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셔츠에 청바지를 걸친 젊은 친구들 40여명이 몇 칸 되지 않는 작은 사무실에 미어터질 정도로 몰려 있었다. 마치 중간고사를 앞둔 대학 동아리방 같았다.
강문주 선우엔터테인먼트 대표가 회상하는 지난 4월, 앵그리버드 개발사 로비오(ROVIO)의 풍경이다. 지금은 160명 정도의 직원으로 늘어난 핀란드 벤처기업 로비오는 지난 2009년 10만달러(한화 1억원)를 들여 만든 게임 애플리케이션 ‘앵그리버드’로 대박을 터트렸다. 지난 3월 벤처캐피털로부터 4천2백만달러(한화 500억원)를 투자받은 것이다.
전세계 3억건 다운로드를 기록한 이 스마트폰 게임은 콘솔, 웹 등 다른 플랫폼과 헐리웃 애니메이션, 전자책 분야으로도 진출, 종횡무진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선우는 로비오의 한국 에이전트사로, 국내 시장에서 이 게임의 라이선스 사업을 펼쳐나갈 예정이다.
■“앵그리버드, 韓시장 주목하고 있다”
로비오와의 계약은 속전속결이었다. 제안서를 보낸 뒤 3월에 로비오와 첫 미팅을 했고 한달 뒤인 4월 계약을 체결했다. 강 대표는 “헬싱키로 날아가서 5시간을 체류했는데 계약서를 쓰는 시간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며 “회의실도 꽉 차 있어 그냥 한 직원의 자리에 앉아서 사인을 했다”고 계약 당시를 떠올렸다.
계약이 빠르게 진행된데는 서로 간 뜻이 잘 통했던 것이 주효했다. 로비오 본사가 앵그리버드 브랜드화에 대한 의지가 컸고, 선우 역시 ‘롱런’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고 있었다. 그는 “로비오가 당장 낼 수 있는 수익보다 한국 시장에서의 브랜드관리를 목표로 하는 덕분에 선우도 로열티 부담 없이 브랜딩 전략을 구상하는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강 대표는 로비오가 특히 한국 시장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은 로비오가 미국에 이어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두번째 나라. 우리나라에서 앵그리버드는 아이폰의 경우 150만, 안드로이드는 300만에 달하는 다운로드를 기록, 각각 전세계 8위와 3위의 이용률을 보이고 있는데 이 점이 로비오를 놀라게 했다는 설명이다. 국내법상 문제로 오픈마켓에 게임 카테고리가 열려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이는 앵그리버드라는 브랜드의 흥행 파워를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로비오가 한국 시장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삼성, LG전자 등 글로벌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 대표에 따르면 로비오는 몇주 전 한국을 방문해 이들 제조사와 사업 제휴를 위한 만남을 가졌다. 강 대표는 “게임을 단말기에 탑재하는 방안 외에도 NFC칩을 활용한 프로모션도 계획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는 로비오가 노키아와 ‘앵그리버드 매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던 프로젝트와 유사한 것으로 NFC 지원 스마트폰 사용자끼리 게임 대전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이벤트는 단말기 간 접촉하는 방식 뿐 아니라 선우가 준비 중인 라이선스 상품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가령 해당 칩을 내장한 인형에 스마트폰을 가져다 대면 게임 내 새로운 스테이지가 열리거나 필살기 캐릭터가 등장하는 식이다. 그는 “이처럼 디지털 콘텐츠를 오프라인에 접목해 피지컬한 경험이 가능토록 로비오와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앵그리버드, 한국 캐릭터 시장 흐름 바꿀 것”
강 대표는 한국 캐릭터 시장을 “왜곡된 시장”이라고 표현했다. 몇몇 유아 캐릭터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현실을 빗댄 것이다. 그는 “유아 캐릭터 시장이 절대적으로 크다보니 헬로키티, 폴프랭크처럼 전세대를 아우르는 브랜드 캐릭터가 상대적으로 약세”라고 지적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앵그리버드가 고착화된 한국 캐릭터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했다. 강 대표는 “대부분 애니메이션에 베이스를 두는 캐릭터 시장에서 모바일 게임이라는 디지털 미디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캐릭터가 엄청난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눈여겨 봐야 한다”면서 “앵그리버드가 세계 무대는 물론 한국 캐릭터 시장에서도 새로운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외산 캐릭터가 오히려 국산 캐릭터를 위협하진 않을까 하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서도 그는 일축했다. “위축된 국내 캐릭터 시장 자체를 함께 키워 나가는 것이 현재로선 중요하다”는 것이다. 앵그리버드라는 빅 브랜드가 시장을 ‘붐업’시키는데 한몫할 것이라는 자신감도 내비쳤다.
그는 또 “이미 시중에 깔려있는 불법 제품 단속에 들어간 상태”라며 “복제 캐릭터에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의 정품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국내 대다수의 영세 캐릭터업체들이 ‘베끼기’가 만성화된 업계 문제점을 알고도 제때 대응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앵그리버드로 정품 시장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며 업계 생태계의 선순환에 기여하겠단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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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선우는 봉제 인형부터 문구팬시, 의류, IT악세사리, 게임방송 등 분야를 막론하고 다양한 파트너사와 활발하게 만나는 중이다. 이미 연내 선보일 라인업은 완성됐으며 이들 상품은 이달 중 서울랜드, 코엑스, 상암 월드컵 경기장 등에 숍인숍 형태로 입점된다. 앵그리버드 온라인 쇼핑몰도 내달 오픈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강 대표는 “20년간 쌓아온 선우만의 애니메이션 사업 노하우를 내세워 로비오사와 애니메이션 공동제작에 관해서도 매우 긍정적으로 협의 중”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키워드로 뜨고 있는 ‘소셜’이라는 가치를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경험으로 구현해 내고 싶다”며 “앵그리버드를 통해 소비자에게는 지속가능한 취미를, 업계에는 뉴미디어와 접목한 캐릭터 브랜드의 선례를 남기고 선우는 패밀리 엔터테인먼트사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