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 대부분이 인터넷익스플로러(IE)만 쓰는 곳을 인터넷 강국이라 할 수 있나?”
마이크로소프트(MS) IE에 종속된 우리나라 웹 환경에 대해 웹표준을 수용할 것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르웨이 웹브라우저 업체 오페라 CEO가 MS 액티브X를 고수하면 한국은 웹표준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고 다시 한번 경고했다.
24일 방한한 오페라 소프트웨어의 욘 폰 테츠너 CEO는 한국 기업들과 액티브X 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종종 논의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찾기가 힘들 정도라며 안타까움을 강하게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인터넷익스플로러(IE) 이외에 액티브X를 지원하지 않는 브라우저 점유율이 5% 미만인 한국 시장이 평소 연구 대상이라고 한다.
지난 6월 방한한 미셀 베이커 모질라재단 회장도 테츠너 CEO와 비슷한 지적을 했다. 베이커 회장은 한국이 지금의 문제를 개선하지 못하면 앞으로 인터넷 세계에서 입지가 크게 약화될 것이라며 거듭 개선을 촉구했다.
■ 액티브X 고수하면 웹표준서 밀린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한국에 ‘탈 액티브X’를 요구하는 것일까. 물론, IE에 맞서 자기네 브라우저 입지를 강화하기 위함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액티브X중심주의로는 ‘웹표준’이라는 세계 기류에 동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인터넷 업계는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3C)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웹표준 전략을 짜고 있다. 오페라와 모질라는 물론, MS도 여기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상황.
이들이 말하는 웹표준이란 어떤 웹페이지라도 다양한 브라우저로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 세계를 말한다. 액티브X 없이는 인터넷 사용에 제약이 있는 한국 금융 사이트들과는 반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W3C가 웹표준을 만들면서 전 세계 사용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데, 한국이 여기 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리꾼 대부분이 IE만 사용하니 다양한 의견이 전달될 리가 없다.
베이커 회장은 “한국에서는 나올 수 있는 의견 범위에 한계가 분명 있다”며 “모질라가 파이어폭스를 만들 때만 해도 한국 사용자의 의견은 거의 들려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완성된 웹표준은 분명 한국과는 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세계 누리꾼들은 표준을 따르지 않는 한국 사이트에 대한 접속을 꺼릴 공산도 크다. 한국 인터넷은 말 그대로 ‘외딴 섬’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믿고 있던 MS가 웹표준에 동참하면서 액티브X 기능을 줄여가는 것도 큰 문제다. 당장 IE8에서 MS가 액티브X를 줄이겠다고 하자 국내 금융권은 난리가 났다. 테스트 결과 주요 사이트 화면이 깨지거나 액티브X를 통한 파일 다운로드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 MS와 접촉해 IE8과의 조율작업을 마무리하고 한숨 돌리는 중이다. 이에 대해 누리꾼들은 ‘IE 한국 특별판’이 생겼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베이커 회장은 “한국에서 누리꾼들만큼은 액티브X에서 벗어나기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를 위해 국가와 기업들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모바일서는 액티브X 안통해
이같은 문제는 ‘모바일웹’서도 이어지고 있다. 모바일에서는 이제까지 나온 어떤 브라우저나 운영체제(OS)에서도 액티브X를 지원하지 않는다. MS ‘윈도 모바일’도 마찬가지다. 곧, 은행권처럼 액티브X가 필요한 주요 사이트는 모바일로 이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나름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에서 모바일웹에 대한 관심이 적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인프라웨어 김경남 전무는 “한국이 액티브X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모바일웹 기류에서 한국은 변방으로 물러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테츠너 오페라소프트웨어 CEO도 “앞으로 인터넷의 주 무대는 데스크탑에서 모바일로 옮겨 올 것이 분명하지만 한국은 준비를 못하고 있다”며 “좋은 모바일 기기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웹표준에 대한 대책이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행히도 다음커뮤니케이션과 NHN, 그리고 SK텔레콤·KTF·LG텔레콤 등이 공동으로 액티브X 없이 금융거래를 가능케 하는 ‘모바일 OK’란 기술을 만드는 긍정적인 움직임도 일고 있다.
김경남 전무는 “모바일웹은 액티브X가 필요 없도록 처음부터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국내 인터넷 업계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힘을 모아갈 것이다”고 전했다.