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행보 오라클에 대항하기 위해 SAP 연합군이란 공동전선을 구축한 IT업체들은 저마다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회사들이다. HP, IBM, 델, 시스코, 후지쯔 등의 규모나 힘 등에서 SAP에 밀리지 않는다.
각 IT업체들이 SAP HANA 파트너로 참여한 모습은 과거와 많이 다르다. 과거 특정 기업의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위해 유연한 파트너십을 맺었다면, SAP HANA에 대한 IT업체의 접근은 훨씬 더 적극적이다. 때로는 HANA에 대한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HANA는 SAP의 SW 아키텍처와 각 파트너의 하드웨어 기술을 최대한 긴밀하게 결합하려는 움직임이다. 오라클의 자체 최적화에 맞서려면 성능 극대화를 위한 부분부분 마다의 결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데이터 처리분야의 양대산맥을 이루게 된 SAP 연합군과 오라클의 대결은 단순히 두 회사의 대결이 아니라 기업용 IT솔루션업체 대부분이 참가하는 대형 전쟁이다. SAP가 HANA란 IT 아키텍처 전반에 SW를 제공하면 HP, IBM, 델, 시스코, 후지쯔 등 하드웨어업체들은 각 구성요소를 조합해 ‘HANA 어플라이언스’로 공급한다.(관련기사☞SAP연합 vs 오라클, 세상 흔들 거대전쟁)
각 하드웨어 파트너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처한 내부 사정은 복잡하다. 각자 HANA를 외치는 목소리의 높낮이가 다르며, 접근하는 방식과 얻고자 하는 이득도 다르다.
SAP는 다양한 하드웨어업체와 손잡은 이유를 최고의 시스템을 최적의 가격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파트너끼리의 경쟁을 유발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연합군은 각각 복잡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SAP 파트너들의 내부를 들여다 볼 필요성은 여기에 있다.
■IBM, 치열한 내부 경쟁에 힘조절
IBM은 대부분의 기업용 IT솔루션을 보유한 회사다. HANA 파트너로 참여했지만 SAP가 노리는 DB시장의 경쟁제품을 갖고 있다.
IBM은 DB2란 데이터베이스와 네티자란 BI 솔루션을 보유했다. HANA DB가 오라클 DB를 대체한다면 DB2나 네티자의 설자리가 줄어든다. IBM으로서는 선뜻 HANA에 힘을 실어주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IBM은 ‘특정 솔루션만 고집하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폭넓게 제공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DB2, 네티자, HANA 세 솔루션 모두에 고르게 역량을 쏟는다는 설명이다.
내부 조직 상으로 보면 IBM의 DB2와 네티자, HANA는 모두 별개의 사업부에서 담당한다. 이중 HANA는 x86서버를 담당하는 시스템테크놀로지그룹(STG)의 시스템x사업부가 주도한다. 솔루션 컨설팅을 위한 별도 지원조직으로 성장시장사업부(GMU)가 협력하는 구조다.
HANA가 존재하지 않던 시점까지 IBM의 DB2는 일찍부터 난처한 입장이었다. 오라클의 엑사데이터 출현 후 가장 큰 타격을 받은데다, 인수합병으로 확보한 네티자가 DW 시장에서 DB2보다 인기를 끌었던 탓이다.
솔루션 측면의 경우 DB2와 분석 SW로서 HANA는 통합돼 있다. 두 SW의 통합은 작년 3월의 일이다. DB2는 작년까지 오라클 DB의 유일한 대항마로 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SAP가 HANA DB를 완성하면서 얘기는 달라진다.
IBM은 고객사 프로젝트 제안 시 DB2, 네티자, HANA 어플라이언스란 3개의 선택지를 제출하지 않는다. 3가지 솔루션별 담당자들이 서로 경쟁한다. 전체 기업 실적으로 볼 때 3개 사업부가 시너지를 낸다기보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형국이다.
때문에 IBM은 타 업체에 비해 HANA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사업부별 실적 균형을 맞춰야 하고, 레거시 사업의 축소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단지 시스템X 제품 중 상위모델인 eX5의 성능을 강조하는 정도다.
IBM은 자사의 어플라이언스 제품도 갖고 있다. 올해 4월 공개된 퓨어시스템이 최신작이다. 퓨어시스템은 IBM의 서버, 스토리지, 네트워크, 미들웨어에 오랜 시스템통합(SI)의 경험을 패턴으로 제공하는 엑스퍼트 시스템으로 설명된다.
IBM 퓨어시스템은 애플리케이션까지 통합해 제공하는 형태는 아니다. 사용자의 애플리케이션 설치와 최적화 작업을 자동화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아직까지 SAP HANA를 위한 퓨어시스템은 공개되지 않았다.
분석용 어플라이언스인 ‘IBM 스마트 애널리틱스 시스템(ISAS)’ 시리즈도 HANA와 경쟁한다.
반대로 IBM의 자체 솔루션은 SAP에 대해 더 강한 협상력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IBM은 SAP와 가장 대등한 입장에 서 있다.
■HP, 反오라클의 아이콘…HANA 대변인 자처
IBM과 마찬가지로 HP 역시 자체적인 데이터웨어하우징(DW) 솔루션을 보유했다. 작년 인수한 버티카다. 버티카와 HANA의 내부 경쟁을 예상할 수 있다. HP의 외부 메시지도 ‘특정 솔루션을 고집하지 않고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겠다’로 IBM과 같다.
하지만 HP는 버티카와 HANA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해놓고 있다. HP의 버티카는 비정형 데이터 처리를 위한 인프라로 작동한다. HANA DB는 정형 데이터에 초점을 맞춘다.
HP의 HANA 어플라이언스는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사전에 통합해 제공하는 컨버지드인프라 제품으로 공급된다. 정식명칭은 ‘SAP HANA를 위한 앱시스템’이다. 물론 ‘버티카를 위한 앱시스템’도 존재한다.
HP HANA 앱시스템은 2종류다. 랙마운트 서버를 이용하는 단일노드 제품과 블레이드 서버를 이용하는 멀티노드 제품 등 2종으로 제공된다. IBM에 비해 다양하다.
싱글노드의 경우 HP 프로라이언트 제품 중 8소켓 모델인 DL980이나 4소켓 모델인 DL580이 사용된다. 멀티노드 제품은 블레이드 서버인 ‘BL680c’를 채택한다. 이는 최대 16노드까지 확장가능하며, 스토리지는 HP X9300, P6500 엔터프라이즈 버추얼 어레이(EVA) 등을 사용한다. 단일 박스에서 2테라바이트(TB) 용량을 저장할 수 있다. 데이터 압축을 사용하면 최대 8TB까지 확장 가능하다.
사업 조직의 경우 HANA와 버티카는 별개로 운영된다. HANA는 현재 HP 엔터프라이즈그룹 내 비즈니스크리티컬시스템(BCS) 사업부가 주도하고 있다. 버티카는 한때 BCS에서 담당했지만 현재 엔터프라이즈서비스(ES)의 인포메이션매니지먼트(IM) 사업부에서 담당한다.
HP 입장에서 버티카와 SAP HANA는 출반선이 동일하다. 두 사업 모두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사업조직 간 경쟁이 있을 수 있지만, IBM에 비해 덜한 편이다.
때문에 HP는 연합 내 어느 회사보다 적극적으로 HANA를 지지하는 모습이다. 오라클과 가장 긴밀했던 HP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인수 후 하드웨어 사업을 보유하게 된 오라클과 적대관계로 돌아섰다.
오라클의 HP 유닉스 서버에 대한 DB 업데이트 지원중단 발표시점인 작년 3월 이후 HP는 SAP를 최우선 파트너로 삼은 모습이다.
오라클은 썬 인수 후 줄기차게 HP를 공격하고 있다. HP로선 오라클과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한 DB시장에 하드웨어를 공급하기 위한 새로운 파트너를 구해야 하는 입장이다. 버티카는 오라클DB를 대체하기엔 아직 무리다. 결국 오라클을 정면 겨냥한 SAP의 행보는 HP의 난국을 해결할 대안이다.
HP에게 SAP HANA의 성공은 회사의 장기적인 존속이 걸린 문제다. 열의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HP는 SAP와 대등한 입장이라기보다, 진정한 의미의 파트너로서 형태를 보인다.
■시스코와 델, 그리고 오라클 플래티넘 파트너 후지쯔
시스코, 델, 후지쯔 등은 IBM이나 HP에 비해 기업 솔루션 시장에서 신흥 업체에 속한다. 델의 경우 파워에지 서버로 일찌감치 x86서버 제품을 판매해왔지만, 최근에서야 사업의 틀을 엔터프라이즈 시장에 맞춘 상태다. 시스코는 2009년 UCS 서버를 발표했고, 이제 3년째 서버 사업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후지쯔는 x86서버 제품으로 프라이머지 시리즈를 갖고 있지만, 유닉스 서버는 오라클과 파트너다. 후지쯔와 오라클은 유닉스 프로세서를 공동으로 개발하며, 후지쯔는 일본을 제외한 해외 시장에서 오라클 유닉스 서버를 판매할 권한을 갖고 있다.
잠시 가상화 시장으로 고개를 돌려보자. IBM과 HP는 유닉스 서버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가상화 솔루션업체인 VM웨어, 시트릭스, 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 반면 x86서버 제품만 판매하는 시스코와 델은 가상화 솔루션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는데 적극적이다.
이런 상황은 SAP HANA에 대한 시스코와 델의 태도와 동일하다. 서버 시장의 점유율을 높이려는 시스코와 델은 HANA를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데 부담을 갖지 않는다. 시장 침투를 위한 의욕만큼은 HP보다 앞서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시스코와 델의 어플라이언스 제작 역량이다.
시스코는 스토리지 제품을 갖고 있지 않다. EMC, VM웨어와 세운 VCE연합의 V블록이나, 넷앱과 협력하는 플렉스포드 정도를 시스코의 어플라이언스 제품이라 할 수 있다.
V블록과 플렉스포드는 광범위한 종류의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수 있는 제품이다. 시스코나 EMC는 SAP HANA만을 위한 별도의 컨피규레이션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는 목적별 어플라이언스로 보기 어렵다. 때문에 시스코는 SAP가 원하는 하드웨어 파트너 중심의 공급체계를 수행하는데 한계를 갖고 있다.
델은 V스타트란 패키지 제품을 보유했다. V스타트는 HP나 IBM처럼 모든 구성요소를 델 제품으로 삼는다. 하지만 V스타트는 서버 가상화 환경 구축을 빠르게 하는데 초점을 맞춘 제품이다. V블록이나 플렉스포드와 마찬가지로 목적별 어플라이언스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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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의 또다른 문제는 서비스 지원능력이다. 델은 오랜 시간 x86서버사업을 PC, 노트북 판매방식과 동일한 형태로 진행해왔다. 특정 고객에 대한 높은 수준의 서비스 제공 경험이 부족하다.
후지쯔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안고 있다. 후지쯔는 오라클과 SAP 양쪽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유닉스 서버 오라클 파트너인 후지쯔는 SAP HANA 지원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