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LG전자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구글 안드로이드에 맞설 한국형 모바일 운영체제(OS)를 만들겠다.”
지난해 8월 지식경제부는 세계적 유례가 없는 정부 주도 OS 개발로 ICT 강국 위상을 세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우리나라는 기기만 잘 만들고 소프트웨어(SW)는 경쟁력은 없다→애플이나 구글 등 글로벌 기업에게 종속될까 우려된다→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식의 결론이었다.
이를 두고, 국내 한 전자업체 SW 개발팀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돌아봤다. “하도 스마트가 뜬다니 정부가 뭔가 보여주려는데 해외서 보면 웃을 만한 무리수다. 미국이 주도하는 스마트 생태계에 대해 정부의 파악 수준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확인하니 걱정이 앞섰다.”
결국, 정부의 OS 개발 계획은 백지화됐다.■토목형 IT 진흥책에 업계 몸살
애플의 2007년 1월 아이폰 출시. 이듬해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정부는 뒤늦게나마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ICT 경쟁력을 고도화시킨다며 수많은 정책을 내놨다. 정보통신부를 해체시켰어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들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판 잡스’, ‘한국판 아이폰’, ‘한국판 안드로이드’를 만들겠다는 목소리가 정부부처 여기저기서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도 2010년 ‘SW강국도약전략’을 발표하며 “스티브 잡스 같은 성공사례를 한국서도 만들자”고 강조했다.
현재 시점에서 되짚어보면 대한민국 IT는 최근 엄청난 성과를 이뤘다. 조사기관 스트래티지어낼리틱스(SA)가 추정한 올해 삼성전자 스마트폰 판매량은 무려 2억대. 애플과 세계 시장을 양분했다.
아이폰으로 인한 위기설에 시달렸던 삼성전자가 이렇게 빨리 선두에 올라설지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LG전자와 팬택도 해외서 알아주는 스마트폰 강자가 됐다. 때문에 현재 대한민국 ICT 경쟁력은 몇몇 제조사의 성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성과에 정부의 공은 얼마나 될까. ICT업계에서는 대부분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다. 현실성 떨어지는 탁상공론, 보여주기 식 정책에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협조할 수밖에 없다. 앞서 지경부의 OS 개발 프로젝트는 그 대표 사례 중 하나다.
한 대기업 IT 계열사의 임원은 “현 정부는 스마트 혁명에 대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수년째 드러냈지만 크게 이뤄낸 결과가 없다”며 “각종 SW, 모바일 인재 키우기를 진행했어도 기업들은 관심이 미미했다”고 꼬집었다.
지경부와 함께 현 정부의 IT 정책 중추인 방송통신위원회도 이 부분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스마트폰 대중화에 큰 기여했다고 홍보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는 파악이 어렵다.
오히려 국민들의 평가는 냉담하다. 지난해 말 방통위가 ‘2008년~2011년 주요정책 성과’를 설문한 결과 ‘스마트폰 대중화’는 10점 만점에 고작 6.1점을 기록했다.
■박-문 “IT 인재 육성” 외치지만
지경부 OS 개발 시도 사례서 보듯 정부 주도의 거대 IT 생태계 구축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업계가 요구하는 것은 ‘거창한 주도’가 아니라 ‘알찬 지원’이다.
이 같은 지원이 차기 정부서 스마트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 박근혜와 문재인, 대선 주자들의 공약서 다소 벗어나 있는 문제다.
박 후보는 2만명의 인재를 양성하고 ICT 아카데미를 설립, SW 전문가도 키우겠다고 밝혔다. 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방안까지는 제시하지 않았다. 현 정부의 ‘잡스 키우기’ 외침과 큰 차별점이 없다.
윤창번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방송통신추진단장은 “콘텐츠와 SW를 같이 발전시킬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ICT로 경제를 운영해 신성장동력과 새로운 일자리, 시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도 모바일을 중심으로 한 ICT 경제 운영으로 새로운 시장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SW 기술공학센터 설립과 초등학교서의 SW 인재 교육 검토도 제시했다.
문 후보 측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스마트 생태계를 지권하기 위해 자문을 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선을 앞두고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운 상황. 업계는 자신들의 답답함을 해소해줄 내용을 더 기다려보겠다는 분위기다. 아직까지는 원론적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공약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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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태 IT문화원장은 “정부가 막대한 예산 투입이 스마트 생태계 조성과 인력 양성을 보장하지 못 한다”며 “스마트 생태계를 무대로 부자가 된 기업과 개인이 많이 나와야 인재들이 스스로 공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직접 지원보다 중소SW 기업에게 프로젝트 기회를 주는 등 장벽을 낮추고 하청구조도 개선해야 할 것”이라며 “현장 기업들은 어떻게 IT 사업을 운영할지 멘토링에 목말라하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