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의 '윈도 사랑'이 결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태블릿 전략 오판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 씨넷은 2일(현지시각) 비운의 MS 태블릿 '쿠리에'가 빛도 보지 못한채 폐기된 이유가 '윈도의 규칙'을 안 따랐기 때문이었다고 보도했다.
쿠리에는 지난 2009년 X박스로 유명한 J 알러드 MS 부사장이 직접 개발에 나선 태블릿이다. 7인치 화면 두 개를 이어 붙인 책 모양으로 펜과 손가락 터치 입력 방식을 동시에 지원하는 등 혁신적인 기능과 디자인으로 주목받았지만, 뚜렷한 이유없이 이듬해 개발이 중단됐다.
씨넷은 최근 쿠리에 개발에 참여했던 전현직 MS 임원 18명을 인터뷰한 결과, 당시 스티브 발머 MS CEO가 서로 다른 태블릿 개발을 놓고 고민하던 중 빌 게이츠의 조언을 들은 이후 쿠리에 개발을 중단시켰다고 전했다.
당시 빌 게이츠는 윈도를 수정해 운영하는 쿠리에가 MS의 주력 사업을 위협한다고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윈도를 기반으로 한 오피스나 익스체인지 등에서 큰 수익을 내고 있기 때문에 이 사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빌 게이츠는 쿠리에 개발을 놓고 스티브 발머, J 알라드 등 주요 임원이 모인 자리에서 쿠리에는 전통적인 윈도 인터페이스와 다르게 설계돼 OS를 수정해야 한다며 UI가 완전히 달라 윈도 시스템이라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J 알라드를 포함한 쿠리에 개발팀은 쿠리에가 MS에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라 설득했지만 이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스티브 발머는 곧 쿠리에 중단을 발표했으며 내부 경쟁팀이던 스티븐 시놉스키의 윈도 태블릿 개발에 집중 투자했다.
씨넷은 당시 쿠리에 개발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윈도 태블릿의 경우 2년이나 OS 개발에 투자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쿠리에가 개발 중단되고 난 후 3주만에 애플 아이패드가 나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됐다고 평했다.
윈도 태블릿 개발을 이끈 시놉스키는 MS 입사 이후 오피스와 윈도 개발 그룹 등을 거치며 명성을 쌓은 인물이다. 그가 개발한 제품 다수는 MS에 큰 수익을 안겼다. 그러나 태블릿은 예외였다. MS는 최근에서야 모바일 전용 OS인 윈도폰7을 선보였으며 태블릿에 최적화한 것으로 알려진 윈도8은 내년에나 발표된다.
■MS, 태블릿 혁신보단 윈도 사업 우선
시놉스키가 빌 게이츠의 신임을 받은데는 PC용 윈도7의 성공 덕이 컸다. 5년을 투자해 개발한 윈도 비스타가 너무 느리고 비대한 탓에 시장에서 혹평을 받자 시놉스키는 이를 수정 보완한 윈도7을 내놨다.
윈도7은 비교적 가볍고 빠른 성능으로 전작보다 인기가 좋았다. 결국 윈도7이 시놉스키와 발머 팀에 권력을 가져다 줬고, 이것이 쿠리에 프로젝트 폐기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씨넷은 분석했다.
쿠리에 개발에 참여했던 한 팀원은 시놉스키는 사업 수완이 매우 좋았다며 그는 회사 이익 보호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물론 쿠리에가 계획대로 시장에 나왔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공할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IT전문매체인 기즈모도가 쿠리에의 시연 동영상을 공개했을 때 업계에선 호평이 잇따랐지만 그것이 최종판은 아니었다. 실제로 완성된 쿠리에가 이같은 기능을 그대로 시연할 수 있었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쿠리에 개발에 참여했던 팀원들은 여전히 아쉬움을 보인다.
또 다른 쿠리에 개발 팀원은 스티브 발머는 쿠리에 개발 중단 소식을 직접 알리려 16마일을 달려 시애틀로 찾아왔다며 그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개발팀이 있던 컨퍼런스 룸은 정적에 휩싸였고 일부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우리는 세상을 바꿀만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고 자부했다며 그때 우리는 모두 똑같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쿠리에의 교훈 MS서 태블릿 하려면...
그 때 얻은 교훈이 있어요. 만약 더 큰 성공을 하고, 더 많은 지원을 받길 바랐다면, (윈도) 대열에 합류했어야 한다는 거죠. 만약 처음부터 시놉스키의 배에 탔다면 (쿠리에는) 아마 시장에 나왔을 겁니다.
전직 쿠리에 개발팀원들은 쿠리에의 실패 요인이 윈도를 전격적으로 수용하지 않은 탓이라 확신했다. 만약 그랬다면 쿠리에는 원래 알려진 것과는 상이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출시는 보장됐을 거란 이야기다.
쿠리에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지만 기술 중 일부는 MS의 다른 제품에 적용된 거으로 보인다. 기업 분석가인 토드 비숍은 지난해 MS가 제출한 기술 특허 중 일부에 쿠리에의 흔적이 엿보였다고 최근 언급했다. 최근 MS가 공개한 윈도8 기반 태블릿 시연에 터치와 펜을 모두 사용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도 쿠리에 콘셉트와 일치한다는 분석도 내놨다.
씨넷은 MS가 쿠리에를 취소한 이후 인재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중 다수는 MS에 남아 윈도폰이나 빙, X박스 개발 업무를 맡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아마존, 징가, 페이스북 같은 회사로 옮겨 제품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엔터테인먼트&디바이스 부서를 맡았던 수장 로비 바흐와 J 알라드 이직은 당시 IT업계에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J 알라드의 경우 빌 게이츠를 잇는 MS 핵심 임원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알라드는 MS 퇴사 이후 거의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지만 아웃도어 판매 사이트 회사에 참여하면서 쿠리에 프로젝트를 끝까지 이어가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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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넷은 알라드가 퇴사 이후 두 명의 개발자를 초빙, 아이패드에 쿠리에 콘셉트를 녹이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투자한 것으로 보도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벤자민 모닝과 리키 드레이크는 창업 투자 사이트 킥스타터에 개발 아이디어를 등록해 투자금을 모았는데 이중 가장 큰 투자자가 J 알라드였다는 것이다.
벤자민 모닝은 인터뷰에서 J는 우리팀의 조언자였다며 그는 우리와 꽤 먼거리에 살았지만 우리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마다 곧바로 달려왔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