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지난 2주간 하드웨어 입장에서 IT시스템에 I/O 성능이 얼마나 중요한 지 다뤘다. CPU보다 각 시스템 구성요소 사이의 길에 주목하는 것, 구성요소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 엔터프라이즈 컴퓨팅의 전체를 좌우한다는 게 오늘날 논의되는 화두다.
I/O에 대한 주목은 하드웨어 측면 외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SW) 측면에서 시스템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처음부터 I/O를 고려한 설계가 이뤄진다. 가장 대표적인 영역이 과거 CPU 성능에 주목했던 데이터베이스(DB) 영역이다.
일찌감치 DB 시장의 일부 업체들은 I/O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해왔다. 오라클 중심의 DB 시장에서 틈새를 마련하려는 치열한 아키텍처 고민이 이뤄졌다. 그는 디스크 기반이 아닌 메모리 기반 DB다.
한국의 알티베이스는 2000년 이미 메모리 DB를 개발해 실시간 데이터 처리를 요구하는 금융시장에 진입했다. 증권사의 경우 실시간으로 거래관련 데이터와 고객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요구가 어느 곳보다 강렬하다.
알티베이스의 메모리DB는 프로세싱 로직을 가속화하고, 하드디스크 저장 및 운영 방식의 DB 대신 메모리 영역에 데이터를 저장한다. 이로 인해 금융권과 고객 정보, 상품 정보 및 과금 관련 데이터(CDR, rating 테이블)로 실시간 과금 처리 및 실시간 한도 관리가 필요한 통신사의 빌링솔루션으로 각광을 받았다.
고속의 트랜잭션 처리와 비정상적으로 트래픽이 폭주하는 SMS 처리영역에서도 활용된다.
하지만 메모리는 하드디스크에 비해 고가인데다, 휘발성이란 점이 걸림돌로 남는다. 일단 고가인 만큼 대규모 인프라를 메모리 기반으로 구축하기에 부담스럽다. 보존을 위해 실시간 처리 데이터를 결국 하드디스크 영역에 넘겨 저장하는 알고리즘을 갖게 되는데, 메모리 사용의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하드웨어의 발전이 SW영역의 I/O 주목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메모리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성능극대화에 전보다 더 투자할 힘을 마련해준 것이다. SSD의 등장도 하드디스크의 대안을 만든 디딤돌이 됐다. 결국 DB시장은 메모리 기반 기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이런 추세는 알티베이스뿐 아니라 SAP의 움직임에서도 보인다. SAP는 인메모리 DB기술을 적용한 하나(HANA)란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HANA는 인메모리 DB로서 SAP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전략으로 급부상했다. ERP 영역에서 강자로 군림해온 이 회사는 오라클 DB와 공생하던 것에서 벗어나 전체를 SAP SW로 채울 전기를 마련했다.
현재 SAP HANA는 ERP DB의 영역의 데이터를 끌어와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비즈니스웨어하우징(BW) 용도로 나와 있다. 비즈니스 인텔리전스(BI)용 HANA는 DB속도를 100배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강점을 앞세워 ERP용 DB를 바꿔가고 있다.
점차 분석의 결과물이 배치성에서 실시간성 업무로 바뀌면서 SAP HANA 같은 빠른 분석이 각광받고 있다.
SAP HANA는 SW 입장에서 I/O에 주목함으로써 기존 DB가 갖고 있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우선, 컬럼 기반 DB 처리다. 사이베이스 IQ에서 분석 DB 최적화 속도를 위해 선택한 방법이다.
다음으로, 빠르게 병렬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 이어 마지막으로 택한 기술이 인메모리 컴퓨팅이다. 서버의 메모리를 DB로 활용함으로써 디스크 기반 DB의 속도를 뛰어넘은 것이다.
SAP는 ERP와 분석 인프라를 결합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개발하게 된다. 여기에 각 하드웨어 파트너들이 SAP에서 제공하는 아키텍처에 따라 최적화된 HANA 어플라이언스를 제작해 공급한다. HP, IBM, 시스코, 후지쯔 등이 SAP의 파트너로 나섰다.
국내의 경우 SAP ERP를 많이 사용해온 제조업계에서 HANA 어플라이언스를 도입한 상태다. 현재 국내 HANA 어플라이언스 구축기업은 5곳이다. 실질적인 HANA 공급이 1년 정도란 점을 감안하면 빠른 속도다.
국내 사례 중 HANA 어플라이언스를 공급한 곳은 현재로선 한국HP가 유일한 상황이다. HP는 애플리케이션을 최적화한 어플라이언스인 앱시스템을 판매하는데, HANA 용 앱시스템을 포함한다. HP는 하드웨어 구조적으로 I/O에 집중하면서 성능 극대화를 인정받아 공급사례를 만들 수 있었다.
HANA와 같은 메모리 기반 DB가 확산되면서 업계는 향후 2년 내 시장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SAP가 현재 메모리 DB로서 감당해낼 수 있는 규모는 OLAP성 업무인 ERP 환경에 머물러 있다. 때문에 DW가 아니라 BW다
올해말 SAP는 OLTP와 OLAP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다시말해 전체 DB를 아우를 수 있는 OLTP HANA DB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전까지 기업들이 사용했던 데이터 환경은 오라클 DB에서 SAP의 ERP가 데이터를 끌어오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SAP의 OLTP DB 출시는 잇속의 가시처럼 여기는 오라클DB를 엔터프라이즈 컴퓨팅에서 몰아낼 기술적인 준비를 마치게 되는 셈이다. SAP HANA가 오라클 DB의 성능과 안정성을 뛰어넘는다면, 전세계 포춘 500대 기업과 중소기업의 SAP ERP에 사용되는 오라클 DB가 ERP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SAP의 행보에는 오라클과 HP 사이에 벌어지는 유닉스 전쟁의 향배도 엮여 있다. 오라클은 작년 3월 HP 유닉스 시스템에 사용되는 인텔 아이태니엄 프로세서에 대해 SW개발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오라클 DB를 HP 유닉스 서버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이후 오라클과 HP는 불꽃튀는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오라클의 목적은 HP의 하드웨어를 몰아내고, 인수한 썬의 하드웨어를 확산시키려는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여겨진다. 전세계에 퍼진 광범위한 오라클DB의 고객기반을 앞세운 공격이었다.
하지만 SAP의 HANA가 오라클DB를 대체하게 되면 오라클의 전략은 근본적으로 흔들리게 된다. 오라클DB가 디스크 기반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I/O 성능에 대한 관심이 증가할수록 SAP와 그 파트너인 HP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이창훈 한국HP 비즈니스크리티컬시스템(BCS)사업부 부장은 “SAP ERP를 사용하는 고객은 HP와 오라클의 법정소송에 대해 관심밖이다”라며 “SAP ERP를 사용하는 고객에게 HANA DB라는 오라클DB 대체품이 기다리고 있고, 빠른 I/O성능과 균형잡힌 성능을 제공하는 HP제품 사용이 훨씬 득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티베이스나 SAP의 메모리 DB뿐 아니라 가상화와 클라우드 영역도 메모리 기반 DB에 주목하고 있다. VM웨어는 최근 하둡 기술에 최적화된 메모리 DB인 SQL파이어를 선보였다.
CPU에서 시작한 IT는 비즈니스와 만나면서 점차 전체 IT구성요소에 관심을 확대하도록 유도한다. 결국 IT솔루션을 사용하는 것은 일반 기업체이기에 솔루션 벤더의 움직임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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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느 IT업체든 I/O 성능 극대화를 고민하지 않는 곳은 없다. 하드웨어업체든, SW업체든 비즈니스 민첩성이란 당면과제를 해결하고, 고객 입맛에 맞추기 위해 변화하고 있다. CPU와 메모리, 메모리와 디스크, CPU와 디스크란 얇은 선으로 그려졌던 I/O 기술은 이제 엔터프라이즈 컴퓨팅 전체를 바꾸는 존재로 떠올랐다. 오라클조차도 분석을 위한 메모리 기반 시스템으로 엑사리틱스를 출시한 상황이다.
비즈니스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IT환경은 이제 기업용 솔루션을 공급해온 IT업체 생태계 전반을 바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