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널 그리지 않게 술에 취해 잠들면 꿈을 꾸죠
여성가족부가 청소년보호법(청보법)에 의거, 유해매체로 지정한 노래 가사말이다. 여성부가 문제 삼은 것은 청소년에게 유해 약물인 술에 관한 표현이었다.
해당 노래를 부른 가수들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여성부를 상대로 청소년유해매체물 결정통보 및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냈다. SM 측은 심의기준이 명확치 않다고 항의했다.
17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청소년 일탈과 비행에 대해 국가가 적절하게 대응키 위해 만들어진 '청보법'이 막강한 산업 규제 장치로 거듭나면서 관련 업계 반발이 커지고 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청보법은 문화적 표현물 전체에 대한 검열을 일관되게 할 수 있는 법적 장치라며 문화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적 명분이 청소년보호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말했다.
■수상한 여성부와 청보법…게임 심의도 '호시탐탐'
현행 청보법에는 여성부 장관이 유해매체를 지정할 권한이 명시돼 있다. 단, 해당 매체의 심의기구가 있을 경우 제외한다는 단서조항이 붙어 있다. 여성부가 지난 1996년 폐지된 음반 사전심의제를 꿰찰 수 있었던 이유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청보법 개정안은 대상과 내용, 권한 등의 전반적인 확대를 꾀하고 있다. 법의 적용 대상인 '정보통신망을 통한 정보'는 사실상 언론, 방송, 게임 등을 아우른다.
눈 여겨볼 점은 청보법이 해당 심의기관이 있는 게임까지도 유해매체로 지정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것이다.
여성부가 추진 중인 셧다운제(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게임 이용을 차단하는 내용)는 문화체육관광부와의 대의적 합의로 청보법에 담긴 상태다.
더욱이 여성부가 PC온라인게임 뿐 아니라 콘솔게임, 모바일게임 등까지 폭넓게 셧다운제를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불사르고 있어 청보법이 게임산업 전반에 세를 떨치는 규제 권력으로 번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관련 전문가들은 청보법이 게임 심의까지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해석을 내놨다.
박태순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오는 2012년 게임물등급위원회 업무가 민간에 이양될 예정인데 여성부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문화부가 음반 심의를 자율로 내줬다가 여성부에 뒤통수 맞은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게임 심의를 쉽게 내줘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문화부도 이 같은 내용을 인지하고 있다. 때문에 민간자율심의제에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 등에 대한 최소한의 법정 등급은 남기고, 이를 게임위에 맡기는 방안 등을 고심 중이다.
결국 게임 이용환경이 급변하면서 국가 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낡은 규제로 지적된 사전심의제가 완전히 뿌리 뽑힐 수 없는 여지가 남았다.
게임위 관계자는 사전심의는 불편하고 귀찮아도 최소한 '예측'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여성부의 막가파식 사후 심의보다 낫다며 자율심의제가 시행돼도 청보법 개정이 함께 이뤄지지 않는다면 게임은 더욱 무서운 검열에 부닥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엔 게임 중독 기금 법제화…결국 '수순 밟기'
여성부는 올해 청소년 그린벨트 조성 사업을 추진, 게임을 공공연히 '신종 유해물'로 못박고 청소년을 유해매체환경으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런 가운데 게임 중독 예방을 위해 게임 업계의 연간 수익 중 일부를 부담금으로 징수하는 청보법 개정안도 추진될 예정이다.
지난 16일 국회서 개최된 '인터넷중독 예방·치료 기금마련을 위한 기업의 역할' 토론회에서 한나라당 여성가족정책조정위원장 이정선 의원은 온라인 게임 중독 예방·치료 전문기관을 설립·운영하고 관련 사업체가 책임을 분담하는 내용의 법률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은 오는 2012년이면 12조원 규모의 산업이 될 것이라고 자랑하는 게임업계가 최소한 이익의 10% 이상을 기금으로 출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들 역시 게임 중독 기금을 조성하는 방법은 방송이나 담배와 마찬가지로 매출액의 일정부분을 원천징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담금제도는 수익자부담금을 원칙으로 하고 부과징수권은 사업주체인 국가로 설정하는 방안이 합리적이다는 의견을 냈다.
셧다운제를 담은 청보법 개정안 통과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부가 기금을 제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새로운 개정안을 추진하자 업계는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관련기사
- "뇌가 짐승인 아이들"…게임업계 발칵2011.03.17
- "게임중독, 게임 업계 수익으로 책임져라"2011.03.17
- 게임과몰입 기금, 업계 부담 법제화하나2011.03.17
- 게임 셧다운제…청소년 이야기 들어보셨나요?2011.03.17
특히 지난해 업계가 자발적으로 100억원 상당을 출연해 재단을 만들고 올 상반기 중 '게임과몰입예방치유센터'를 설립한다는 계획이어서 업계 자율 의지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업계 관계자는 여성부가 4월 국회서 셧다운제가 통과될 것으로 보고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것이라며 게임 규제의 목적이 처음부터 청소년 보호가 아닌 돈을 겨냥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