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번호는 ‘내 것’이다. 누구도 ‘내 것’을 빼앗을 권한은 없다”
“011은 브랜드가 아니다. 미련 가질 필요 없다”
정부의 010 강제통합 정책을 놓고 통신업계는 물론, 소비자들 간에도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6일 통신업계 실무진과 시민단체 인사들까지 참여한 토론회를 열었지만, 분명한 입장차이만 확인했을 뿐 답을 내놓지 못했다.
KT와 LG텔레콤은 강력한 강제통합 추진을 원했고, SK텔레콤은 점진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방통위는 구체적 세부 방안이 아직 없다. 사실 이 문제는 지난 수년간 논란을 불렀고, 아직도 해결 기미는 부족한 상황이다. 누구도 ‘정답’을 내놓지 못했다.
■“내 01X 번호 안 바꾼다”
010 강제통합 문제는 지난 200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방통위의 전신인 옛 정보통신부는 010 번호통합을 추진했다. 3세대 신규 가입자는 무조건 010을 사용하게 한 방식이었다.
이는 SK텔레콤 식별번호 ‘011’ 등 특정 번호의 브랜드화를 막기 위함이다. SK텔레콤이 ‘011=명품번호’라는 마케팅으로 적잖이 이익 본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동전화 식별번호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010 번호통합 당위성으로 옛 정통부가 내세운 부분이다.
일단 옛 정통부의 계획은 순조로웠다. 011·016·017·018·019 등 이용자들은 3G 서비스 가입을 위해 010으로 번호를 바꿔야했다. 010 가입자가 80%에 이르는 현 상황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20% 정도는 3G를 포기하면서까지 010을 거부한다. 그 수가 무려 955만6천여명에 달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끝내 01X를 지키겠다는 뜻을 보였다.
실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IDI)은 서울 및 6대 도시 휴대폰 이용자 1천8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01X 이용자의 93%는 번호 이동을 반대했다고 밝혔다. 반대 이유로는 ‘번호변경 불편이 크다(72%)’, ‘번호통합이 불필요하다(61%)’ 등이 나왔다.
이번 토론회서 김봉식 KISIDI 책임연구원은 “이용자 자발적인 010 전환이 멈추면 번호통합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010 강제통합 없을까?
당초 정부는 010 번호 전환율이 80%에 이르면 통합방안을 마련할 뜻을 보여 왔다. 이제 그 때가 이르자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이번 토론회가 단편적 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01X 고수 이용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다. 강제로 010에 합병하자니 ‘개인 자산 침해’ 논란이 생긴다.
한국YMCA 임은경 팀장은 “신용불량자 등 극소수를 제외하고 어느 사용자도 원해서 원래의 번호를 바꾸지 않았다”며 “이용자와 함께 논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010통합반대 운동본부’를 비롯한 각종 01X 사용자 모임도 비슷한 성명을 줄지어 발표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더 나아가 01X도 3G 가입을 허용, 스마트폰을 쓸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01X 번호라고 3G를 못 쓴다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설명이다.
방통위는 01X 사용자들의 여론을 인지, 강제통합은 최대한 피한다는 입장이다. 상반기 내 강제성을 배제한 세부 통합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다만, 01X 가입자 비율이 0.5% 이하로 떨어지면 강제통합에 정당성이 생긴다는 의견도 정부 일각에서 나왔다. 01X 가입자만이 쓰는 2G망 운영이 국가적 ‘비효율’로 전락한다는 분석에 기인했다. KISIDI는 이 시점을 오는 2014년으로 예상했다.
곧, 2014년이 오면 2~3만명 정도만 01X 번호를 고집하다, 010에 강제통합되는 시나리오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010 통합정책 정당성도 ‘도마 위’
정부의 010 통합 추진이(강제가 아니어도) 정당한지 여부도 논란이다. 필요 없는 고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정부가 우려했던 특정 식별번호 브랜드화는 거의 사라졌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다. 정부의 010 번호 이동제가 성공했기 때문이다.
YMCA 측은 “이제 011이나 017등의 브랜드를 명품으로 인식해 욕심내는 사용자는 적다”며 “정부 정책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번호자원 부족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도 010 번호통합 정책을 폐기해야 하는 이유라는 목소리가 높다.
통신3사 입장 역시 관전 포인트다. 사업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다는게 이번 토론회서 다시한번 확인됐다.
SK텔레콤은 점진적인 010 통합을 원한다. 여전히 충성도 높은 450만여명의 011 가입자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폐지를 받아들일 입장도 아니다. 010 등장으로 인해 011 브랜드화 좌절을 맛본 SK텔레콤이다. 이제서의 정책 폐지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2G 이용자가 빠르게 줄어드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하성호 SK텔레콤 정책그룹장(상무)은“01X 가입자가 50만명 이하가 남았을 경우 정부 논의를 통해 통합이 가능할 것”이라며 “통합은 점진적이고 이용자 편의를 반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KT는 반드시 번호통합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신3사중 통합을 가장 옹호하는 입장이다. KT는3G 이용자가 월등히 많은 상황에서 상대적 소수인 01X 이용자를 위해 2G 망을 운영하는 것은 비효율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공성환 KT 사업협력담당 상무는 “정책폐지는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기에 바람직하지 않다”며 “010 번호 통합은 스마트폰 활성화 및 차세대망 투자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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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텔레콤은 일정 시점을 정해 한 번에 통합하자는 의견을 내놨다.
김형곤 LG텔레콤 정책개발담당 상무는 “강제적으로 바꾸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다”며 “점진적 통합이 이용자 편익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