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MS)는 IT업계에서 알아주는 친구사이다. 그냥 친구가 아니라 '절친'이다. 인텔과 MS는 80년대부터 핵심 PC 플랫폼인 프로세서와 운영체제(OS)를 장악하며 PC 생태계에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였다. '무소불위의 칼을 휘둘렀다'는 말도 들린다.
인텔과 MS앞에선 PC제조 업체들도 하고싶은 말을 다할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PC 판매에서 나오는 수익도 대부분 인텔과 MS로 돌아갔다. 프로세서와 OS를 가져다 껍데기만 만들어 파는 모델은 마진이 많지 않았다. 한때 세계 PC업계 랭킹 1위였던 컴팩이 휴렛패커드(HP)에 인수되고 '빅블루' IBM이 PC사업을 매각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갈수록 커져만 MS와 인텔의 이같은 파워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켰다. '윈텔'(Wintel)이다. MS 윈도와 인텔칩을 합친 이말은 PC시장에서 두 회사가 막강파워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윈텔 동맹은 PC에 이어 x86서버쪽으로도 확대됐다. 리눅스가 윈텔 사이를 파고들었지만 윈텔은 여전히 서버 시장에서 먹혀드는 조합으로 통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다. 비즈니스 세계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어제의 동지가 이해관계가 엇갈려 하루아침에 틀어지는게 이 바닥이다. 요즘들어 인텔과 MS간에도 틈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틈은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진원지는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모바일이다. 이곳에서 흔들릴줄 몰랐던 윈텔 동맹은 흔들거린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있다.
변화는 인텔에서 시작됐다. 인텔은 모바일 시장에서 지분 확대를 위해 독자적인 리눅스 기반 OS '모블린'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 '모블린'은 넷북과 모바일인터넷디바이스(MID) 그리고 스마트폰을 겨냥한 OS다.
폴 오텔리니 인텔 CEO는 최근 투자자들을 상대로 "SW는 이제 인텔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고 말했다. 신규 시장에 진출하는데 있어 SW의 전략적 가치가 매우 커졌다는 얘기였다. 오텔리니 CEO는 "인텔은 리눅스 프로젝트에서 두번째로 큰 컨트리뷰터"라는 것도 강조했다.
MS는 여전히 넷북 OS시장에서 많은 점유율을 갖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NPD그룹에 따르면 90%가 넘는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렇게 될지는 미지수다.
구글 안드로이드에 이어 인텔도 모블린을 앞세워 넷북OS를 노린다. 안드로이드와 모블린의 공통점은 오픈소스라는 것이다. 넷북 사업에서 박리다매 전략을 쓸 수 밖에 없는 제조 업체들로선 매력적인 플랫폼이다. HP, 델 등 거물급 PC업체들이 오픈소스OS 기반 넷북을 주목하는 이유다.
인텔은 아톰으로 넷북용 프로세서 시장을 선점했다. 나아가 인텔은 모블린을 아톰의 경쟁력 강화에 활용하려 하고 있다. MS 윈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듯 하다. 조만간 베타 테스트에 들어갈 모블린2.0은 넷북과 MID에서 사용자 경험을 강화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넷북의 경우 부팅시간은 7초밖에 안걸린다고 한다.
모블린 확산을 위해 인텔은 수세 리눅스 공급 업체 노벨과도 손을 잡았다. 양사 협력은 넷북과 MID 업체들이 모블린을 채택하도록 하는 것도 포함한다. 세계 최대 휴대폰 업체 노키아도 모블린을 지지하는 모습. 노키아에 대해 인텔은 아톰이 휴대폰 시장에 진입하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텔이 OS와 애플리케이션을 강화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를 감안하면 인텔은 앞으로 넷북과 스마트폰 시장에서 MS 윈도7, 윈도모바일 OS와 경쟁할 가능성이 높다. 윈텔 동맹에 익숙해진 이들에겐 파격적인 소식이다.
물론 모바일 시장에서 윈텔 동맹이 아예 틀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싸우면서 협력하는 이른바 코피티션(Copetition) 관계가 형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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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하다 코피티션으로 넘어가는게 특별한 뉴스는 아니다. 비슷한 일들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네트워크 장비 업체인 시스코시스템즈는 블레이드 서버 시장에 진출하며 전통적인 파트너였던 IBM, HP와 다소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시스코는 공개적으로 '코피티션'을 말하고 있다. 싸울때는 싸우고 손잡을때는 손잡겠다는 것이다.
인텔과 MS도 모바일 시장에서 유사한 관계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바야흐로 코피티션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