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중심축인 IT산업에 위기론이 팽배하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 봤을 때 토목과 건설에 비해 전략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얘기도 있고, SW와 서비스로 대표되는 새로운 IT패러다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애플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위기론은 더욱 급물살을 타는 양상이다. 위기론의 핵심은 결국, 하드웨어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가 보여주는 환상적인 성적표에 취해 SW와 서비스 중심의 IT패러다임을 외면한다면 위기론은 하루아침에 현실로 둔갑, 한국을 덮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이렇게 말하고 있고, 공감하는 이들도 부쩍 늘었다. 그러나 하우투(How to)로 넘어가면 우울한 장면이 연출된다. 위기론은 계속 울려퍼지는데, 실질적인 대안은 별로 보이지가 않는다. 답답한 상황만 계속된다.
그런 만큼, IT패러다임에 걸맞은 변화를 위한 대안과 비전이 절실해졌다. 미사여구로 가득한 청사진과 비전에는 지칠대로 지쳤다. 허무맹랑하지 않고 실체가 있으면서도, 중장기적인 방향을 담은 비전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공감할 수 있는 비전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많은 반대 의견들을 설득하고, 이해 관계자들로부터 참여와 지지를 이끌어내고, 이를 기반으로 모든 역량을 결집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담보돼야만 제대로 된 비전이 나올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작은 일에도 이해관계들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세상인데, 설득력있는 비전을 만드는게 과연 현실성이 있는 일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현직보다는 80~90년대 IT혁명을 주도했던 원로들이 나서주는게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특히 지금은 공직에서 물러나 있지만 80~90년대 굵직굵직한 대형 IT프로젝트를 주도, 한국IT의 대부로 통하는 오명 건국대학교 총장이라면 한국IT 산업에 뭔가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한다.
걸핏하면 '안된다', '안된다'하는 회의론에 맞서가면서 전전자교환기(TDX) 국산화, 4M D램 개발, CDMA 신화를 이끌었던 오 총장이라면 과거를 기반으로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말할 콘텐츠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을까? 그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과거를 부정하면 미래를 만들 수 없다
오명 총장은 웬만해선 남을 비판하지 않기로 정평이 나 있다. 본인 앞에서 남을 욕하는 사람도 불편해 한다. 비판보다는 칭찬이 우선이다. 그에게 칭찬은 비판보다 항상 강하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 만큼, 그에게 한국의 IT산업 위기에 대해 묻는다고 해서 직설적이고 도발적인 비판이 나올거라 기대하기는 힘들다. 한두마디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럼에도 그는 IT산업에 대해 할말은 무척 많아 보였다. 특히 정부 역할론에 대해서는 과감한 플레이를 주문하는 표정이었다. 아쉬움이 풍겼다.
오 총장이 방송통신위원회와 정보통신부 전신인 체신부에서 차관과 장관으로 있던 시절, 한국에선 통신혁명이 펼쳐졌다.
전전자교환기(TDX) 국산화로 전화 보급이 빠르게 늘어났고, 쉽지 않을 것이란 세간의 예상을 뒤집고 4MB D램을 개발하는 이변(?)도 연출됐다. CDMA 프로젝트까지 시작, 이동통신 대중화에 기틀도 마련됐다. 이를 위해 당시 정부는 대단한 추진력을 보여줬고 민간 기업들도 적극적인 협력모드로 나왔다.
이 시기, 정부측 책임자였던 오명 총장은 복잡한 각종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지휘자로 활약했고 정부와 민간의 아름다운 화음을 이끌어냈다. 결과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과거의 성공 법칙이 지금에 와서도 통한다고 볼 수는 없다. 신자유주의 확산과 함께 정부 역할은 점점 줄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정부는 가만히 있어주는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극단적인 시장 중심주의도 엿보인다.이에 대해 오 총장은 말을 아낀다. 그래도 뉘앙스란게 있다. 그는 과거의 성공 모델은 지금도 유효하다는 입장인 것 같다. 정부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부 역할 자체가 필요없는게 아니라, 할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했다.
장관이 바뀌면 일관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나라는 10년, 20년하는 장관들도 있는데, 우리는 맥이 너무 빨리 끊어지죠. 반짝은 잘하는 것처럼 보여도 지내놓고 보면 남은게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새로운 장관이 와서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내고 지시도 하는데, 부처 국장들은 프로들입니다. 30년 그거한 사람들이에요. 장관이 뭘 시키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금방 파악합니다. 1~2년후에 장관이 떠날 것을 알고 있고, 국회가서 깨질것도 아는데, 열심히 하려는 생각이 들겠어요. 전혀 아니에요.
-해법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조직의 수장이 새로 부임하면 기존에 있던 전통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전임자가 하던 것을 존중해야 하는데, 옛날거라고 쓸어버리고 새로 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발전은 전임자가 해놓은 성과에 자기것을 조금씩 더해가야 가능합니다. 전임자가 했던 것을 무시하는 사람일수록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공직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자리를 거쳤는데, 스스로는 어떠셨나요?
제가 체신부 시절 마련했던 정책들이 2000년대까지 갔어요. 조직의 전통을 존중해주려고 노력해던 결과라고 봐요. 저는 새로운 조직을 맡으면 거기서 능력있는 사람을 그대로 썼어요. 내사람이라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체신부에 8년 있었는데, 누가 오명 사람인지 얘기할 수가 없다는 말까지 들었어요.(웃음) 일은 국장 이하 실무진들이 하는 겁니다. 저는 능력있는 국장을 임명하면 되는 겁니다. 국장들이 자기 아이디어를 갖고 열심히 뛸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됩니다. 국장이 혼자서 못하겠다고 하면 도와주고, 성공하면 칭찬해주고, 훈장도 주고 하는거죠. 이렇게 하는데, 정책이 바뀔리가 있겠습니까? 국장들이 직접한건데, 장관이 바뀐다고 달라질게 없죠.
-정부가 주도적으로 산업을 프로모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해 관계가 너무 복잡하잖아요?
그런 면이 있죠. 이제 정부 당국자들에게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리더십이 요구됩니다. 강하게 약하게, 빠르게 느리게를 지휘자가 콘트롤할 수 있어야 해요.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악기를 연주하지 않지만 모든 악기를 다 파악하고 있습니다. 윗사람들이 아랫 사람을 간섭은 하지 안되 그들이 하는 일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유능한 리더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개인의 자질도 필요하지만 많은 시간과 경험이 요구됩니다. 이런 리더가 나와줘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빨리 바뀌다보니 이런 리더가 나올 수 있는 기반이 없는 상황이에요.
■지금보다 과감한 IT정책 필요하다
그래도 21세기 들어 정부 IT정책에 대한 시선은 까칠하다. 갈지자 행보를 보인 탓인지 이제 정부와 민간 협력 프로젝트는 수명을 다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와이브로와 DMB,IPTV 등 최근 정부가 나서서 한 프로젝트들도 시장안착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모바일 시대에도 정부는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눈치지만 신뢰를 얻기에는 중량감이 떨어진다.이에 대해 오명 총장은 정부가 좀더 과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의미로 들린다.
80년대 일어난 한국의 통신 혁명은 전세계 학자들이 관심을 갖는 모델입니다. 정부는 간섭하면 안된다는 얘기도 많은데, 정부가 관여해서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에요. TDX를 예로 들어볼께요. 국산화를 위해 당시로선 상상도 하기 힘든 1천억원 가까운 연구비를 투입했습니다. 연구비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시절에 1천억을 투입한거에요.
대단했습니다. 모든 연구원들이 'TDX 혈서'로 불리는 각서를 쓰고 시작할 정도였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교환기를 만들었어요. 이는 비용을 크게 낮추는 효과로 이어졌습니다. 1천억 투자해서 1조원 넘게 절약했어요. R&D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겁니다. 이것은 국산 행정전산망, CDMA 프로젝트에서도 이어졌어요. 국가가 비용을 투입하고 민간 기업들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모델은 지금도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젊은 독자들은 CDMA까지는 알겠는데 TDX는 뭐고 국산 행망은 또 뭐냐?고 묻고 싶을 수 있겠다. 기가(G)도 만만해 보이는 시대에, 4M램은 마치 애들 장난같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80년대를 공유하는 이들에게 TDX나 4M 램은 아직도 기분이 짜릿해지는 기억들이다.
오명 총장 역시 그때를 떠올리면 엔돌핀이 쏟아지는 듯 하다. 그에게 80년대 통신 혁명, 특히 TDX 국산화는 역사적인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설득해 이뤄낸 쾌거였고, 이후 각종 국가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컬러TV 국내 시판 허용과 데이콤을 민간 기업 형태로 설립한 것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이 의지를 갖고 추진한 국가 정책이 시장 활성화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였다.
박사가 되고 좋은 학자가 될 줄 알았는데 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서 차출돼 전자공업 육성책을 만들게 됐어요. 산업을 들여다보니 한국 가전 업체들은 컬러TV를 만들 능력이 있었지만, 시판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방송국들도 컬러 방송을 할 수 있는 장비가 있었음에도 할 수가 없었어요.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는 박정희 대통령의 철학 때문이었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컬러TV를 넘어 VCR로 가고 있는데, 우리는 흑백에서 멈춰있었고 가전 업체들은 부도 일보직전이었습니다. 컬러TV 국내 시판을 허용하지 않아 전자 산업 전체의 경쟁력이 뒤쳐지고 있다고 국보위를 설득했어요. 결국 80년 5월 '가전 업체들의 앞잡이'라는 말을 들어가면서 컬러TV 시판을 관철시켰어요. 죽어가던 전자산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데이터통신으로 수익을 내기가 어려운 시절이었던 만큼, 80년대 초반 데이콤을 민간 기업으로 만든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요.
만들어도 당장 뭐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데이터통신이 늘어난다고 해도 전화와 비교할 수준은 안됐어요. 기업들도 출자를 망설였죠. 조금 지나면 가치있는 회사가 될 것이니 믿고 투자해달라고 했지만 부정적인 시선이 많았습니다. 저를 비방하는 얘기들도 흘러나왔어요. 그러나 개의치 않고 밀어부쳤습니다. 결국 26개 기업으로부터 출자를 이끌어냈어요. 정책 드라이브를 통해 데이터통신을 주력으로 하는 민간 회사로 출범시킨 것은 일본보다도 앞선 사례입니다. 이로인해 우수한 기술자들을 조기에 확보할수 있었고, 결국 데이터통신 산업 조기활성화의 기틀을 마련할수 있었습니다.
IT에 대한 미래로 주제를 넘긴다. 오명 총장은 앞으로 IT의 전략적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IT의 전략적 가치가 약해졌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는 일각의 인식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IT는 국가 경제적으로 여전히 중요합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IT의 경제발전 기여도는 40%에 육박하고 있어요. 무역 흑자 비중도 IT가 절대적입니다. IT는 경제적 효과 외에 민주화에도 기여했어요. 정부 정보가 공개되면서 세상이 많이 투명해졌습니다. 일각에서 IT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도 있는데, IT 없이 BT,NT는 물론 요즘 유행하는 타산업과의 융합모델 역시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모든 것이 IT를 기반으로 합니다. IT가 잘되야 융합도 가능해집니다. IT라고 하는 건강한 나무 줄기에 융합이란 열매가 열리는거에요. 그런 만큼 줄기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앞으로 한국은 50년, 100년을 IT로 먹고 살아갈 겁니다.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고 있잖아요. 이 부분에서도 국가의 역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저 개인적으로는 크게 비관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법대나 상대를 나와야 사장이 될 수 있었는데 세상이 바뀌어서 이제는 기술 트렌드 모르면 사장 못한다는 얘기도 많습니다. 실제로 최근 조사를 보면 신규로 임용된 30대 그룹 임원들의 60%가 이공계 출신이에요. 이처럼 이공계 출신들이 중역이 되고, 그러면 이쪽으로 인력이 몰리겠죠. 이를 대비해 대학에서 이공계 학생들에게 경영, 경제, 리더십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요.
오명 총장은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을 쓰고 있으며, 최근에는 애플 아이패드 사용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새로운 기술을 흡수하는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이런 그에게 스마트폰 열풍이 한국에 던진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해외 제품들이 강세를 보여 당장 위협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스마트폰은 우니라라 IT시장 발전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봐요. 기업과 소비자 간 관계를 바꾸는데도 기여할 것 같습니다. 국내 기업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될 거에요.
■역대 최장수 차관의 부드러운 카리스마
오명이 누구냐고 물으면 정말 많은 대답이 쏟아지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오명이란 이름이 박힌 명함만 해도 수십장은 될 것 같다. 그만큼 그는 많은 자리를 거쳤다.
공직만 놓고보면 대통령 경제과학비서관, 체신부 차관, 체신부 장관, 대전세계박람회 정부 대표 겸 조직위원장, 교통부 장관, 건설교통부 장관,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을 역임했다. 체신부 차관 자리는 무려 6년 2개월이나 지켰다. 최장수 차관이다. 오명 총장은 역대 대통령들의 러브콜도 참 많이 받았다. 전두환 대통령을 비롯해 노태우,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일했고 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교육부총리를 제의 받기도 했다.
5공, 6공, 문민정부, 참여정부를 모두 거쳤다는 것은 그가 다양한 정치세력으로부터 모두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쉽지 않은 스타일이다.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 관료들은 배제되는게 보통인데, 그는 예외였다. 이쪽도 저쪽도 그를 찾았다.
말하기 참 좋은 소재가 아닐 수 없다. 오 총장도 이 얘기를 신물이 날 만큼 들었던 모양이다.
공무원은 정권과는 무관합니다. 국가발전의 소명의식을 갖고 국민을 보고 일하는거죠. 그래서 외국에는 10년이 넘게 일하는 장관들도 많습니다.
정치와는 거리를 둬왔다는 얘기다. 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테크노크라트를 지향하는 정통 관료로 남기를 희망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공무원 후배들에게 항상 가장 닮고 싶은 선배였다. 과거 그와 함께 일했던 공무원들중에는 지금도 롤모델이 누구냐고 물으면 오 총장이라고 대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랫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해요. 아랫사람들의 생각은 보통 국민의 생각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시절엔 전혀 연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공무원 여론 조사 결과, 제가 후배들의 지지를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조사돼, 입각을 제안받기도 했어요. 저는 아랫사람들의 여론 덕분에 여러 정부에서 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종합하면 오명 총장은 앞에서 나를 따르라하는 불도저형 보다는 협력을 강조하는 화합협 리더에 가깝다. 그의 경력에 초대 무슨무슨 자리를 지냈다는 얘기가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건사고가 많이 터지겠다 싶은 일을 그에게 맡기면 원만하게 풀릴것이란 믿음을 심어줬던 것이다.
오명 총장의 성향은 '외유내강형'으로 분류된다.
외모는 학자 타입이다. 키도, 덩치도 비교적 작은 편이다. 그래서다. 그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것은 얼핏보면 넌센스처럼 느껴진다. 스스로 말하지 않는한 그가 육사를 나왔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유는 별로 없다.
그가 육사에 간 것은 군인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리더를 꿈꿔서였다. 경기고등학교 시절 교장 선생님이 했던 '국가 지도자가 되고 싶으면 육사를 가라'는 얘기에 필이 꽂혀 선택하게 됐다.
우연인듯 보이는 육사행은 지금 돌아봐도 잘한 결정이었다. 스스로도 인정하는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고등학교때만 해도 성격이 독선적이었는데, 육사 생활을 통해 조직의 일원으로 희생하는 법을 배웠고 다른이들과 협력하는 노하우도 터득했다는 것이다. 오명판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진원지는 육사였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위력은 대단했다. 81년 청와대에 있다가 체신부 차관으로 발탁된 뒤 무려 8년여간 체신부에서 일하면서 한국 정보통신 혁명을 주도할 수 있었다.
김정수 전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저서 '전환시대의 행정가; 한국형 지도자론'에서 오명 총장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5공화국 당시, 체신부를 되돌아보면, 한가지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즉 80년대 거의 대부분의 기간동안 한 사람의 리더가, 차관 및 장관으로 꾸준히 체신부를 지휘했었다는 점이다. 애당초 체신부가 통신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혁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게 된 것도, 사실 그 리더가 체신부 차관으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그의 체신부 재임기간은 약 8년 가까이 되었는데, 이 기간중에, 우리나라 정보톹신 정책의 거의 모든 기반이 확립되었다.
오명 총장이 거듭 강조하는 정책의 일관성과도 무관치 않은 대목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과거 정책이 사라지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역할이 먹혀들기 위한 필요 조건이 될 수 있다. 정책이 수시로 바뀌는 환경에서는 탁상과 전시 행정이 나오게 될 뿐이다. 탁상과 전시 행정 갖고 정부가 IT시장에서 설득력을 갖기는 힘들다. 가만 있는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핀잔만 들을 것이다.
오명 총장이 IT정책 리더로 활약했던 80년대, 정부는 과감했다. 확실한 리더십을 갖고 움직였다. 웬만한 반대 의견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반대 의견을 묵살한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설득했고 협력을 이끌어냈다. 산업 프로모션의 무게중심이 기업으로 넘어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다. 정부가 과감해지기가 만만치 않은 분위기다.
물론 정부 없이도 산업이 잘 굴러간다면 이 기회에 정부는 빠지는게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정부를 배제하는 것은 극단적인 논리일 뿐이다. 정부가 없다면 시장은 위험이 없는 선택으로만 도배될 것이다.
TDX나 CDMA처럼 리스크가 큰 IT프로젝트를 과연 주가에 신경쓰는 기업들이 앞장서서 주도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외국에서 라이센스 받아다가 안전하고 속편하게 장사하려할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은 그런대로 버티겠지만 불공정 거래속에 중소기업들은 그로기 상태에 몰릴 수 있다. 국가의 역할이 계속 요구되는 이유다.
단, 조건이 있다. 정부가 좀더 유능해야 한다. 보다 일관성이 있고 투명해져야 한다. 그래서 민간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정책이 왔다갔다 하면, 정부는 일를 망치는 주범이 될 수 있다.
그래서다. 오명 총장의 정부 역할론을 흘려듣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직에 있는 실무자들이 다양한 프로젝트를 열정과 일관성을 갖고 추진할 수 있도록 밀어주는 프로세스를 좀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이것은 정부가 존재의 근거를 찾기위한 확실한 승부수가 될 것이다.
지금 정부 IT정책이 몇점인지에 대해서 오명 총장은 대답하지 않는다. 잘한다, 못한다, 얘기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항상 30년 후를 고민하는 그가 계속해서 IT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까? 기자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오명 총장이 IT에 대해 한번 정도는 다시 포효할 것 같다.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