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민간에서 기술적으로 상용화해 놓은 상태입니다. 이제 정부의 정책적 의지만 뒷받침 해주면 됩니다.”
지난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주소창에 한글만 입력하면 해당 홈페이지로 가는 신기한(?) 기술이 이슈가 됐다. 굳이 월드와이드웹(www)으로 시작되는 길고 복잡한 주소를 입력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 환경에서 한글 인터넷 주소는 소위 ‘아웃 오브 안중’이다. 어느 샌가부터 주소창에 한글을 입력해도 해당 홈페이지로 가는 경우가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당 한글 브랜드의 포털사이트 검색 결과 화면이 뜨는 ‘온라인 브랜드 가로채기’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원했던 결과를 얻지 못한 이용자들은 자연스럽게 떠나갔고 처음 한글인터넷주소를 제창한 넷피아만이 남아 외로운 싸움을 이어왔다. 이판정 넷피아 대표가 자국어 인터넷 주소를 정착시키기 위한 가장 큰 필요조건으로 정부의지를 꼽는 이유다. 모든 특허, 기술 등 기본적인 인프라가 세팅됐으나 표준화가 되지 못해 온라인 브랜드 가로채기에 촉발된 이용자 이탈을 막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박정희-정주영식 모델 필요해
“우리나라가 산업시대 이후 상용화해서 세계화 시킨 기술이 몇 개 없습니다. 이제 우리도 한 번 세계화된 기술을 보유해봐야죠. 세계화를 위해서는 기업만 아등바등해서는 힘듭니다. 정부의 정책이나 의지가 필수입니다.”
이 대표는 정부 정책 중요성의 대표적인 예로 박정희 대통령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들었다. 새마을운동 당시 박 대통령의 추진력과 기업들의 노력이 어우러져 그만한 결과를 낼 수 있었다는 논리다.
그는 “지난 6~70년대 노력의 결과 지금의 우리가 이만큼이나 먹고 산다”며 대통령의 의지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없었으면 현대그룹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30년 전 박 대통령의 의지 덕에 지금 우리가 먹고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는 또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할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할 때입니다. 지금 시점이 정부와 민간 기업의 협력이 이뤄질 적절한 시기에요.”
이 대표가 생각하는 미래 우리의 먹을거리는 인터넷 연계 사업이다. 3~40년 전에는 중공업이 대세였다면 지금 시대에는 현재에 맞는 산업이 있다는 것.
“기업인으로서의 시대정신을 많이 고민해봤어요. 우리가 직접 미래를 준비해나가자는 취지에서요. 제가 내린 결론은 인터넷 연계 사업을 통해 미래 수요를 미리 만들고 사용자들로 하여금 그 수요를 창출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온라인 브랜드 가로채기, 중소기업만 울상
이 대표가 도메인 주소를 자국어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지 13년이 지났다. 지나간 두 정부에도 자국어 도메인 사업을 제안했지만 순탄치는 않았다. 경찰에 사무실을 압수수색 당하고 각종 특허 무효 소송이 들어오는가 하면, 악화된 건강이 발목을 잡기도 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온라인 브랜드를 가로채기 당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브랜드 가로채기는 검색창이 아닌 주소창에 접속하고자하는 온라인브랜드를 입력했는데 검색리스트가 나오는 경우다.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입력했는데 막상 전화를 받은 것은 114 전화상담원인 것과 마찬가지다.
“온라인 브랜드를 가로채는 업체들이 버는 돈이 연간 1천억원 가까이 돼요. 이 돈들이 모두 중소업체들의 돈이죠. 그런데 정작 업체 측에서는 인식이 안 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나의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도 모르고 뺏기고 있는 것.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셈이죠.”
결국 가로채기의 피해는 중소업체가 고스란히 안게 된다. 온라인 브랜드를 등록한 후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몇 천만원대에 이르는 키워드 광고 등 마케팅 비용을 책정하게 된다는 것. 대기업의 경우 큰 부담이 없다고 해도 마케팅 비용이 넉넉지 못한 중소업체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가로채기 업체들이 온라인 브랜드를 키워드 광고업체에 연결시켜 주고 얻는 대가는 연간 약 1천억원에 이른다”며 “이 금액이 고스란히 온라인 브랜드를 뺏긴 기업들의 손실금액인 셈”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넷피아는 지난 7월부터 본격적으로 온라인 브랜드 지키기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자국어인터넷주소, 청년실업에도 도움
그는 자국어인터넷주소가 청년 실업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중소기업들이 키워드 광고 등에 쏟는 마케팅비를 줄이면 그만큼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자국어 주소는 비용이 저렴한 반면 접근율이 높아 전자상거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다.
“중소기업 웹사이트는 이용자들이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데 키워드 광고비로 1년에 1조를 냅니다. 1조면 10만명이 먹고 살 수 있는 돈이에요. 비싼 마케팅 광고비용을 모두 고용창출로 돌리면 지금보다는 훨씬 청년 실업 해소에 도움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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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지금이라도 ‘.한국’, ‘한글.한국’ 등 주소를 도입하겠다는 인터넷진흥원(KISA)의 움직임에 대해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국민들의 인터넷 사용 환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30년 후에 우리를 먹여 살릴 아이템 중 하나인 것은 확실합니다. 인터넷 영역에서의 주소 체계, 아주 쉬운 소통의 기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