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대에 다시선 이건희 리더십

기자수첩입력 :2010/03/24 18:19    수정: 2010/03/24 18:23

황치규 기자

이건희 회장의 경영복귀는 예정된 수순이면서도 기습적인(?) 컴백이었다. 3월 복귀는 시간이 좀더 걸릴 것이란 주변의 관측을 뒤집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빨랐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건희 회장은 위기론을 명분으로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이 회장이 없을때도 삼성전자는 숫자만 놓고보면 경쟁 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렸다.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으로 지난 해 사상 최대인 매출 136조2천900억원, 영업이익 10조9천200억원을 거둬들였다. 휴대폰, TV 등 주력 상품도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했다.

올해 전망도 그리 나쁘지 않다. 세계 경기가 올해 회복국면에 접어들면서 삼성전자는 올해 역대 최대 이익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매출만 놓고보면 IT업계에서 휴렛패커드(HP)를 추월할 가능성도 높다.현재로선 삼성이 위기에 처했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장기적인 측면에서 보면 삼성전자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게 사실이다. '품질의 도요타'가 리콜사태 한방에 흔들거리고 휴대폰 시장에서 '게임의 룰'을 바꾼 애플과 구글이 삼성의 아성인 TV시장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삼성과는 DNA 자체가 다른 애플과 구글이 스마트폰에 이어 텔레비전 시장에서도 판을 흔들 경우 삼성전자도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모바일과 디지털 가전은 전세계 공룡기업들이 총출동한 IT업계 최대 격전지다. 이곳에서 주도권을 내줄 경우 삼성도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삼성은 그동안 하드웨어 중심의 성장 전략을 추진해왔다. 이같은 방식으로는 SW중심으로 돌아가는 모바일 시장 환경에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삼성도 SW와 사용자 경험(UX)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들어 삼성은 모바일 SW플랫폼을 강화하고 있지만 아직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평가. SW로 혁신을 이루기는 조직 구조가 하드웨어 중심적이란 얘기도 들린다. 조직 문화도 수직적이어서 SW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하드웨어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삼성의 체질은 여전히 하드웨어에 쏠려 있는 것이다.변화하지 않으면 삼성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보는 이유중 하나다.

삼성측은 이 회장 복귀를 발표하며 도요타의 위기를 언급했다. GM을 넘어 세계 자동차 시장을 호령했던 천하의 도요타가 하루아침에 휘청거리는 것을 보면서 이 회장의 위기감은 커졌다는 것이다.

도요타는 자동차 결함을 은폐, 축소함으로서 이미지가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품질의 도요타란 이미지에도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한때 경영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던 도요타 성공 방식이 갑자기 위기에 처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나친 효율성 추구와 양적 팽창 그리고 중소기업들에게 무리한 가격 인하를 요구했던 관행 등도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도 반면교사로 삼아야할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 회장 스스로도 위기론에 불을 지폈다. 그는 경영 복귀를 결정하며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10년 내 삼성의 대표 제품들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앞만 보고 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은 예전에 그래왔듯 세부적인 경영 활동에 참여하는 것보다는 큰 그림을 제시하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큰 그림이 무엇인지는 두고봐야겠지만 삼성전자의 변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 변화는 주변에서 거론되는 삼성의 문제를 극복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만만치 않은 것들이지만, 이 회장은 뭔가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복귀에 명분이 선다. 이건희 리더십이 심판대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