 창조정부 구현 ▲일자리를 늘리고 지키고 질을 올리는 ‘일자리 늘지오’ ▲ 농어촌 활력화와 중소중견기업 육성 ▲꿈과 끼를 마음껏 키우는 행복 교육 ▲맞춤형 교육과 일·가정 양립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사회 등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