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P 연합 vs 오라클' IT시장의 미래 모습은

SAP HANA가 바꾸는 IT업계 지형도④

일반입력 :2012/08/13 15:28    수정: 2012/08/13 19:07

오라클을 견제해야 한다는 공감대로 한자리에 모인 SAP와 IT업계의 움직임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오라클이 ‘모든 것을 맡기라’고 목소리를 높일수록 SAP 연합의 결합력은 더 공고해진다.

인메모리 기반 데이터 분석 SW로 출발한 SAP의 HANA는 향후 더 큰 규모의 데이터웨어하우징(DW)과 비즈니스인텔리전트(BI)로 성장하고, 분석과 DW의 근간인 디스크 데이터베이스(DB)영역까지 담당한다. 이를 오라클 DB의 새로운 대항마로 인식한 기존 IT업체들은 反오라클 전선을 형성하며 SAP 연합을 구성했다.

SAP HANA의 방향은 기업 업무와 비즈니스를 뒷받침하는 모든 IT를 단일한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로 구성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담는 그릇인 하드웨어 인프라는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고수준의 SW 아키텍처 완성도만 제대로 지원할 수 있다면 하드웨어는 어떤 것이든 상관없어지기 때문이다.

오라클은 IT를 완제품으로 만들어 공급하겠다며 약간의 아웃소싱도 거부한다.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하드웨어에 운영체제, 미들웨어, 애플리케이션까지 모든 것을 오라클이 만들어 공급하겠다는 주장이다.

오라클의 엔지니어드 시스템은 전략에서 철학의 단계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부품에 머물렀던 IT의 위상은 이 철학 속에서 고급의 완성품 수준으로 격상된다. HP와 IBM이 IT의 언어로 설파했던 컨버지드인프라, 스마터 플래닛 등 통합 인프라 관련 메시지는 시스템통합(SI)업체의 비즈니스 전략으로 머무른다.

SAP HANA의 등장과 대다수 IT업체의 동참은 오라클의 통합 철학이 IT 전반에 스며드는 흐름을 멈추고 새로운 방향을 만들 가능성으로 떠오른다.

■‘약육강식’ 역할분담 IT 생태계의 종말

오라클의 행보는 IT 생태계 속 먹이사슬 체계를 깨뜨린다. 오라클 엔지니어드 시스템에 하드웨어업체와 SW업체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뿐만 아니라 IT서비스업체의 활동범위도 축소된다.

반면 SAP HANA는 여러 업체의 활동 공간을 유지하고, IT서비스의 자리도 남겨둔다. HANA의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위해 수많은 회사들이 참여하게 되는 형태다. 생태계의 구성은 전과 같지만, 전반적인 주도권이 SW로 완벽히 넘어간 모습이다.

SAP HANA가 IT시장의 주도권을 잡으면 통합을 외쳐온 IT거인들의 행보는 힘을 잃는다. 오라클과 더불어 수년동안 어플라이언스 트렌트를 다져온 IBM, HP 등은 SW 아키텍처 중심의 생태계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그들의 역할은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기 직전의 하드웨어 최적화까지다.

현재 SAP 연합의 가치사슬은 아주 단단하게 엮이지 않았다. HP는 SAP에 상당한 정성을 쏟고 있지만, IBM은 DB2나 네티자 같은 자체 솔루션 보호 때문에 SAP에 집중하지 못한다.

오라클이 SAP 연합의 방어를 뚫는데 성공하면, IBM은 언제든 오라클과 같은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IBM은 하드웨어로 퓨어시스템이란 통합 어플라이언스를 마련해놨고, SW뿐 아니라 IT서비스 역량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SAP 연합의 와해는 IBM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오라클의 전략은 현재까지 각개격파의 모양새다. 작년부터 HP를 공격하고 있는 오라클은 조금씩 IBM을 향한 공격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SAP의 가장 큰 파트너 두 곳을 순서대로 격파하면 남는 업체는 델과 시스코, 후지쯔 정도가 남는다.

■인증만 받으면 누구나 SAP 연합, 새로운 생태계

오라클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은 SAP의 파트너 정책이다. HANA 아키텍처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SAP는 HANA 어플라이언스를 제공할 능력만 된다면 어느 업체에게나 솔루션 파트너십을 맺을 의향을 갖고 있다.

D램 기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와 서버·스토리지 제품을 판매해온 국내의 태진인포텍이나 히타치데이터시스템즈(HDS) 제품을 판매해온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처럼 국내 업체들이 HANA 어플라이언스를 제공하겠다고 뛰어드는 모습이 늘어나고 있다.

SAP는 까다롭긴 하지만 누구에게나 HANA 하드웨어 인증 가능성을 열어두고, 대형 파트너에 의존하지 않으려 전세계 각지 중소업체들과 함께 생태계 외연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의 경우 한국오라클의 엔지니어드 시스템 총판 파트너기도 하다. 시스템 하드웨어와 SW통합 역량을 보유한 세계의 무수한 IT 유통사들이 SAP 파트너로 변신하는 것이다. 더구나 특정 업체에 ‘올인’하기보다 다양한 업체의 솔루션을 모아 고부가가치 사업을 영위하려는 유통업체들의 최근 행보는 오라클에게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서버업체들이 SAP에 발빠르게 손을 내미는 것과 별개로 스토리지업체의 움직임도 눈여겨볼 거리다. EMC, 넷앱 같은 외장형 디스크 스토리지업체들은 오라클 DB를 담는 저장매체로 수익을 거둬왔다. 스토리지업체에게 오라클의 DB는 놓치기 힘든 수익원이기 때문에 SAP나 오라클의 행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스토리지 회사에게 SAP나 오라클 중 하나를 택하라 한다면, 이들 역시 SAP의 손을 든다. 과거 업무용과 백업용 스토리지를 디스크와 테이프로 나눠 오라클과 절묘한 나눠먹기를 했던 스토리지업체들은 메모리 기반인 HANA DB의 백업용 및 장기보관 매체로서 SSD와 외장 디스크를 강조한다.

빈번히 사용되는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한 기술이 스토리지업체에서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건 HANA와 무관하지 않다. 조금이라도 데이터 처리속도를 높이기 위해 시스템의 입출력(I/O) 성능을 극대화하는 플래시와 캐싱 알고리즘, 스토리지 티어링 등의 기술은 HANA의 인메모리 기술과 맥을 같이 한다.

오라클의 행보는 스토리지업체에 긍정적이지 않다. 엑사데이터는 외장 스토리지의 필요성을 최소화한다. 대용량 DB 저장을 위한 엑사데이터 백업을 위한 DB 어플라이언스도 나온 상태다. 엑사데이터 용량이 부족할 경우 엑사데이터를 추가로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저장만을 위한 스토리지를 내놓은 것이다.

경쟁자들을 놀라게 한 오라클 엑사데이터의 성능은 컬럼 기반 DB압축 등을 비롯한 몇가지 특정 기술에 있다. 오라클은 엑사데이터 외부의 시스템에도 핵심 기술을 사용하려면 오라클의 제품을 이용하라고 주장한다. 스토리지업체들이 엑사데이터 백업 쪽에서 움직임을 보이자 나온 대응책이다.

■SAP 생태계와 오라클 철학의 대결

SAP HANA는 이전 IT환경을 둘러싸고 만들어졌던 업체간 역할 분담을 지속하는 움직임이다. 협력과 계약이 SAP 진영을 유지한다.

오라클의 철학은 역할분담의 붕괴를 위한 움직임이다. 협력은 없다. 모든 솔루션 역량을 갖고 자금력과 추진력을 보유한 거인들의 치열한 대결만 존재한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CEO는 자사의 데이터베이스 신버전을 내놓을 때마다 “오라클 DB보다 안정적이고 빠른 솔루션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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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가 HANA로 분석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자 경쟁 엔지니어드 시스템 제품인 엑사리틱스를 내놓은 오라클이다. 고객이 더 빠른 속도를 찾을 때 시선을 다시 오라클로 돌려놓는 행보가 이어진다.

생태계와 철학의 대결.SAP 연합과 오라클의 대결은 누구의 승리로 끝날 것이냐는 질문은 무의미하다. 선택은 고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