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에 침바르지마" 어느 뮤턴트의 대담한 도전…황중연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상근 부회장

[김경묵의 인물탐구-11]

일반입력 :2010/03/28 17:16    수정: 2010/07/29 18:07

대담=김경묵 지디넷코리아 편집국장 정리=김태정기자

사용자들을 중심으로하는 정책을 강화하겠습니다.

정부나 기업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면 그려려니 하겠지만 이익단체인 협회가 느닷없이(?) 사용자를 외치고 나섰다면 따져묻지 않을 수 없다.

고정관념으로 보면 한국에서 기업들이 뭉친 협회는 회원사 이익을 확실하게 대변해야 한다. 손해볼일이 생길라치면 대통령앞에서도 할말을 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수준은 아니더라도 회원사와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사용자 이익을 슬로건으로 내거는 것은 협회 몫이 아니다. DNA 구조상 그렇게 할 수 없는게 협회다.

그래도 이 협회가 계속해서 '사용자', '사용자'를 부르짖더니 결국 행동에 옮겨버렸다면? 대한민국 협회의 세계에 뮤턴트(돌연변이)가 등장했다는 평가를 해줘야할 것이다.

황중연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KAIT) 상근 부회장은 뮤턴트다. 그는 지난해 11월 취임과 함께 '고객과 함께하겠다'고 외쳤고 이를 반영한 정책도 내놓기 시작했다. 사용자 이익이 결국은 회원사 이익이라는 도발적인 수사학도 던졌다.

'거룩한 얘기 아니냐?'는 까칠한 질문에는 결과를 보라며 받아친다. 직원들과도 얘기할때도 동사무소같은 협회를 만들자면서 끊임없이 사용자를 강조한다. 요즘 유행어로 떠오른 사용자 경험(UX)을 적용하면, UX 혁신을 통해 협회에 대한 고정관념의 파괴를 꾀한다고 봐도 좋겠다.

■이용자 외면해선 안된다 협회2.0을 꿈꾸며

협회 DNA 개조를 꿈꾸는 황중연 부회장의 변화 프로젝트는 최근들어 가시적인 결과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 KAIT는 최근 ‘방송통신이용자보호센터’를 열었다. 이용자들에게 새로운 방송통신 정보를 제공해 정보 활용 역량을 강화한다는 것이 목적이다. 시장 모니터링과 피해사례 분석도 함께 한다.

이를 위해 황 부회장은 각계 전문가로 정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방송통신사업자 실무협의회 연동해 다양한 이용자 보호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중요한 것은 복잡하게 변하는 방송환경을 이용자에게 자세히 알린다는 ‘소통’ 의지다.

“방송통신이 복잡해지는 속도가 엄청 빨라졌습니다. 이용자들이 이를 따라 오는 데에는 무리가 있어요. 혹 잘못된 지식을 갖게 되면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모르면 잘 못쓰는 것은 둘째로 치고 손해가 온다는 뜻입니다. 이를 막는게 협회의 과업중 하나입니다.”

지난해말 방송통신위원회와 구축한 ‘휴면 이동전화 확인 시스템’도 이용자 친화적이다. 본인이 모르는 요금이 납부되는 피해를 방지한다는 내용으로 인기를 끄는 중이다.

방통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7월말 기준으로 통신3사에서 3개월 이상 이용실적이 없는 이동전화가 무려 11만7천건. 이 중 다수는 ‘휴면 이동전화’에 해당할 것으로 황 부회장은 예상했다.

황 부회장에게 사용자는 어떤 의미일까? KAIT가 시민단체가 아닌 이상 그에게 사용자는 회원사 이익을 앞서는 존재는 아닐 것이다. 회원사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사용자 중심 정책을 들고 나왔을 것이란 얘기다.

“협회가 스스로 할 일을 찾지 않으면 이용자들에게 외면당합니다. 이는 직원들에게도 수시로 강조하는 말입니다. 물론 쉽지는 않죠. 그래서 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협회가 가까운 동사무소만큼이나 이용자들에게 편한 곳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용자 중심의 정책은 회원사간 협력 강화와도 무관치 않다.

회원사간 협력은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정보통신산업이 어떤 곳인가? 업체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크고 작은 신경전이 끊임 없이 벌어지는 한국경제의 격전지다. KAIT도 마찬가지다. 협회가 이렇게 하자고 하면 알겠습니다 하는 기업들이 모인 단체가 아니다. SK텔레콤, LG전자, 삼성전자, KT 등 할말은 하는 힘있는 회원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협회는 정부입장까지 전달해야 하기에 황 부회장은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그가 KAIT 상근 부회장을 맡았다고 하자 ‘어려운 시기에 어려운 역할을 맡았다’라는 얘기들이 쏟아졌던 이유다. 이에 대해 황 부회장은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30년 정보통신 공무원 경험을 앞세워 몸을 낮추고 소통하는 전술을 꺼내들었다.

“회원사와 정부기관을 수시로 방문하며 얘기를 듣고 있어요. 요구사항이 엄청나게 나옵니다. 그중에는 들어주기 힘든 것도 솔직히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협회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조율과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자처해야 하는 곳입니다. 여러 이해관계 문제 중 시간이 필요한 것은 더 진중하게 생각하고 장기적 수익확보를 위해 통신망 고도화 추진에 협조해달라는 설득이 힘을 발휘한 것으로 보입니다. 차세대 인프라 구축에 쓴 힘이 성공으로 연결된 것은 다들 경험으로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이에 따라 방송통신 산업정보를 소프트웨어와 기기, 서비스 등 각종 분야로 구분해 맞춤 지원하겠다 구체적 전략들도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오는 2012년까지 방송통신전문단체의 다른 말이 정보통신산업협회로 확실히 여겨지게 하겠다는 것이 황 부회장의 포부다.

융합도 중요한 과제다. 통신을 중심으로한 융합, 그래서 융합이 통신 시장에 새로운 기회가 되는 방향을 제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통합이란 이름으로 이종산업이 서로 녹아들어가는 것은 대세입니다. 다만 녹아들어간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못한다면 밀려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통합을 기회이면서 위기라고 생각하는 이유죠. 회원사 사람들을 만나면 꼭 이 얘기를 합니다.”

CEO 스타일로 중무장한 혁신 마니아

고위 공무원 출신이 협회에 와서 몸을 낮추고 소통하면서 사용자들의 지지 기반까지 확보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프로젝트는 아니다. 그러나 황 부회장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나름 기대하는 심리가 엿보인다. 30년 넘게 공직에 몸담았지만 스타일은 오히려 기업 CEO형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전략 상품 만들기와 발로 뛰는 저돌적 마케팅, 눈에 보이는 경영실적 등이 공무원 시절, 황 부회장을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로 통했다.

이 같은 이미지는 우정사업본부장 시절 굳어졌다. 황 부회장은 지난 2005년 4월 우정사업본부장에 취임하자마자 혁신을 시도했다. 우표에 침을 발라 편지 보내는 곳으로 여겨지던 우체국을 ‘첨단 유비쿼터스’로 탈바꿈 시킨 것. 이른바 ‘u-POST 339전략’의 시작이었다.

소포에 전자태그(RFID)가 붙기 시작했고, 첨단 IT 기술을 결집한 물류시스템이 전국 우편물 이동로를 관리했다. 우체국택배와 국제특송(EMS)도 이 같은 IT 기술을 기반으로 에이스가 됐다.

“처음에는 반대의견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잘 해왔는데 무슨 어울리지도 않는 유비쿼터스를 가져다 붙이냐는 말이었죠. ‘오버액션’이라는 소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IT 접목 없이는 팔리는 서비스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계속 밀었죠. 다행이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왔고, 반대하던 사람들도 마음을 많이 열었습니다.”

당시 황 부회장의 수치상 실적을 ‘긍정적 결과’라는 말 정도로는 표현하기 부족하다. 취임 첫해 경영수지 674억원 흑자를 달성한 것. 이듬해에는 대한민국경영품질대상 최고경영자상을 받았다. ‘혁신의 전도사’, ‘흑자 제조기’ 등의 별칭은 이 때 생겨났다.

그래서일까?

그는 많은 벤처인들 사이에서도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꼽힌다. 과거에도 각종 경영혁신 주제 강의의 단골 강사였다. 황 부회장 역시 벤처 지지자다. 기회가 있을때마다 벤처가 다시 활성화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확실히 조짐이 보여요. 요즘 들어 기존 고정모임 외에도 젊은 벤처인들을 많이 만나는데 새 사업 구상얘기가 부쩍 늘었습니다. 아무래도 통신 바닥에서 생태계 확대를 위한 여러 전략이 나오니 마음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앱스토어도 그 중 하나겠죠. 협회도 콘텐츠 활성화를 지원하며 벤처붐 재현에 일조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벤처붐이 일어난다 해도 또 실패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했다. 실패 재현을 막기 위해 지난날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췄다. 생각 같아서는 직접 나서 진두지휘하고 싶을 정도로 불안 불안한 눈치다.

“1990년대 일어났던 벤처붐은 이제 없어요. 달콤한 춘몽이었습니다. 그때 종종 만났지만 이제는 어디서 뭘 하는지 추억이 된 벤처인들도 수두룩해요. 당근 줄께 무조건 일해라 식의 전략은 제대로 실패했죠. 이제는 무조건적 창업지원보다 벤처의 자생력을 길러주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초반에 반짝하는 물량공세식 지원은 독이 되는 것을 여러 번 봤죠. 대신 벤처가 만든 물건이 잘 유통될 수 있도록 혈맥을 뚫어주는 역할을 정부가 해야 합니다. 지난 벤처붐에서는 이것이 부족해 많은 명품들이 사장됐어요.”

존경받는 보스가 살아가는 방법

정보통신부 공무원 시절 그는 후배들 사이에서 존경하는 선배로 불렸다. '카리스마 있다'는 몰라도 '본받을만 하다', '배우고 싶은 선배'란 이미지는 쉽게 만들어지는게 아니다.

가식이 없어야 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인드도 있어야 한다. 말은 쉬워도 행하기는 어려운 덕목들이다.

황 부회장은 가식이 없고 배려의 마인드는 갖춘 인물에 가까울까? 직접 대답해달라고 하려니 좀 민망해진다. 물어봐도 겸손을 키워드로한 뻔한 대답이 나올 것 같다. 그래도 정통부를 출입했던 입장에서 그가 후배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선배였는지는 몰라도 비교적 좋아하는 사람으로 분류됐다는 것은 알려주고 싶다. 기자의 경험담 정도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정통부 인사를 둘러싼 일화도 소개할까 한다.

지난 2000년의 일이다. 안병엽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실에 긴장감이 돌았다. 행동대장 격인 국장급 인사 논의가 조심스레 진행 중이었다. 후보는 많았지만 자리는 3개뿐이었다. 공을 세운 지방체신청장들을 끌어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적잖았다. 장관의 고민도 깊어져갔다.

정통부 전파방송관리국장으로 있던 황 부회장은 안 장관을 찾아가 이렇게 얘기한다. 부산체신청장으로 가겠습니다.

장관은 물론 다른 국장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통부 전체 분위기가 그랬다. 몇개월전 국제협력활동을 강화했다는 것을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까지 받은 사람이 갑자기 폭탄선언을 한 탓이었다.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황 국장은 “안 장관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한 고육책”이라고 설명했다.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선도 나왔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다.

이듬해 황 국장은 약속대로 부산체신청장으로 갔고, 적잖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안보면 잊혀진다더니 ‘황중연은 광화문에서 잊혀졌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결과적으론 상투적인 시나리오였다.

그는 2003년 서울체신청장을 맡더니 2005년에는 보란듯이 우정사업본부장에 올랐다. 이후 한국정보보호진흥원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상근 부회장을 맡았다. 황 부회장의 사회 경력은 대충 이렇게 요약된다.

궁금해진다. 앞서 황 부회장은 기업 CEO 스타일이라고 했다. 변화와 새로움을 즐긴다. 그렇데 왜 공무원이 됐지? 기업에서 뛰는게 체질에 맞았을텐데...

아버지가 교육공무원이셨어요. 어릴때만 해도 제가 공무원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큰 관심이 없었어요. 사실은 여러 사람들에게 읽힐만한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간 뒤 주위에서 행정고시 최연소 합격자가 나오자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공무원도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밀려들었고 이는 나에게 감동을 줬던 글과 같은 공직 생활을 해보자는 결심으로 이어졌다. 결국 그는 대학 4학년때 행정고시 20회에 합격했다. 30년 공무원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사람 뽑는데 있어서는 까다로운 기준을 고집한다. 가급적 예외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조직이든, 사람이 경쟁력이라는 판단에서다.

“신년사에서 ‘화이부동’을 강조했습니다. 남과 사이좋게 지내되 무조건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뜻인데 전 조금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협회에서는 통합하면서도 독창성을 잃지 말라는 뜻으로 씁니다. 과거에는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자주 써서 이 얘기를 했는데 요즘은 전체 모임을 갖는 것이 더 좋아졌습니다. 사람을 뽑을 때는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평가하고, 자필 이력서를 받습니다. 명필이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들인 정성을 보는 것이죠.”

황 부회장의 롤모델은 오명 건국대 총장. 황 부회장은 오명 총장에 체신부 차관이던 시절 비서관이었다.

“그분은 과거나 지금이나 항상 30년 뒤를 얘기합니다. 지금은 100세가 되실 때 얘기가 한창이시죠.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얼마나 노력을 필요로 하겠습니까. 이를 본받고 싶은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죠.”

뮤턴트는 생물학적으로 자연의 진화를 주도했다. 사회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남들과 다른 사고 방식, 접근 방법 그리고 행동 양식을 갖춘 뮤턴트들이 인류역사의 진화를 이끌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회는 점점 뮤턴트들이 필요한 구조로 진화하고 있다. 고인물이 되지 않도록 해주는 뮤턴트들은 사회에 다양성을 심어주는 혁신의 주역들이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한가? 정부나 기업이나 튀면 정맞고 왕따까지 당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이래서는 뮤턴트들이 나올 수 없다. 실제 뮤턴트라고 해도 뮤턴트가 아닌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래야 버틸 수 있다.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 뮤턴트를 억압하는 문화다.

그래서다. 황 부회장의 변신 프로젝트를 '튈려고 그런다'식으로 바라보는 유치한 시선은 접어줬으면 좋겠다. IT업계에서 각종 협회의 역할이 부족했다는 것에 대해 할만큼 했다고 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협회도 변화할때가 된것이다. 변화는 또 뮤턴트식 접근이 요구된다. 하던대로 하는 변화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얼마못가 제자리를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황 부회장의 환골탈태 프로젝트는 아직 진행중이다. 뭔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변화는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황 부회장은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그럴 것도 같지만 협회라는 DNA를 생각하니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관심을 가질게 별로 없어 보이던 IT협회라는 동네에도 흥미로운 관전포인트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