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빅뱅’
지난해부터 지겹도록 미디어업계를 들쑤신 말이다. 연말 종합편성·보도전문채널 사업자 선정과 함께 이 말은 곧 미디어에게 ‘생존경쟁’으로 통한다. 신문·방송의 겸영 허용과 종편사업자 등장으로 지상파의 영향력 약화 등의 얘기가 나오지만 ‘케이블의 위기’란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케이블업계를 대표하는 길종섭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장의 생각이 궁금했다. 종편·보도채널 선정 직후 그를 찾아가 만나봤다.
“그동안 케이블은 지상파의 종속물이란 시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지상파가 볼 때는 종편의 등장이 달갑지 않겠지만 케이블은 위상이 높아질 것입니다. 조·중·동과 매경 등 종편사업자가 케이블로 들어오는 것이니까요. 4개의 종편사업자를 선정하고 나니 승자의 저주란 말도 나오고 있지만 전 희망적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윈-윈 방안이 있습니다.”
윈-윈 이란다. 때문에 방송통신위원회가 종편사업자 선정 결과를 내놓자마자 가장 먼저 ‘환영’ 성명을 내놓았다. 그의 말에서 긍정적 톤이 느껴진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부의 종편 지원설 중 홈쇼핑이 사용 중인 ‘5·8·10·12번의 황금채널 배분’은 케이블업계의 최악의 시나리오다.
“케이블의 수익 중 홈쇼핑 비중이 높습니다. 규제당국이 케이블의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연번제나 강제적 편성요구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최근 종편사업자 대표들을 만나고 있는데 이분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자율적 협의를 통해 종편사업자들이 얼마든지 실력발휘를 할 수 있는 마당을 제공할 것입니다. 정부가 케이블의 사업권과 영업권은 지켜줄 것이라고 믿습니다.”■“종편 재송신 대가 제공 어렵다”
케이블업계의 고민은 종편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가장 골칫거리는 지상파와의 재송신 대가 협의다. 지난 연말 방통위의 중재로 ‘재송신 제도개선 전담반’이란 이름으로 지상파와 한 테이블에 앉았지만 지난 5일 지상파는 한국방송협회 방송통신융합특별위원회 이름으로 반대성명을 내고 테이블에서 자리를 뺏다. 케이블업계가 맘이 편할 리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만하다. 최근 지상파가 자리를 박차고 나간 것도 지상파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 보기 때문이다.
“방통위, 지상파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협상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1월말까지 제도개선이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의무재송신 대상과 공영·민영방송의 개념 정의입니다. 공영방송에 대한 큰 틀의 논의와 수신료 인상과도 맞물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제도개선 차원에서 채널변경에 대한 방통위의 승인 권한을 케이블업계에 환원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향후 전담반이 신속하고 효율적인 분쟁조정기구로써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오히려 그는 재송신 협상을 계기로 공영·민영방송에 대한 개념 정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목소리가 높아졌다. 종편에 대한 재송신 대가 생각도 깔끔하다. 종편 역시 의무재송신 대상이지만 지원정책 차원에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설이나, 언론시민단체가 의무재송신 규제를 철회 주장을 한다는 대목에서다.
“공영방송이 의무재송신 대상이기 때문에 수신료를 제공할 수 없는 것처럼, 종편도 의무재송신 채널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수신료 지불이 어렵습니다. 대원칙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제공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공정한 정책방안 절실할 때”
방송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길종섭 회장은 올해 미디어시장에 치열한 ‘무한경쟁’이 펼쳐질 것이란다. 종편의 등장으로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그림이지만 그의 눈빛은 뭔가 다른 것을 알고 있는 눈치다. 같은 바둑을 두면서도 더 많은 수를 꿰뚫고 있는 기사처럼. 이때부터 그의 입에서 ‘공정한 정책’이란 말의 빈도수도 높아졌다. 먼저 방송통신 융합에 대한 정책 불만을 쏟아냈다.
“통신사들은 인터넷과 이동전화의 지배력을 IPTV로 전이시키고 있습니다. 상품이 아니라 덤으로요. 이런 식으로는 방송업계의 선순환구조가 어렵습니다. 장벽을 허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쟁규제 차원에서 시장혼란은 막아야 합니다. 특히 KT는 스카이라이프를 자회사로 편입시키면서 전국 방송사업권을 2개나 갖고 있습니다. 케이블업계가 이동통신시장에 진입하려고 하지만 통신사가 도매대가를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경쟁구조가 달라집니다. 방통위가 강력한 행정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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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정책에 대한 그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특히 2013년 디지털 전환 대목에 이르러서는 그의 목소리가 한 층 높아졌다.
“정책적 벽이 여기저기서 허물어지다 보니 사업자들이 미래를 전망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올해는 큰 흐름에서 각종 규제가 완화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케이블업계도 종편의 등장으로 각 SO, PP가 무한경쟁하며 충돌하고, M&A가 요동칠 것입니다. 기술발전에 적응하는 것은 사업자 몫이지만 시장변화의 방향성을 갖고 사업자들이 미래가 보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정부의 몫입니다. 법과 제도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됩니다. 일례로 정부가 2013년 디지털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데 직접수신비율이 낮은 현 상황에서 지상파 위주의 디지털 전환은 의미가 없습니다. 디지털 전환 시범지역에서 오히려 케이블TV 시청가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디지털 전환 정책도 지상파 위주에서 벗어나 공정한 정책적 방안이 나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